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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Apr 23. 2020

벽 뒤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창고를 하나 빌렸다. 목공 작업을 할 수 있는 실내 공간이 있었으면 했는데 마침 저렴한 가격의 창고를 소개받았다. 기왕에 작업실을 꾸미는 거면, 낭자의 음악 작업 공간과 나의 글 작업 공간도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아직 우리는 목공으로 돈을 벌지 못하는 상태였고, 음악과 글 작업도 꾸준히 해야 했기 때문이다. 작업실 한편에 음악과 글을 위한 작은 방을 만들기로 했다.

  “집 안에 집을 하나 만드는 거야.”

  목공 작업은 먼지가 아주 많이 생기고, 음악 작업은 방음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벽을 한 겹 더 세우기로 했다. 창고 안에 작은 원룸을 하나 만드는 계획이었다. 작업하면서 보니 창고는 정말 대충 지어진 건물이었다. 천장은 내려앉고 있었고 벽은 수평이 맞지 않았다. 기존의 벽을 믿고 나무 골조를 세웠다간 틀어진 방을 만드는 격이었다.

  목조주택 짓는 일을 했던 낭자를 따라 집 안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나무로 뼈대를 세우고, 바닥에도 마루를 깔기 위해 상을 짜 넣었다. 단열재를 넣고, 비닐을 씌우고, 석고보드를 쳤다. 석고보드 사이를 퍼티로 메우고, 마지막으로 페인트칠을 했다. 마루에는 합판을 깔고, 그 위에 은박 롤을 깔고, 라왕 나무 마루재를 깔았다. 샌딩을 한번 하고 바니쉬를 발랐다. 벽과 바닥이 만나는 모서리 틈과 창문틀에 몰딩을 하고 문을 만들어 넣었다. 아주 사소해 보이는 것일지라도 모두 직접 해야 했다. ‘밥 하기 귀찮으니 밖에서 사 먹자’와 같은 문제와는 차원이 달랐다. ‘콘센트 자리 뚫기 귀찮으니 뚫려 있는 벽을 사 오자’ 같은 건 불가능했다.

  우리는 돈을 못 버는 상태, 목공으로 돈을 벌어보기로 결심한 상태, 이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상태였다. 당연히 음악 작업이나 글을 쓸 때 필요한 책상과 의자도 직접 만들기로 했다. 하기야, 없던 방도 직접 만들었는데.

  벽을 세우고, 마루를 깔고, 천장을 칠하고, 문을 만드는 길고 힘든 과정을 거쳐 방이 완성됐는데, 이제 다시 시작이다. 빈 방을 채워야 한다. 책상과 의자, 수납장을 만들어야 한다. 금방 만들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금방 만들 수 없을 것 같다. 집을 짓는 것처럼, 가구를 만들 때에도 저절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

  사람은 느리고 실수를 한다. 체력은 떨어지고 집중을 방해하는 많은 것들이 있다. 가령 좋은 날씨, 갑자기 찾아오는 친구, 복잡해진 감정과 같은 것들. 왜 사람이 기계를 만들었는지, 왜 점점 더 많은 일을 기계가 대신하게 되는지 알 것 같다. 기계는 실수가 없고 일정한 속도로 계속 일한다. 하지만 기계가 자동차도 운전해주는 시대가 되었어도, 여전히 사람이 직접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집을 짓는 것과 같은 일들 말이다.

  “팔자에 없던 노가다 하네.”

  낭자는 내가 힘들어하면 놀리듯 말한다. 팔자에 없던 노가다를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내가 할 수 있으리라 상상해보지 못했던 일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내 평생 집을 살 수 있을까 계산해본 적은 있지만 내가 직접 집을 지을 수 있을지는 꿈꿀 생각조차 못했었다. 키가 작고 다리가 짧은 내가 쓰기 편한 높이의 의자와 책상을 직접 만들어 그곳에 앉아 글을 쓰고 있을 줄이야. 

  몸 편하게 사서 쓰고, 업체에 맡기던 때에는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벽 뒤에 숨어있는 것들 말이다. 이 하나의 벽을 세우기 위해 쏟은 노력들. 저 안에 들어가 있을 단열재, 벽을 지탱하고 있을 골조, 표면을 덮은 석고나 시멘트, 그 위를 덮은 마감재 같은 것들. 그것들을 넣고 세우고 두드리고 칠한 노동들. 결국 세상을 만드는 일은 사람의 노동에서 시작된다.

  새로 오픈한 이자카야에 갔다. 하얀 페인트를 칠한 벽 너머로 공사한 이의 손길이 보인다. 마음의 눈이란 게 정말 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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