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개를 소개합니다
제주도에는 유기견이 많고 내 주변에는 유기견을 데려다 키우는 친구들이 많다. 놀러 가는 척하며 데리고 와 제주도 어느 산길에 강아지를 내려두고 사람들만 육지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로 한 친구는 산길에서 강아지만 하차시키는 장면을 목격했다. 친구는 이것이 유기의 현장이 분명함을 확신했으나, 본인이 개입하게 되면 이곳을 피해 다른 산길에 유기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알 수 없는 곳에 버려진 강아지가 죽거나 죽임을 당할까 봐 걱정된 친구는 조용히 차가 떠나길 기다렸다. 그 후 홀로 남은 강아지를 구조해 강아지가 새로운 주인을 만날 수 있도록 쉼터에 데려갔다.
나와 함께 살게 된 J도 유기견을 키우고 있었다. J는 나처럼 서핑이 좋고 자연이 좋아 제주도로 이사 온 친구다. 동물을 좋아하는 J가 유기견을 키우기 시작한 건 제주도로 이사 오기 전부터였다. J는 웰시코기에 반해 분양을 받아 깡돌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깡돌이는 심장비대증으로 1년이 채 못되어 세상을 떠났다. 비가 오는 날 친한 친구와 엉엉 울며 깡돌이를 묻어준 J는 강아지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고, 이내 유기견들이 처한 상황을 알게 되었다. 내가 강아지를 키울 여력이 있다면 유기된 강아지를 위해 쓰고 싶다고 생각한 J는 유기견센터 SNS에서 까뮈를 발견하게 된다. 유기견센터에서 구조했을 당시, 까뮈는 초등학교 앞 가로수에 묶여있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앞 가로수에 묶어 유기하다니. 까뮈를 귀여워한 아이들 중 하나가 데려가기를 바랐던 마음이었을까. 아무튼, 까뮈를 키우던 J는 제주도로 이사 올 때 까뮈를 데려오지 못했는데, 까뮈가 J보다는 J의 아버지를 더 좋아했기 때문이었단다. 까뮈의 마음을 아버지에게 빼앗긴 J는 제주도에서 또다시 두 마리의 유기견을 만나게 된다.
J는 로타리에서 타리를 만났다. 제주도에는 로타리가 많다. 타리는 한눈에 보기에도 목적지가 없는 상태였다. 집을 잃은 개들은 갈 곳도 함께 잃기 마련이다. 갈 곳을 잃은 타리는 삶의 목적도 잃은 것인지 차량의 통행은 아랑곳하지 않고 로타리를 가로지르며 방황하고 있었다. 털은 잔뜩 빠져있고 꾀죄죄한 타리가 눈에 밟힌 J는 차에서 내렸다. 유기견을 주려고 가지고 다니던 사료가 있어 J는 타리에게 사료를 주었고, 사료를 먹은 타리를 목적지를 찾은 것처럼 J에게 다가와 폭 안겼다. 집을 찾은 타리는 다시 복슬복슬하게 털이 났는데, 발견 당시 타리는 스트레스성 탈모였다고 한다. 유기된 강아지는 탈모가 올 만큼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걸 알았다. 집으로부터 버려진 타리는 어쩌면 살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기에 로타리를 방황했던 것 같다. 나 좀 보라고, 지나가는 차들을 세우고 싶었던 행동이 아니었을까. 인터넷에 찾아보니 로타리의 바른 표기법은 로터리였다. 하마터면 타리는 터리가 될 뻔했다. 타리는 지금 J의 어머니에게 마음을 빼앗겨 육지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지금 제주도의 집에서 J가 키우고 있는 강아지는 튼튼이다. 이 글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주인공답게 마지막에 등장했다. 튼튼이는 J의 친구들이 처음 만났다. 아기 강아지들이 버려져있다는 J의 친구들의 연락을 받고 구조하러 온 유기견 보호소의 트럭에, 튼튼이가 있었다. 당시 튼튼이는 이름 없는 대형견이었다. 사고를 당했는지 몸에 큰 상처를 입은 대형견. 보호소 직원은 아기 강아지들을 구조해 튼튼이가 들어가 있는 우리 안에 넣었다. 무서워 보이는 대형견 옆에 아주 작은 강아지들을 넣다니. 하지만 그 무서워 보이는 대형견은 이내 작은 강아지들을 핥아주었다고 한다. 무서워 보이는 대형견이 자신의 몸에도 아픈 상처가 있는데 다른 강아지들을 돌보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J는 그 대형견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그 대형견이 안락사당하지 않고 좋은 보호자를 만나기를 바랐던 J는 수시로 보호소 사이트에 들어가 대형견의 소식을 찾았다. 보통 유기견들은 구조 후 일정 시간 동안 입양처를 만나지 못하면 안락사당하는데,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치료 중인 강아지는 치료가 끝날 때까지 안락사를 시키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 대형견의 입소 동기(?)들 중 입양처를 만나지 못한 아이들은 모두 안락사를 당했는데, 상처가 커 치료가 오래 걸린 그 대형견은 여전히 보호소에 남아있었다. 상처의 회복이 다 되어 가는데도 입양자가 나타나지 않아 안락사당할 날짜 다가왔다는 소식을 들은 J는 그 대형견에게 이름과 집을 주기로 결심했다. 몸을 크게 다쳤으니 튼튼하게 살라는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튼튼이는 아주 튼튼한 개가 되었다.
J와 나는 이웃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나는 저렴한 집이 필요했고 J는 펫시터가 필요했다. J는 방이 남았고 나는 시간이 많았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하우스 메이트가 되었다. 출장이 잦은 J가 육지에 갈 때면 내가 튼튼이를 돌보고, 대신 J는 남는 방 하나를 나에게 저렴하게 임대해 주었다. 개를 좋아하긴 했지만 같이 사는 건 조금 겁이 났던 나는 경제적인 이유로 덜컥 대형견과 한 집에 살게 되었다. 키운다는 말은 좀 어색하다. 그저 나는 튼튼이가 좀 더 편하게 먹고 잘 수 있도록 도울 뿐이다. 그 대가로 나는 튼튼이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받는다. 이 글은 튼튼이가 준 것들에 대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