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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두둑 Oct 09. 2020

우리를 덜 우울하게 하는 능력

감기처럼 찾아오는 우울감에 대처하는 두 가지 방법

마음이 어지럽게 널브러질 때가 있다. 그럴 때 방을 보면 꼭 거울을 보듯 물건들도 자신의 자리를 이탈해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펼쳐져 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마음을 채근해 책상에 굴러다니는 펜을 주워 제자리에 두고 쓰러져있는 옷가지들을 일으켜 세워 옷걸이에 걸고 바닥에 쌓인 먼지와 머리카락을 쓸다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정돈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래, 하나씩 차근차근 물건을 주워 담아 제자리에 놓듯이 널브러진 마음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울함은 정말 감기 같아서 한 번 찾아오면 앓지 않고서는 넘길 수 없다. 그 어둡고 무거운 마음을 낫게 해주는 완벽한 치료제도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 마음이 너무 자주 우리를 찾아오지 않도록 예방하거나 이미 찾아온 그 감정에 완전히 휩싸이지 않도록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서울에서 강릉으로 이주한 이후 한동안에는 바다와 숲이 나의 우울함 예방주사가 되어주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에서 주말을 보내고 일요일 밤 강릉에 돌아와 숙소인 호텔 방에 들어왔는데 느닷없는 쓸쓸함이 어퍼컷을 날렸다. 강릉엔 내가 그토록 원했던 자연환경과 공기, 그리고 바다가 있었지만, 밥벌이의 고단함은 여전했다. 365일 24시간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호텔에서 근무하다 보니 퇴근 후는 물론 주말에도 끊이지 않고 업무 카톡이 울려댔다. 그렇게 일터가 주는 스트레스는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려왔다.


어느 날은 심한 감기 몸살로 출근도 못하고 식은땀을 흘리며 침대에 누워 있는데 병간호는커녕 죽 한 사발 챙겨줄 사람도 없다는 생각에 외로움이 치밀어 올라왔다. 가족, 친구, 애인 다 두고 혼자 여기 와서 뭐 하는 건가 싶었다. 시간이 지나고 몸은 회복되었지만 마음에는 여전히 미열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관계에 피로감을 느껴서 서울을 떠났는데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관계에 목마른 모순적인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서울깍쟁이에 대한 반감이 있으면서도 서울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왠지 나는 변방으로 좌천된 사람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계속 강릉에 있다가 사람들에게 잊혀지는게 아닌가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결국 서울살이의 치열함에서 벗어나려고 강릉으로 도망쳐왔는데 어쩐지 난 서울에 미련도 버리지 못하고 강릉에 완벽하게 정착하지도 못하고 있는 듯했다. 오랜만에 퇴근 후 바다를 보러 갔다. 나를 위로해줬던 파도가 섭섭하다는 듯이 철썩거리고 있었다.


우울한 생각으로부터 잠시나마 도망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TV였다. 그렇게 몇 시간이고 눈이 침침해질때까지 TV를 보고 있으면 잠시나마 나의 우울함이 자리를 비킨 것 같았다. 그러나 전원을 끄면 무거운 적막과 함께 일시 멈춤이었던 우울함이 더 큰 덩어리가 되어 나를 덮치곤 했다.


그러던 내가 요즘 우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선택하는 번째 방법은 바로 좋아하는 신체 감각을 깨우고 감정을 마주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 시작은 긴 샤워타임. 따뜻한 물줄기가 내 몸에 닿으면 긴장했던 몸이 이완되면서 감각이 깨어나는 기분이 든다. 샤워를 하면서 오늘 나에게 찾아온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들에 집중해본다. 물줄기를 타고 오늘 내가 겪었던 모든 감정들이 내 몸 전체로 퍼진다.

샤워 후에는 좋아하는 보디크림으로 몸을 마사지하고 그 날 기분에 맞는 음악을 튼 다음 샌달우드와 베르가못 향이 나는 인센스를 태운다. 아로마 오일을 밑에 바르고 손바닥에도 문지른 비빈 다음 코를 감싸 향을 맡으면 안에 퍼지는 향이 기분을 전환시켜준다. 이제 지긋히 눈을 감고 긴 호흡을 몇 번 한 다음 마음속으로 물어본다.


'나에게 찾아온 이 감정이 원하는 게 뭐지?'

'나는 이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그에 대한 답은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좋은 감정은 대게 이유가 분명하지만 어두운 감정은 그 원인도 불분명하고 복잡다단할 때가 많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마음이 어디서 비롯되었든 간에 나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내어 '괜찮아?'라고 물어봐주는 그 다정함이다. 내가 나를 돌봐주고 다독여주는 느낌, 다정한 기분은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마지막으로 베개와 이불에 아로마 스프레이를 뿌리고 누우면 날의 걱정과 근심, 불안함, 우울함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다. 모든 일련의 행동은 작고 소소하지만 오직 나만을 위한 특별한 의식이다.


감기 같은 우울함을 벗어나기 위해 내가 선택하는 두 번째 방법은 손을 움직이는 것이다.


많은 경우 우울함은 외로움에서 비롯되거나 혹은 귀결되고 그 감정은 나를 진심으로 위해주는 사람은 없다는 믿음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믿음 사실일까?


나는 우울하거나 외로울 때 가족과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해 민망함을 무릅쓰고 보고 싶어, 사랑해, 내 삶에 들어와 줘서 고맙다는 고백을 일방적으로 던진다. 다행히 내 주위에는 이런 표현을 어색해하지 않고 더 큰 사랑과 그에 걸맞은 표현으로 되돌려 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 난 사랑받고 있는 사람이지. 역시 사랑은 마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확인하고 귀로 들어야 비로소 실감이 난다.


물론 이 행동은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무 일도 없는데 갑자기 사랑고백을 했다가는 물론 상대방이 당황할 수도 있다. 연락을 먼저 하기보다 상대방의 연락을 기다리는 타입인 나 또한 용건 없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는 것부터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부끄러움과 민망함은 오래가지 않는다. 길게 남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받은 따뜻하고 포근한 온기다.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또한 어두운 감정에 대처하는 자신만의 능력을 한 껏 발휘한 하루가 되기 소망한다.

그리고 어떤 감정이 찾아오더라도 스스로를 향한 다정함을 잃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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