생애초기 경험, 조건화된 자기가치감과 우울
혹시 이런 질문과 대화를 나눠보신 적 있으신가요?
또는 '일'이, '우정'이, '여가'가 당신의 전체 삶에서 차지하는 그 영향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친구 또는 시작하는 연인 단계에서 서로 더 잘 알기 위해 나눠봄직한 이야기입니다.
심리학 연구를 할 때, 눈에 보이는 개념을 다루는 일은 드뭅니다. 글의 주제인 '우울한 감정'처럼, 직접 측량할 수 없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주로 다루지요. 예를 들어, 어떤 치료 방법을 통해서 우울증이 많이 나아지고 삶이 더 행복해졌는지 알기 위해서 심리학 연구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측정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야 했습니다. 체중이나 신장(키)은 직접 잴 수 있는 것에 비해서 심리학적인 개념은 표면적인 측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까다로운 것이지요.
눈에 보이지 않고 숨겨진 것, 심리학적으로 이것을 잠재적이다(latent) 라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여러 개의 구성요소로 복잡하게 이루어져 있어서 하나의 일면으로는 전체를 파악할 수 없을 때, 구성개념(construct)이라고 부르고, 때문에 우울한 감정은 커다란 "잠재적 구성개념"입니다.
가령 한 사람의 삶 전체가 오직 사랑도 아니고, 직장생활로만 이뤄진 게 아닌 것처럼 우울한 감정도 그 사유(원천)가 한 가지에서만 비롯된 게 아닙니다.
앞서서 남들보다 더 쉽게 우울해지게 만드는 타고난 소인, '신경증(neuroticism)'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신경증 수준이 높으면 살아가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더 격렬하게 느끼지만, 100% 필연적으로 우울해지는 건 아닙니다. 한 사람이 우울해지게 만드는 위험요인(구성개념)에 해당하는 다른 여러 요소들도 작용하지요. 자라온 환경, 성장하면서 중요한 기억을 함께 겪은 굵직한 관계들이 그 예입니다.
과거는 불변적이어서 어린 시절에 겪은 사건들을 바꿀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지금 우울한 감정으로 인해 고통 받고 암담한 심정에 깊이 빠져 있다면
나의 우울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먼저 Why를 알 때,
나의 사정을 수긍하고 변화를 위한 다음 발걸음이 보다 가벼워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이 지닌 여러 생활조건, 심지어 사회문화적인 상황에 의해 우울-위험요소가 더 다양하지만,
오늘은 심리학 연구결과, 가장 대표적으로 일컬어지는 아동기 양육환경과 조건화된 가치감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심리상담을 할 때 상담자마다 내담자(클라이언트, 즉 상담을 받는 사람)의 현 상황을 이해하는 접근방식이 조금씩 다릅니다. 내담자가 하는 습관적인 생각들을 중심으로 고충을 파악하기도 하고, 내담자가 가까운 주변인과 맺는 관계 패턴에 초점을 맞추기도 합니다. 어떤 길로 가든 서울로만 가면 된다고, 상담자가 취하는 접근방식마다 시작점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담을 시작할 때 중요하게 조사하는 것 중 하나가 내담자의 가정환경입니다.
이것은 '잘 살고 못 살고'의 개념이 아닙니다. 물론 경제 상황도 내담자의 삶의 안녕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지만, 상담자들은 그보다 내담자가 과거 어른들의 보조와 도움 없이는 원활한 생활을 하기 어려운 아이 때, 부모를 비롯한 가까운 어른들이 내담자를 어떻게 대하고 교육해왔는지에 관심을 가집니다.
세상에 정녕 완벽한 부모는 없고, 무척 다행인 점은 부모가 어리숙해도 아이들은 탄력적이어서 비록 몇몇 일화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받더라도 자연적으로 회복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몇 가지 일화로 특정할 수 없는 양육환경 전반적인 분위기가 아동이 자라서 우울한 감정에 빠질 위험을 키울 수 있습니다.
최근 들어 미국 심리학계에서는 경제적으로 불우한 가정환경이 심리질환을 겪게 될 위험을 높이는 게 아니라,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더라도 어릴 적 부모와 정서적인 교류를 잘 하지 못하면 심리적 고충을 겪게 될 위험이 크다고 주목하면서, 부유한 가정의 자녀(the privileged)가 보이는 심리문제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부유하지만 가족 구성원 간 불화가 많고 서로 냉담한 가정의 자녀보다, 부유하지 않더라도 부모 자녀, 형제 간 사이가 돈독한 가정의 자녀가 심리적으로 건강하고 더 행복하더라는 겁니다.
