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편안하게 행복한 그 길
그녀가 고향을 떠나서 여기저기로 떠돌듯이 직장이란 곳에 다니고 있을 때,
그녀는 그 힘들고 외로운 시절을 무엇으로 견디고 있었을까?
왜 지금도 그때의 생각들은 지우개로 지운 듯이 희미하기만 한지 모르겠다.
그 하루를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
춥고 어둡고 축축하던 성수동의 그 겨울을, 좁고 답답하기만 했던 볕도 들지 않던 공장의 기숙사도
생각하기도 싫은 그때의 기억들이 달라붙지 않고 휘발되듯 희미한 게 오히려 다행인 건가?
그들은 거칠고 무지하였고 서로를 이해하거나 위로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날의 작업량을 채우기에 지쳐서 행복하지 않았다.
반장, 과장, 공장장 등은 나이 어린 그녀들을 가지고 놀기에, 이용하기에 바쁘고 그것들을 권력인 듯이 즐겼다.
힘이 없고 가난한 그녀들은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보다 순응하고,
누가 더 그들에게 잘 보여 조금이라도 편안한 그 무엇을 누리기를 바랐다.
그러다 버려지고, 떠나고, 그들의 세계에는 좀 더 나은 내일이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저 좀 더 돈을 주는 곳이 있으면 한패거리의 무리가 떠났다.
그녀들은 기술을 가지고 있는 기계였다.
그녀가 기억하는 성수동은 그렇다.
그렇게 한 계절이 지나고 있었고 다시 새로운 생활에 익숙해졌다고 할까?
적응하고 있다고 할까?
또 다른 그러나 조금은 나아져 보이는 그런 곳으로 직장은 바뀌었고,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그녀의 궁핍한 생활은 바꾸지 않고 여전히 힘들었다.
야무지지 못하고 똑똑하지도 못한 그녀는 순진한 것인지? 바보 같은 것인지? 무지한 것인지?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하고 억척스러움도 없이 그렇게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시간은 흐르고 명절도 오고 휴가철도 다가왔다. 그러나 그녀는 갈 곳이 없었다
그녀의 친엄마가 갑작스레 돌아가시고 새엄마와 아빠가 있는 고향은 그녀가 찾아가고 돌아가고 싶은 그런 곳은 아니었다.
아빠가 계셨으나 엄마에게 맞추면서 살아가야 하는 그분은 자식인 그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어 주지 못했다.
그래서 그대로 홀로 빈궁한 거쳐에 있거나, 대피하듯 기도원으로 가서 그 며칠을 보내고 오는 날이 잦았다.
용기를 내어 고향 집으로 가는 길은 항상 그녀의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하다.
이번에는 또 어떤 모습으로 아빠를 새엄마를 동생들을 볼 수 있을까?
기쁘지도, 즐겁지도, 그립 지도 않은 그런 마음으로 도착한 순간 또 한 번 실망하고 마음만 아플 것이다.
다 저녁이 되었어도 어린 동생은(새엄마가 낳은 딸이다) 밥도 먹지 못하고 배고프다고 홀로 칭얼대고 있고
엄마는 또 어디 가서 술 한잔하는지 보이지 않는다.
아빠와 남동생들은 일하러 간 걸까?
냉장고를 뒤져 햄을 굽고 계란 프라이에 김치에 겨우 밥을 먹인다.
허구한 날이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
그녀의 친엄마가 계실 때는 삼시 세끼 따뜻한 밥에 국이 없으면 드시지도 않던 그녀의 아빠는, 때가 지나서 겨우 김치에 물 말아 드시는 일이 일상이 되시다 보니, 급기야는 위궤양이라는 무서운 병에 결리게 되었던 적도 있었다.
술이 떡이 되어 들어온 새엄마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이튿날이 되어서야 "큰딸 왔어?" 하면서 언제 왔는지도 모르는 그녀를 보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곤 하였다.
이러니 차라리 고향이란 곳은 없는 게 나을 거 같았고 가고 싶지 않은 곳이 되었다.
그래서 차츰 거리를 두고 더 멀어지고 있었다.
그나마 아랫동네에 살고 계시는 그녀의 외숙모와 외갓집 식구들 덕분에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들을 수 있었고 외숙모가 하시는 "그래도 동생들을 위해서 네 새엄마에게 잘해라"라고 말씀하시는 그 뜻을 알기에 연을 끊지 않고 내려갈 수 있었다
항상 몇 번씩을 결심하고 다짐하고서야 갈 수 있었고 그렇게 다녀온 날이면 새엄마의 거친 말로 또 어김없이 마음에 상처를 받고 돌아올 수 박에 없었다.
그 후로도 그녀가 결혼을 하고서도 명절에는 멀다는 이유로, 차가 밀린다는 이유로 친정인 고향에 내려가는 일이 없었다.
이제야
새엄마가 돌아가신 지금에서야 아빠와 동생들이 있는 고향에 가는 게 마음이 편하다.
아빠에게 평생 다정하지 못하였던 그녀는 새엄마가 돌아가신 이후에 그녀의 아빠께 아침저녁으로 문안인사로 전화를 드리면서 이제라도 조금은 다정한 딸이 되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동안 새엄마로 인하여 눈치 보느라 자식에게 제대로 말 한마디 못하셨던 그녀의 아빠도 이제는 편안하게 말씀을 하신다.
새엄마를 모시고 살았던 둘째네 가족들도(둘째 남동생과 올케 그리고 조카들) 이제야 눈치 보지 않고 활짝 웃으면서 말을 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존재와 부제가 이토록 주변의 큰 영향을 끼치게 되니 그 사람의 살아온 길이 어떠했는지 알게 된다
오늘도 그녀는 생각한다
나로 인하여 불편하고 힘든 가족이 없기를 바라고 노력하기로 다시 한번 다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