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을 나누면 정말 배가 될까?

-기쁨을 함께 하는 법-

by 가시나물

생각지도 않은 메일이 왔다. '신입작가 공모에 합격하셨습니다' 얼떨떨하고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요 근래 특별한 일없이 입원하신 엄마 때문에 병원을 왔다 갔다 하느라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계절은 어떻게 지나가는지 알 수 없었는데 학교에서 온 메일을 확인하려고 길가에서 휴대폰을 켠 순간이었다. 스팸메일인가? 잘못 온 건가? 정말 나한테 온 거 맞나? 몇 번을 다시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내가 지금 잘못 해석하고 있는 건 아니가, 등단이라고 했는데? 등단인데. 설레발치는 건 아닌가 싶어 점심을 같이 하기로 한 후배에게

"나 등단했나 봐." 하며 메일을 보여주었다. 내가 잘못 안 것은 아니길 마음속으로 빌었다. 한참 메일을 보던 후배가 축하한다며 등단이 맞는 것 같다고 전해준 다음에야 다시 메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얼떨떨하고 진짜인지 정말인지 참말인지 후배나 나나 마음이 뒤숭숭했던 순간이었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학교에 나갈 수 없게 되면서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 이렇게 강제적 휴가 아닌 휴가를 갖게 된 것이 처음이라 집에서 뒹굴거리는 것만으로도 사실 행복했다. 하지만 수업을 갔다가 못 갔다가 잠시 멈췄다가 재기했다가를 반복하는 통에 생활은 규칙적이 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다른 때보다 여유 시간이 생겨나게 된 것은 달리기를 멈추고 새삼 지난 온 길의 나무와 풀과 하늘을 볼 수 있게 만든 것 같다.

덤으로 얻게 된, 물론 많은 것들의 희생이 있어야 했지만 나에게 주어진 보너스 시간은 지난 온 흔적들을 돌아보며 하나하나 곱씹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갖고 결혼을 하고. 그동안 소소한 기쁨도 있었고 힘든 일도 많았고 기억에서 사라졌으면 하는 장면도 있었다. 25년 넘는 그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꽁꽁 숨어 두었던 언젠가는 꼭 글을 쓰겠다던 어릴 적 약속이 두둥실 떠올랐다. 초등학교 4학년. 처음 특별활동이라는 것을 하게 됐을 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문예부에 들어갔었다. 4행짜리 '해바라기'에 대한 동시를 썼던 기억이 있는데 선생님의 무한 칭찬에 글을 쓰는 것에 대한 희열이 있었던 것 같다. 그 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난 문예부로 교지 편집부로 활동을 했고, 대학교도 국어국문학과를 지원하게 됐다. 하지만 정작 학교에선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교내도 뒤숭숭했고 무얼 하고 다녔는지 모를 정도로 별 볼 일 없는 대학생이었고 대학을 졸업하고선 직장을 다니느라 결혼 생활을 하느라 글을 쓰는 일은 점점 잊혀 갔다. 책과 함께 하는 일을 하고 있었지만 매일매일 수업 준비에 정신이 없었고 행사로 대회로 눈이 핑핑 돌 정도로 시간에 쫓겨 살았다. 지금 다시 하라면 절대 하지 못할 그런 시간이었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뒷전으로 미뤄두고 현실을 감당하느라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다른 쪽으로 고개 한 번 돌려보지 못한 것 같다. 그러다가 이제 쉰이 되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책꽂이에 꽂혀만 있던,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찾게 됐고, 자연스레 글도 썼고 글을 쓰니 평가가 받고 싶었고 평가가 받고 싶으니 이곳저곳 응모를 기웃거리게 되었다. 그 첫 도전이 사실 '브런치'였다. 내 주변을 돌아보고 그동안 있었던 일을 정리하고 내가 읽었던 책을 기록하려고 시작했던 포맷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독후감 응모를 하게 됐는데 삼십 년 만에 해 보았던 독후감 대회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우여곡절 사연도 많았지만 초등학교 때 전교생 앞에서 글쓰기로 상을 받았을 때의 그 짜릿함이 떠올라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피곤도 나를 어쩌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전 엄마의 뇌출혈로 병원에 입원했던 이야기와, 고등학교 때 할아버지의 기억을 소재로 쓴 수필을 응모했다. '작가'라는 타이틀이 욕심났다기보다는 내 글을 써 보는 기회로 삼고자 했던 것인데 이렇게 '덜컥' 등단이라는 기쁘지만 무거운 타이틀을 따고 만 것이다. 이리 재고 저리 재고할 성격도 아니고 치밀하게 조사해 보고 덤비는 성격이 아니어서 어디가 좋은지 어디가 권위가 있는 것인지 절차는 어떻게 되는지 알 길이 없었지만 '등단'은 나에게 작은 기쁨이고 행복이었다.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배가 된다'라고 했던가. 요즘 그 말의 양날에 기뻐했다가 서늘함을 느꼈다가 하는 중이다. 사실 나부터 누군가의 슬픔에 진정으로 함께 속상해하고 어떤 이의 기쁨에 내 일인 양 두 손 두 발 들고 같이 마음껏 행복해했던 때가 있었던가? 나만의 기쁨과 행복감에 취해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지 않고 등단 소식을 알린 나도 잘못이지만 반 박자 늦게 터져 나오는 '축하한다'는 뭔가 가슴 한 편에 시린 생채기를 만들어 놀 때가 있었다.