특히 상담심리학에서 아동기 경험을 크게 강조하는 건 다소 비정한 구석이 있습니다.
아이가 직접 택할 수도 없었고, 그 환경을 떠나거나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아동기에 일방적으로 주어진 양육환경에 의해 심리적 안녕이 결정된다라면 무척 불공정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와 상담 장면에서 개인의 심리건강을 논할 때 가정환경을 빼놓지 못하는 건, 그만큼 어릴 적 중요한 어른과 관계 맺은 방식과 경험이 불식할 수 없는 영향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그럼 과거 양육환경이 바람직하지 않았다면 할 수 없이 무조건 우울해지는 것인가? 이 또한 아닙니다. 하지만 오래도록 수행되어 온 우울증에 관한 연구역사가 밝히길, 차가운 환경에서 자란 아동은 커서 우울한 감정을 느끼게 될 가능성이 더 크고, 그렇기에 살아가면서 자신의 정서적 건강을 어떻게 관리하고 돌보느냐가 더욱 중요합니다. 청소년기 안에서도 여러 복잡한 인과관계가 존재하지만, 아동기에 집중해서 저는 간단히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 우울로 고통 받고 있는 분들에게는 그렇게 된 사정이 있습니다.
정신력이 나약해서라거나 우울한 감정을 해결할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울해질 수 밖에 없게 된 여러 타당한 요인이 존재하고,
그 중에 한 가지는 옛날 아동기에 겪은 환경에 의한 것일 수 있습니다.
양육환경이 "차갑다"는 것은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부모 성향과 생활조건에 따라 서로 다른 장면이 연출될 수 있겠지마는, 대표적으로 말해서 아이가 갈급하게 부모나 다른 어른의 토닥임을 필요로 할 때 그 따뜻한 도움이 원활히 주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너무 바빴거나, 부모도 자신의 해결되지 않은 심리적 고충(예. 부모 자신의 알코올 중독, 우울증, 배우자의 폭력)으로 인해 칭얼대며 온정을 바라는 아이에게 애정어린 양육을 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정들은 부모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인간적으로 이해할만한 사유이지만, 부모의 보호가 절실한 어린 아이에게는 차갑게 느껴지기 충분합니다.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는 음식을 찾아 먹을 수도, 축축한 기저귀를 갈 수도 없는 아이가 차가운 양육환경에서 자라나게 되면 자연히 세상과 타인은 나에게 별로 관심이 없고, 내가 간절하게 필요로 할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과 불신을 가지게 됩니다.
아동기에 필요를 원활히 충족 받은 아이가 더 커서 유치원,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나의 가족 어른들이 그래주었던 것처럼, 교사를 비롯한 다른 어른과 친구들이 기본적으로 나에게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고, 언제든 곤란에 처하면 누군가 도움을 줄 것이라는 용기를 가지고 세상을 대합니다. 더 적극적으로 새로운 학습 기회와 또래관계에 뛰어들고, 실패를 겪더라도 위축되는 일이 적습니다.
반면에 불안하고 차가운 세상 속에서 위태롭게 지내온 아이는 먼저 적극적으로 접근하면 상처를 받게 될까봐 위축되고, 냉담한 태도로 일관했던 부모처럼 교사도 신뢰하기 어려워하며 실패를 겪게 되면 '나는 이 위험한 세상을 해쳐나갈 힘이 없고, 다른 사람들은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더욱 공고해지면서 격렬한 슬픔과 절망감을 경험합니다.
흔히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사랑을 무조건적인 '아가페적 사랑'에 비유하곤 하는 건 부모에게만큼은 자녀가 철 없고 못난 모습을 보이더라도 그 무한한 사랑이 철회되지 않는다는 의미일 겁니다. 세상의 규칙을 배우고 순응하기 위해 훈육이 필요하지만, 혼낼 때에도 자녀를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이 밑바탕된다면 자녀도 이것을 느낄 수 있기에 관계가 훼손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부모가 자녀에게 조건부 사랑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조건부라는 것은 곧 자녀가 부모가 정한 조건을 충족할 때에만 사랑이 주어진다는 뜻이지요.
