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많던 스물한 살의 그녀는
꿈 많고 순수하고 착한 한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부모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는 첫딸이었다. 그토록 사랑스럽고 어여쁘던 그 소녀는 스물한 살 겨울 크리스마스에 친구를 만나러 커피숍에 가게 되었고, 그녀는 그곳에서 친구의 소개로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는 키가 크지도 않았고, 그리 잘 생긴 거 같지도 않았으며, 그저 매너 있고 친절했다. 덕분에 조금씩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만날수록 그는 따뜻하고 배려심이 있는 친절하고 진실한 사람임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그들의 연애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아직은 어리고 꿈 많은 소녀는 일 년을 지나는 동안 한 남자의 아내가 되기로 결심하고, 스물두 살의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결혼생활은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한 사람만을 믿고 바라보면서 시작한 결혼이었는데, 그의 집은 그녀의 집안과 달랐다. 그녀의 남편인 그는 어려서 친엄마를 여의고 새엄마가 함께 살고 계셨고 그 새엄마인 그녀의 시어머니는 첫인상부터 평범하지 않은 그러니까 무언가 무서운 신데렐라의 새엄마 같은 그런 분위기였다.
따뜻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으며, 어찌나 욕심이 많고 질투가 많은지, 그녀는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변하는 그 기분을 맞추기 위해, 그녀와 남편은 쉼 없이 새벽부터 밖으로 나가 일을 하며 부딪치는 시간을 줄이는 걸로 숨을 쉬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인 그는 그동안 어찌 지내왔는지? 그가 왜 그렇게 혼자서 힘들어하고 얼마나 외로웠을지? 그녀는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녀의 남편은 그 집에서 소처럼 일하고 머슴처럼 일을 했다. 그에게 있는 건 무엇이든 그 어머니는 다 빼앗아 갔다.
그래도 그녀의 남편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그저 당연한 것처럼 모든 걸 내어 주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시어머니가 그 집에 오셔서 낳은 어린 시누이를 제 자식보다 더 챙기고, 모든 걸 다 그 아이에게 맞추어 주는 남편이 싫었다.
그녀에게도 예쁜 딸과 아들이 있었으나 남편은 제 아이들은 항상 뒷전이고 보이지 않는 거 같았다.
그녀는 시어머니의 시집살이도, 변덕도, 일의 힘듦보다도, 제 아이들이 이곳에서 소외받고 인정받지 못하는 게 더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살림에 관심을 보일 수 없었다. 배울 수도 없었다. 결혼 전에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맏이인 그녀는 부모님의 사람을 넘치게 받고 자랐고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자라고 지내는지 알았다.
그러나 그녀가 결혼한 이곳은 그녀는 상상할 수 없었던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생기는 그런 곳이었다. 그녀의 시어머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일주일이면 서너 번씩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을 드시고 들어와서는 가족들을 괴롭혔다. 그런 날에는 누구 하나를 트집 잡아 억지소리를 하고 우기기 일쑤였고 급기야는 상대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상처를 입히고 할퀴기까지 하였다.
그런 날들이 지속되면서 그녀는 점점 더 몸도 마음도 망가지기 시작했고, 그 사이 아이를 두 번씩이나 잃게 되어 모든 걸 버리고 죽고 싶어지는 날이 계속되었다.
몸도 아프고 힘들고 마음까지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그녀는 자신이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자신이 왜 결혼이란 걸 했는지? 왜 아이까지 낳은 건지? 진작 왜 도망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건지? 도무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어서 죽을 수밖에 없어 죽으려고 했다. 그 순간 그녀를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친정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차마 그 얼굴을 생각하니 자신의 죽음에 얼마나 상처를 입을 것인지 친정엄마조차 살아가시기 힘들 거 같고 그 가슴에 얼마나 큰 불효를 저지르는 것일지? 그것은 그 많은 사랑으로 키워주신 엄마에게 할 짓이 아님을 알았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나도 처량하고 서글펐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사랑스러운 딸과 아들인 그 아이들이 있었다.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을 지극한 사랑으로 키워주셨듯이 그녀도 자신의 아이들을 그렇게 키워내야만 했다.
