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수업 중에 있었던 일-
한국어를 가르치면서(물론 짧은 경력이다.) 새삼 우리 말이 이렇게 어렵구나를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아직 새로운 학교에 채 적응도 하기 전에 진지하게 묻는 기습적인 질문과 학생의 눈에 화들짝했다. 어떤 때엔 간신히 설명하고 나면 또 질문이 들어오고 다시 대답하면 또 새로운 질문을 다른 학생이 하기도 했다. 쉽게 설명해야 하는데 어렵게만 얘기하는 거 같아 속상했다. 개운해지지 않았는데 "네, 알겠습니다"라는 대답을 들으면 정말 알고 그러는 걸까? 잘 모르는데 나를 봐주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다. 그런 날 수업의 끝은 제대로 대답해 주지 못한 어리숙한 나만 우두커니 남아 가슴이 답답해옴을 느낀다. 집에 돌아와서도 자꾸만 수업 시간이 떠올라 속상하고 자존심도 상해서 문뜩문뜩 떠오르려는 그 순간을 꾹꾹 눌러 없앤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서 한국어 가르치는 것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화내고 싶다. 우리말엔 우리 문법엔 다시 공부하고 다시 짚어봐야 할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다. 단어의 뜻을 설명할 때도 다양한 예문을 들어 이해시키고 그 상황을 말해주기 위해 연극배우처럼 동작도 목소리도 크게 눈을 맞춰가며 설명한다. '공정'이라는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 영어 'fair'를 쓰면 그만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영어를 쓰지 않고 우리말을 전달하려 애쓴다.
가끔은 선생님을 시험해보는 학생들도 있다고 하는데 우리 반 질문 대장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정말 몰라서 정말 궁금해하는 눈빛이다. 이 학생은 초급반이었을 땐 아무 것도 몰라서 그 반에서 제일 한국어를 못하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젠 우리반에서 상위권을 차지한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 학생이니 나 역시 그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선생이 되고 싶다. 그런데 이런 바람과 달리 시원하게 대답 못한 날은 집에 돌아오며 혼자 자책하고 후회한다. 아~ 답이 이거구나에 그치지 말고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보고 외국인의 입장에서 왜 이 문법인지, 왜 시제가 다른지 면밀하게 따지고 그에 대한 설명을 준비할걸.
그 후로 며칠간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수업에 임하는 자세를 달리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늦은 밤 책상에 앉아 내가 질문 대장이라면 이게 궁금하겠구나 하는 부분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교과서를 보며 전에 나왔던 문법도 다시 찾아보고, 새로운 어휘는 비슷한 말이나 사전적 의미를 어떻게 잘 설명하고 어떤 예시가 있는지 준비했다. 어쩌면 나는 그동안 별일 없이 수업을 해 왔으니하는 말도 안 되는 허세로 해이해지고 방심했던 부분이 있었던 모양이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보니 고급반인 우리 반 학생들이 궁금해할 것들이 너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미와 조사를 다루는 사전도 보고, 문법에 대한 참고서도 보면서 교과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질문 대장과 나 사이에 조금씩 신뢰가 쌓이기 시작했다.(나만 그런가? ㅋㅋ) 오히려 내가 "**, 이거 궁금하지 않아?" 하며 너스레를 떨게 되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다시 수업이 점점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독서 논술 강사로 20여 년이 넘었고, 한국어 강사로 사 년 차이지만 수업 준비에 이렇게 열심인 적은 별로 없었던 거 같다. 이젠 우리 반 질문 대장 때문에 긴장과 부담감이 있었던 출근길이 서서히 학생들을 빨리 만나고픈 설레는 길이 되어주고 있다.
한 한기가 2월 중순이면 마무리가 된다. 얼마 전 강사 평가에서 생각보다 좋은 결과가 나와서 무척 기뻤다. 그게 다는 아니지만 첫 평가라 조금 부담이 되기도 했는데 다행이다 싶다. 지금도 마스크 위로 까만 눈을 끔뻑이며 차분한 목소리로 질문하는 우리 반 질문 대장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정말 그 학생이 고맙게 느껴졌다. 그 학생 덕분에 이제 어떻게 길을 잡아야 할지 어떤 것에 주의해야 할지 보이기 때문이다. 이제 2월 말이면 다른 대학으로 떠나는 그네들을 보면 많이 섭섭할 것 같다. 우리 반 질문 대장은 어제도 왜 자기 보고 자꾸 다른 이름을 부르냐며 웃었다. 너희들도 쉰이 넘어봐라, 그러면 알게 될 거라고 했더니 선생님은 정말 어려 보인다며 동안이라 추켜세운다. 겉모습은 그렇지만 머리는 쉰이 넘었다 일러준다. 그리고 선생님의 취미는 이름 바꿔 부르기라고 우겨댔다. 같이 웃는다. 뿌듯하고 좋았다. 그네는 결혼을 하면 다시 제주도에 오겠다고 했다. 그래, 우리 그때 또 보자라며 서글서글한 눈빛을 교환한 어제는 일주일의 피곤함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질문에도 예의가 있고,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아픈 곳을 콕 찍어 아프게 하는 질문은 대답하는 사람을 당황하게 만든다. 내가 알고 싶거나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질문은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 내가 생각한 것이 맞아서 다행이다, 설마설마 했던 것이 내 생각과 같아서 좋다 느낄 수 있다. 알 수 없는 상대방의 마음을 확인하고자 하는 질문은 또 얼마나 두근대고 설렐까?
반면, 수업시간의 질문은 치열해야 한다. 선생이 모르면 다시 공부하고 가르치면 되고, 알 때까지 연구하고 다시 가르치고 또 살펴보며 새로운 질문을 또 들여다보면 된다. 그래야 선생도, 학생도 앎에 대한 보람으로 행복하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질문은 나를 한뼘 성장시키는 질문이었다. 내 직업이 계속해서 공부하고 연구해야 하는 일임을 깨닫게 해주는 질문이었으며 더 큰 지식과 이해를 만들 수 있는 것임을 알게 해 준 질문이었다.
행복한 질문은, 무언가를 알고 싶은 마음은 이렇게 선생을 책상에 앉아 공부하게 만든다!!!
*사진은 에콰도르로 얼마 전에 떠난 우리 반 학생이 내게 준 카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