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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받은 어른 아이

이제 상처가 치유되어 진정한 어른이 되기를 바라며

by 난향C

꿈 많고 감수성이 예민한 그 아이는 읍내 시장에서 술에 취한 제 엄마를 보는 순간 뒷걸음을 쳐서 엄마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도망을 갔다. 그 아이는 언제부터인가 제 엄마가 부끄러워 숨는 아이가 되었다.

언제부터 였을까? 자신이 다른 친구들과 다르게 엄마 아빠의 나이가 많은 것도, 엄마의 잣은 술주정도 그저 부끄럽고 싫기만 하였다.

차라리 자신에게 지극정성 다해주는 오빠가 아빠였으면, 새언니가 엄마였으면 생각하게 되었다. 그 아이의 엄마는 술을 마시지 않는 날에도 하루 열두 번도 더 자신에게 그리고 아빠에게 오빠와 언니에게 어린 조카들까지 괴롭히며 힘들게 하였다. 날마다 술과 담배로 살아가면서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날에는 한 사람을 트집 잡아 끝까지 힘들게 하고는 마는 이상한 성격을 가졌다.


그래서 가족들은 슬슬 아이의 엄마를 피하고 될 수 있는 한 부딪치지 않기를 바랐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랬다저랬다 하는 통에 누구도 비유를 맞추기 힘들었지만, 아이의 새언니는 (그녀는 스물둘의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왔다) 그 심술궂은 성격을 무단히도 맞추고 견뎌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아마도 처음에는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고 시어머니의 뜻을 따르는 게 시집살이라고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다.

계속되는 기간 동안(30년 이 넘었다) 얼마나 힘들고 지쳐서 그 결혼생활을 그만두고 싶었을 때가 많았을지 짐작도 안된다.




그 아이는 학교에 다니면서 물질적으로는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는 아이로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받으면서 성장했다. 아이의 아빠가 50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얻은 딸이었던 그 아이는 아빠에게는 특별한 막내 딸이다.

이미 위에로 딸 하나에 아들 넷 오 남매를 두고 있었지만, 그 자녀를 키울 때는 자식들을 한 번도 품에 안아 주지 않았던, 그리고 젊었을 때는 아이들이 예쁜 지도 모르고 살아오셨던 아빠는 50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48세) 얻은 막내딸이 얼마나 귀엽고 예뻤는지 세상에 그런 아이가 없을 정도로 키웠다. 그런 그 아이는 그러나 별난 엄마 때문에 부담을 느끼고, 자꾸만 숨고만 싶은 부끄러운 엄마가 좋기도 하였으나,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 싫고 미워지기까지 하였다.


그 엄마의 별난 사랑도 과도한 기대에도 아이는 부흥하지 못하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별난 엄마의 기에 눌려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아무도 모르게 제 엄마가 매일 마시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사실 술 마시는 제 엄마가 싫으면서도 닮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기대에 못 미치는 대학을 진학하고 속과 다르게 친구들과 술 마시고 노는 걸 좋아했다. 제 엄마가 툭하면 읍내에 나가서 술을 마시고 이 사람 저 사랑하고 형님 동생 오라버니 하면서 어울리기 좋아하는 것처럼 자신도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게 좋았다.


그렇게 과도한 관심과 사랑으로 자란 그 아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취업을 했지만, 잘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두는 일이 잦아졌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고 자랐고 하고 싶은 대로 모두 다 하게 해 주었던 부모와 오빠 덕분에 어디에 가서 참고, 다른 이에게 순종하는 직장에서의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소개해 주고 일자리를 마련해 주어도 참을성이 없고 천성이 부지런하지 못한 그 아이는 결국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는 했다.