자신이 집안 살림을 멀리하고 집 밖의 농사일에만 매달리며 지내는 동안 당연하게 아이들도 부모인 그녀의 도움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결핍을 겪으면서 자라고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눈치를 보게 되고 제 고모만 챙기는 가족들에게 어린 그 아이들은 소외되고 사랑의 부족함을 경험하면서 밝고 맑은 아이들이 되지 못하고 의기소침하였고 할머니의 횡포로 그녀가 모르는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알지 못했다. 자신이 시집살이와 눈치를 보면서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숨죽이고 포기하면서 살아가는 동안 아이들도 같은 경험과 처지로 자라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 아이들은 또 그렇게 제 엄마 아빠가 힘들 걸 스스로 알고 홀로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남편은 모든 사람들에게 잘하는 누구나 좋아하는 밖에서는 호인이었으나, 집에서는 그녀에게 자녀에게 무뚝뚝한 남편이었다. 아마도 시부모님 밑에서 살아가다 보니 제 아내나 자식을 챙기지 못하는 눈치를 보고 있었던 거였을까?
그래도 무던히도 성실하고 착하디 착한 남편이고 새엄마의 밑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어렵게 자란 그는 생활력이 강하고, 스스로 하는 일에 대해 욕심이 많고, 부족한 것을 채우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여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힘을 다해 노력하고 견디는 우직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하는 일에서는 최고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수도 없이 많은 노력으로 이기고야 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 덕분에 그녀에게도 항상 일이 많았다. 또한 챙겨야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녀의 남편은 콩 한쪽도 나누어 먹고, 반쪽이 있으면 부모 형제, 다른 사람에게 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자신은 그녀는 항상 부족했고 그녀 또한 그것이 당연한 듯 시부모님께 다 내어 드렸다.
그런 그녀를 보고 그녀의 손위 형님은(남편의 누나) 그녀를 볼 때마다 말했었다.
"너라도 너네 껐을 챙겨야 해" "네 남편은 그런 사람이야 원래부터 제 것을 챙길 줄 아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너라도 똑똑하게 챙겨서 네 자식을 키워야지" "네 시어머니는 너의 친 시어머니가 아니어서 너네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고 매일 빼앗아 가기만 하잖아" "그러니 너라도 잘 챙겨야 된다"라고 입이 마르도록 말씀하셨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아니 차라리 모두 내어 주는 게 마음이 편했다.
그녀의 큰 형님은 항상 그녀와 남편을 안타까워하고 가슴 아파했다. 자신이 동생인 남편을 돌보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한 동생이 못내 불쌍하고 안타까워서 그래서 더 그녀를 아끼고 그녀의 아이들을 챙겨 주었다.
그것이 그녀를 조금이나마 지탱하게 해주는 힘이 되기도 했다. 늘 사랑과 격려와 고마움으로 대해주는 형님이 감사했다.
이제 그 특별했던 시어머니도 하늘의 부름을 받아 소천하셨다.
스물한 살에 결혼한 소녀였던 그녀도 이제 쉰한 살이 되었다. 30년이란 세월을 자신을 버리고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던 그 시절이 이렇게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거 같다. 결혼에 대한 후회도 자식을 낳은 것도, 죽을 생각을 하면서 살아온 시간이 이토록 한순간에 지나갔다니, 그래도 아이들과 다정하지 못해도 듬직한 남편과 이를 악물고 견디고 견디어 앞만 보면서 살아온 세월이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참 잘 견디고 살아온 거 같다.
그녀는 이런 자신이 기특하고 대견하다. 덕분에 아이들은 따뜻하고 바르게 자라 주었고, 남편은 아직도 많은 일에 파묻혀 지내지만 덕분에 고맙다는 말도 가끔은 표현해 주는, 그리고 고생 덕분에 바빠도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어서 고맙고 감사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시부모님도 어려운 시절 나름대로 힘을 다하여 살아오셨고, 나름의 방법대로 자식들을 사랑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루도 마음 편하게 살아보지 못했던 그녀는 이제는 편안하게 형제들을 챙기는 따뜻하고 사랑 많은 집안의 기둥이 되었다.
그녀는 이제 처음 소녀 때처럼 마음에 따뜻함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또한 항상 고마워하고 서로를 위해주고 생각해 주는 그녀의, 남편의 형제자매들 간 특별한 사랑과 우애로 평화롭고 행복한 지금이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또한 그토록 힘겹게 모든 걸 가지고 갈 것 같았던 시어머님도 가시는 길에 모두를 내려놓고 용서하고 정리하고 가셨으니 하늘에서 평안하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