맥주를 기울이다 소식을 접한 이십 년 지기는

"내가 예전에 글을 쓰고 싶었던 때라면 진심으로 축하 못 했을 거 같아. 근데 지금은 온통 내 관심이 '걷기'라서 맘껏 진심으로 축하해 줄게"

라며 웃었다. 바꿔 말하면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면 진심으로 축하만 해줄 수는 없었을 거라는 뜻일 것이다. 처음엔 섭섭함도 있었지만 그 말이 솔직한 말임을 깨닫는다. 축하를 안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처럼 축하하는 맘 곁에 나는 뭐 했을까? 조금은 질투도 나고 조금은 시기심도 생긴다는 말일 것이다. 그이와는 웃고 울고 짜증내고. 모든 감정을 쏟아내는 사이였기에 이런 이야기도 대놓고 할 수 있으니 오히려 그 당당함에 웃음이 났다. 예전에 소녀 시대 멤버들이 자기들은 이미 질투하고 싸우고 샘내는 걸 모두 겪었기 때문에 이제는 괜찮다고 누가 일등을 하건 누가 잘 나가던 모두 기쁘다고 하던데 우리가 꼭 그 짝이다. 대학 동기들인 내 친구들은 정말 잘했다고 멋지다고 등을 토닥여 주었고, 학교 선생님들도 웃음으로 반겨 주었다. 하지만 간혹 문단의 비리 운운하며 책값 운운하며 돈 얼마 운운하는 고마움(?)을 보여 주기도 했는데 그 순간엔 당혹스러움도 있었지만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나름의 위안을 삼는다. 나도 누군가 축하할 일이 생겼을 때 이와 다르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뭔가 이번엔 운이 좋았겠지, 다른 때보다 쉬웠겠지, 누군가 도와줬겠지 하며 축하받을 일의 색을 빛바래게 하지 않았던가.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마음은 뾰족뾰족했을 테고 뭔가 새는 구멍이 있지 않을까 찾았을 것이다. 그때 그 사람도 내 얼굴에 살짝 감도는 시기심과 질투를 느끼지 않았을까? 그 표정을 보면서 그 사람은 고소해했을까? 당혹스러워했을까? 남보다 내가 잘되야하고 남보다 내가 더 앞서야 하고, 내가 더 많이 가져야 하고, 내가 더 자유로워야 하고. 이런 마음들은 어디서부터 출발한 것일까?

예전엔 어려울 때 도와주고 힘든 일을 함께 슬퍼하는 것이 어렵다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기쁠 때 진정으로 기뻐해 주기가 훨씬 더 어려운 것 같다. 기쁘고 행복한 일에 진심으로 웃어주고 얼싸안아주고 잘했다 대견했다 칭찬하기가 그리 쉽지 않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래서야 기쁨을 나누면 반이 되고, 반의 반이 되고. 반의 반의 반이 되는 것이 아닌가 씁쓸한 마음이다.



그날, 내가 등단 축하 메일을 받던 날은 한 초등학교에서 특강을 한 날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인사를 하는데 4학년 아이들의 목소리가 즐겁게 들리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얘들아, 따라 해 봐,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아이들이 한 번 따라 하자

"어느 말이 쉽니?"라고 물으셨다.

"고맙습니다요."

"그래, 그럼 고맙습니다. 행복하세요 하자"

그날 아이들의 씩씩한 행복 기운이 나에게 전해진 모양이다. 다음 날 그 말 때문에 정말 행복한 일이 생겼다고 고맙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축하합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가식 없고, 계산하지 않고, 경쟁하지 않고 들은 그 아이들의 축하의 말이 푸르른 하늘처럼 눈이 부신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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