결국 호주에 어학연수를 보내주고(자신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한 게 아니라 모든 비용을 집에서 보내주었다)어학공부까지 시켜주었으나 끝내 거기에서도 적응을 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어려서부터 제 손으로 무엇 하나 수고하고 노력하여 얻은 것이 없는 그 아이가 적응하기에 사회는 힘든 곳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 아이는 서른이 다 되어가면서 제 엄마가 있는 곳으로, 자기를 위해서 지금껏 희생하며 돌본 오빠 곁으로 다시 돌아오고, 그 아이를 위해서 원룸을 새로 지어 더 이상 나가서 무엇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될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보기에는 친구도 많고 관계도 좋았던 아이는 남자친구도 사귀지 못하고 결혼도 하지 못한 채 이제 마흔이라는 나이가 되었다. 제 엄마의 잔소리와 성화에 지금껏 스트레스를 받고 상처를 받았던 아이는 결국 스스로를 자립시키지 못하고, 덩치만 큰 어른 아이가 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제 집 그러니까 엄마 아빠와 오빠 가족이 있는 그곳이, 자신을 믿고 받아주는 유일한 피난처였던 것이다.

그 후로 여러 사람이 일자리를 알아봐 주고, 아르바이트 자리도 알아 보아주었으나, 세상 무엇에도 관심이 없고 의지가 부족한 그 아이는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저 하일 없이 바쁜 농촌에서도 해가 중천에 뜨도록 자고 실컷 게으름을 피우면서 더욱더 망가져 가고 있었다.

다들 '정신을 차리고 제 용돈이라고 벌어서 생활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제 부모가 계실 때는 모를까 나중에는 어찌할 것이냐'고 아무리 말해주어도 싫기만 하였다.

그런 날이 반복되고 가끔씩 친구들을 만나면 제 엄마처럼 술을 마시고, 넘어져서 다치는 일까지 발생하였다.

급기야는 당뇨가 발견되고 허리를 다치고 스트레스로 마음의 병이 생겨서 의욕 없는 어른 아이가 되어 갔다.

주변의 가족들이, 형제들이 아무리 걱정을 하고 이야기를 하여도 모두가 짜증만 내고 더욱더 심해지기만 하였다.

그러니 제 엄마와 싸우는 날이 더해지고 그 별난 엄마는 악다구니를 쓰며 아이에게, 그리고 함께 사는 가족에게 날로 심하게 스트레스를 주며 아이와 엄마는 상처로 곪아 가고 있었다. 온 가족을 힘들게 했던 그 엄마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점 몸에 여러 가지 합병증이 생기고 아픈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술과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자주자주 병원에 실려가 입원하고 퇴원하기를 반복하면서 아이와의 갈등은 깊어 저만 갔다.

그 아이 때문에 돌봄을 받지 못했던 조카들도 상처받고 주변의 모든 가족들이 그 엄마로 인하여 힘들어하고 있던 그 즈음, 모두가 견딜수 없는 지경이 되고 나서야 그 아이의 엄마가 세상을 등지고 소천하였다.

그 미움과 애증의 상처로 아이는 제 엄마와 마지막 인사를 하였다.


"엄마 미워해서 미안했어"

그러나 그 아이를 이렇게 만들었던 엄마는 말이 없었다. 자신의 그 삐뚤어진 욕심으로 인하여 자신의 아이와 다른 모든 가족에게까지 상처를 입히고도 누워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모두의 곁을 떠났다.

그 끝없던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았더라면 자신도 덜 힘들고, 자신의 소중한 아이도 상처받지 않고, 주변의 가족들도 덜 힘들었을 텐데...

그 아이를 사랑하는 걸 조금만 자제하고, 조금은 부족하게, 조금은 모자라게 키우고 잘 가르쳤더라면 지금보다는 조금은 나은 아이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 아이는 이제는 제 엄마에 대한 미움은 조금은 내려놓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을까?

그 엄마는 저 하늘에서 이제라도 아이가 잘 되도록 기도하고 계실까?

사랑하는 딸이 받은 상처가 치유되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계실까?


여전히 그 아이의 연로하신 아빠도, 형제들도 그 아이의 상처가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라도 상처받아 아픈 그 아이도 스스로의 집에서 나와서, 세상과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가족과의 따뜻한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이 푸르른 계절에 상처가 치유되고 꽃처럼 나무처럼 어른 아이가 아니라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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