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야 할 글 때문에 머리가 아플 때 처방약은 글-
'해녀'에 대한 인형극 대본을 준비 중이다. 도서관 활동을 하다가 만났던 그녀의 제안으로 덜컥 아무 생각 없이 막무가내 정신으로 '도전!'하고 수락하고 말았다. 해보겠다 내뱉었으니 책임을 져야 했고, 책임을 져야 하니 지금도 머리를 감싸고 스토리를 생각 중이다. 동화를 본격적으로 써 본 적도 없고, 그 흔한 이론서 하나 읽지 않은 상태에서 더구나 대본은 생전 처음인데도 무슨 강심장으로 하겠다 덤볐을까?
해녀에 대한 자료를 찾고 뒤지고, 채록 담을 보면서 나도 몰랐던 우리 제주도의 그녀들인 '해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해녀들의 공동체 생활, 해녀들의 바다에 대한 사랑, 해녀들의 인생과 삶, 그리고 해녀들의 죽음까지. 그리고 그녀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매몰찬 제주 바람과 척박한 땅과 싸우며 제주 바다를 품어 제 몸과 함께 살아가는 그녀들의 생활에 경외심을 품게 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 제주에 사는데도 헤엄을 못 친다고 하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 사람들에게 제주도에는 바다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답답해했고, 한라산에서 공을 차면 바다에 떨어지느냐는 사람들에게 생각보다 제주의 땅덩어리가 넓다고 어이없어하고 제주에 백화점은 있느냐는 비아냥 거림엔 제주 시내는 다른 큰 도시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화를 냈었는데 내가 제주에 사는 것에 자긍심을 느끼고 있다면 이런 것에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바다를 업으로 삼고 살아온 해녀들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어야 했다.
초고를 완성하고 15쪽쯤 되는 원고를 가지고 극단을 찾았다. 내심 처음 쓴 거치곤 재미있는 요소도 있는 듯하고 갈등도 제법 정점을 찍고 서사구조도 있는 편이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도 있다는 자신감도 쪼끔 있었다. 아직 주인공의 이름도 가명이고 정해진 것은 없지만 잘 부탁드린다며 원고를 내밀었다. 숨 막히는 순간이 몇 분 지나고 있을까? 내 글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너무 궁금했다. 단원들끼리는 대본으로 만들어 와서 자꾸 읽으면서 연기를 하게 된다고 그래서 진도가 빨리 나가지 않는다 웃었지만 그 말을 들은 내 속은 좋아해야 하는 건지 걱정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원고를 다 읽고 나서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우선 이번 극의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출가는 이 극이 해녀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려주는 극이 되었으면 좋겠다 평을 했다. 해녀들의 숨비소리, 물숨, 해녀들의 삶을 진솔하게 풀어보길 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 극본 속에 나왔던 사악한 은빛 바다뱀이 담당했던 '악당'이 등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난 그 악당을 만들기 위해 여기저기 자료를 뒤지고 고민했던 것이고 은근히 재미있다 칭찬받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리고 가장 많은 지적을 받은 건 모든 것을 말로만 설명하려 들지 말라는 것이었다. 상황과 사건으로 이야기하고 관객들이 느낄 수 있게 극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뿔싸~~ 이 평은 그전에 후배가 쓴 글을 보면서 내가 했던 말이었는데 이렇게 이론을 실제로 구현하기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연극에 대한 배경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초보티가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했다. 모든 배우가 설명으로만 극을 이끌어 간다면 얼마나 단순하고 재미가 없을까? 관객이 극을 보며 고민을 하고 느끼게 만들어야 했다. 슬프다를 말로 하지 말고 슬픈 상황을 인물들의 갈등과 사건으로 만들어 내야 했다. 그래서 주인공의 이야기 속에 인과관계가 좀 더 분명해야 했다. 그 밖에도 주인공과 엄마의 연결고리 등을 좀 더 자세하게 요구를 했고 인형극인 만큼 오브제에 대한 이야기, 배우들 이야기 등등을 가감 없이 나눌 수 있었다.
첫 만남에서 나는 작가가 현장을 잘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면 무대와 극본이 물과 기름이 될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현장의 어려움과 배우들의 입장을 알 수 있었다. 앞으로도 내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다음 만남에서 서로 조율하고 토론을 통해 다시 고민을 하고 몇 번의 수정과 여러 차례의 검증을 통해 최종 극본은 마무리가 될 것이다. 그렇게 그날 첫 만남에서 나는 많은 숙제거리를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혼자 쓰는 글과 다른 사람들과의 협연을 통해서 스토리를 엮어 나가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다른 생각들을 수렴해서 정리해야 하고, 내가 쓰고자 하는 방향과 잘 어우러지게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그 접합점이 도무지 와 닿지가 않는 거였다. 수정해야 할 부분과 보충해야 할 부분을 잔뜩 써 놓은 노트를 펼치고 컴퓨터를 켰다.
어떻게 이야기를 엮어내고 자연스럽게 사건을 전개시켜야 하는지 고민 중이다.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글이 턱턱 막혔다. 타이핑을 하다 멈추고 다시 자료를 찾고 다시 고민을 하고 다시 앞부분을 읽어보고 있는 중이다. 시간이 그리 많은 것이 아닌데 누가 도와줄 수 없는 작업이니 혼자 공부방에서 스탠드에 의지한 체 컴퓨터만 보고 있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머리를 좀 쉬고 싶었다. 무거워진 마음을 좀 가볍게 하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브런치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생각을 추스리기 시작했다. 타닥타닥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춤을 추고 생각이 글자가 되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시간이 별로 지나지 않았는데 줄줄줄 써 내려가는 것이 신기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머리가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짐을 느낀다. 눈이 맑아지고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다.
아~~ 글로 받은 스트레스는 글로 풀어야 하는구나. 글이 막혀 답답한 것을 풀어주는 것도 글이로구나. 글이 상처가 되고 글이 쓰리기 시작하면 또 다른 글이 연고도 되고, 밴드도 되고, 약이 되어 주는구나.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머리가 안개 끼듯 희미해질 때 연상되는 것들을 이리저리 적다 보니 그 단어가 보이는구나. 사랑에 상처를 받으면 사랑으로 치유하라더니 나는 글에게서 상처를 받으면 글에게서 위로를 받으면 되겠구나.
글이라는 것이 다른 이와의 소통이자 교감이기도 하지만 나와의 대화이자 나와의 고민이자 나와의 공감이었구나. 새삼 글을 쓴다는 것이 고맙고 글을 좋아하게 된 것이 다행이다 싶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