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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athan Feel Apr 22. 2024

벚꽃 엔딩, 바람에 실려온 세월

“근데 진짜 세월이 약인가요?” 물었다. 

잠깐 물끄러미 다른 곳을 바라보더니 입을 연다. "어디가 약이 있어요. 약이 없죠. 안고 사는 게 약이여."


덜컥, 심쿵하면서 울컥했다. 


얼마 전 만났던 <세월: 라이프 고즈 온>. 맞다. 세월호 다큐멘터리다. 다큐 속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예은 아빠’ 유경근 씨가 물었고,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고 배은심 여사가 답한 내용이다. 이른바 '유족이 묻고 유족이 답'하는 인터뷰를 보여주는 이 다큐는,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1999년 씨랜드 수련원 참사, 1987년 민주화 항쟁 등에서 자식을 잃은 유족들이 주요 등장인물이다. 

<세월: 라이프 고즈 온> 포스터 (배급사 씨네소파)

나는 "세월이 약"이라는 말의 헛헛함과 공허함을 안다. 사랑하는 이를 잃었을 때, 그 말은 위로는커녕 가시였다. 물론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의도'는 안다. 알지만, 의도와 표현은 일치해야 한다. 위로랍시고 던진 그 말은 게으르고 헛되다. 어쩔 땐 거짓 위로이기도 하다. 피해 혹은 희생 당사자나 유족들이 직접 저 말을 한다면 모를까, 타인이 함부로 저 말을 꺼내선 안 된다. 슬픔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러니까, 배 여사님의 말씀에 나도 갑자기, 오래전 슬픔에 대해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다. 유경근 씨도 그러지 않았을까. 배 여사님 말씀은 아마도, 슬픔과 고통을 잊지 말고 ‘안고 사는 게 약’이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세월이 약"이라며 "그만 잊으라"는 둥, "아직도 슬퍼하느냐"는 둥,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둥 거짓 위로와 손절하라는 뜻 아니었을까. 왜 잊어야 하는가, 왜 슬퍼하지 말아야 하는가 말이다. 


아울러, 아프고 슬픈 사람들이 서로 손 잡아주고 부둥켜 ‘안고 사는 게 약’이라는 말씀이 아니었을까. 영화는 그것을 아주 잘 보여준다. 극장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눈물의 공동체이자 슬픔의 공동체였다.


10년 전 그날, 나는 당시 마포에 있었던 출판사 샨티 사무실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책을 내기 전이었던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회의가 있었고, 세월호가 침몰했지만 전원 구조됐다는 '오보'에 다들 한시름 놓으며 회의를 했었다. 별일 없어서 다행이라며. 하지만 오보가 밝혀지고, 끔찍한 소름이 돋았다. 


10년이 흘렀다. 소름은 여전하고, 이후에도 국가는 때때로 진공 상태에 돌입했다. 삶은 계속되고 있지만, 세계는 악화일로다. 우리는 언제 어디든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세계를 살고 있다. "내 아이가 안전하려면, 내 아이의 친구, 동네 모든 아이들이 안전해야 한"다는 말이 더욱 절실해지는 나날이다.


'묻고 가자'는 없다. '묻고 따블'도 없다.  


바람이 되어, 별이 되어, 남은 우리에게 빛이자 빚이 된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우리는 그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빚졌다. 다시, 기억한다. 여전히, 잊지 않겠다. 그리하여, 


벚꽃이 피었다 집니다. 벚꽃 엔딩은 순식간에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벚꽃이 진다고 그대들을 잊은 적 없습니다. 잊지 않습니다.


벚꽃이 졌지만, 세월호는 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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