귀찮게 칭얼대거나 시끄럽게 굴지 않으면
시키는대로 공부해서 성적을 잘 받으면
의젓하게 동생을 잘 돌보면
조건화된 사랑을 받은 아이는 '있는 그대로의 나'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의 욕구를 따라서 부모님께 마음껏 투정을 부리거나 때로는 학습지 숙제를 미루고 게임을 하고, 부모님이 원한대로 동생 보육을 돕지 않으면 사랑 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
조건부 사랑이 떠나가지 않기를 바라면서 불완전한 자신을 상기하고, 늘 중요한 타인의 기준과 조건을 맞추기 위해 눈치를 보게 됩니다. 그러다가 교사, 친구, 연인 등과 소중했던 관계에 마찰이 생기면, 어릴 적 부모와 그랬던 것처럼 '사랑 받을 자격을 잃을만한 잘못을 저질렀는지' 자기 자신에게서 흠을 찾고 자책하는 자기비난적인 순환을 보입니다. A의 사례를 보면 조건화된 가치감이 어째서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는지 드러납니다.
A는 어릴 적 '소란 피우지 않는 미덕'을 강조하는 부모님 슬하에서 자랐습니다.
쇼핑몰에서 장난감을 사달라고 큰 소리로 투정을 부리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고, 유치원에서 친구와 다퉜을 때 부모님은 시무룩한 A의 마음을 달래주시는 대신, 왜 참지 않고 소란을 피웠느냐고 크게 혼이 났습니다. 외출을 할 때는 주변사람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게끔 "착하게 조용히" 있어야 한다고 몇 번이나 반복해서 강조하셨고, 말을 잘 들으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칭찬해주시고, A가 좋아하는 저녁메뉴를 고를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말에 순종하지 않고 약간이라도 투정을 부린 날에는 함께 식사하는 시간 내내 A에게 관심을 주지 않으시고 A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차가운 분위기가 무섭고 괴로웠던 A는 부모님이 바라신대로 수더분하고 결코 소란이나 언쟁을 피우지 않는 "착한 아이"로 자랐습니다. 덕분인지 학창시절 내내 선생님들의 총애를 받았고, 성실하게 공부도 열심히 해서 원하던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다가 첫 연인을 사귀게 된 A는 타인을 대할 때 늘 그랬던 것처럼, 연인의 선호를 자신의 선호보다 더 우선시했고, 다툼 없이 원만한 사랑을 가꾸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연인과 첫 여행을 계획하면서 여행 숙소를 정하는 문제로 작은 말다툼을 했고, A가 감정이 지나쳐서 심한 말을 하거나 일방적인 고집을 피운 게 아니었는데도 강한 불안감을 느끼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내가 맞춰주었어야 했는데 괜히 내 생각을 드러내서 이 관계를 망쳐버렸어... 다 내 탓이야."
스스로를 불충분하게 여기면서 자기 내면에서 흠을 찾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대단히 고통스러운 경험을 합니다. 좌절이 반복되면 뼈아픈 후회와 자기비난을 하지 않기 위해 새로운 도전이나 대인관계를 피하려는 회피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요, 우울이 더 심한 경우에는 자발적으로 고독을 취하면서 사회적인 교류를 끊고 직업활동에도 참여하지 않는 침체된 시간을 오래도록 보내기도 합니다.
아동기 양육환경과 조건화된 가치감,
이밖에도 우울을 경험할 위험을 높이는 요인은 다양하게 더 많습니다.
학창시절 또래 따돌림을 겪거나 잦은 이사, 너무 이른 유학 등도 우울해질 위험을 높이는 요인입니다.
앞선 편에서 설명한 높은 신경증 수준을 겸해서 세 가지 우울의 원천을 설명하면서 우울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의지력(will power)이나 노력 여하로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훨씬 복합적인 고충이라는 것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암처럼 우울 그 자체가 인간 생명을 위협하는 건 아니지만, 우울을 갖고 살아감으로써 내적으로 겪는 고통은 여느 신체질환과 견주어도 덜하지 않을 정도로 치명적이고 날카롭습니다.
여기까지 우울한 사람들이 어떤 감정 경험을 하고 있는지,
우울한 사람의 주변인의 고충, 그리고 우울해질 위험을 높이는 요소들을 다루었습니다.
이제 Why에 대한 어느 정도의 설명이 되었을 거라고 믿고, 다음 편부터는 How to로 들어가겠습니다.
보통보다 연약한 마음을 가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마음을 다독이고 관리하면서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더 활기차고 에너지 있게 살아갈 수 있을까?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