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들 조차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ㆍ그녀의 새엄마는 밖에 나가면 무엇이든 가지고 돌아왔다.
한 번도 빈손으로 들어오는 적이 없었다. 언제는 식당집 이모님이 준거라고 하면서 먹을 것을 가지고 돌아오고, 어느 때에는 헌 옷가지인듯한걸 한 아름씩 싸 가지오 돌아와서는 또 누가 준거라고 하면서 풀어놓았다. 물론 대부분은 자신의 옷가지들, 소모품들이었지만 날마다 들고 들어오는 것들이 쓰임새도 찾지 못하고 여기저기 쌓여만 갔다. 결국 그것들은 모두 집안을 어지럽게 하고 쓰레기로 변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옷가지들은 구제가게에서 욕심껏 사들고 온 것이었다.
자녀들이 대부분의 며느리 들이었지만, 시골에 갈 때마다 새 옷을 사들고 가고 또 사 입으라고 용돈을 드리고는 했지만 날마다 입을 옷이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하였다. 더 이상 넣을 곳이 없을 정도로 옷장과 여기저기 가득 차 있는 옷을 보면서도 말이다.
새엄마는 조언이나 반론 같은 걸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분은 어떤 일로도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거나, 간섭하거나, 조언하거나 하는 것을 수용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를 할 때면 불같이 화를 내기 일쑤여서 나중에는 할 말들도 하지 않게 되었다.
자신이 의견엔 아무도 반론을 제시하지 못하게 처음부터 철저히 방어막을 치곤 했다. 대부분은 한잔하시고 돌아오는 길에 있는 일이어서 아침에는 또 자신의 한 일에 대해 기억을 하지 못하시는 때에 종종 있었다.
읍내에 나가면 종일 어디에서 한잔하고 오는지 잘 몰랐으나, 사람들을 잘도 사귀는 그분은 종일 놀다가 술에 취해 대부분은 며느리를 부르거나 함께 있는 자신의 딸에게 전화를 걸어 데리러 오라고 하였다. 물론 인사불성이 되어 한말을 또 하고 또 하고 하는 그분을 대신해 식당이모가 대신 핸드폰에 있는 단축번호로 전화를 하는 날이 더 많기는 했다.
몇 번인 가는 집에 있는 가족들에게가 아니라 큰딸이라고 아마도 저장되어 있었을 그녀에게까지 회의 중인데 핸드폰이 울려서 받지 않았는데 계속해서 전화가 왔었다. 받아보니 그녀의 새엄마가 아니라 어느 식당집의 이모님이 엄마를 모시러 오라고 전화를 한 것이었다.
물론 그녀가 다시 알려주어 막내딸에게 연락하시라 하고 전화를 끊기는 했지만, 회의 중 난감한 상황에 처할뻔하기도 했었다.
자주 술을 마시고 여러 사람들에게 없는 소리 있는 소리 황당하기 짝이 없는 소리를 하고 다니는 통에 온 동네사람들과 읍내등 다른 동내의 사람들까지 그분의 술버릇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가족들은 그런 소리를 들을 때면 일일이 해명하기도 그렇고 뭐라 말할 수 없어 그저 멋쩍게 웃어넘기고는 하였다. 나중에는 더 이상 들려오는 소리에 신경도 쓰지 않게 되었다.
그냥 무시하면 그만이었고 처음에는 새엄마의 황당한 말과 거짓말에 말에 상처를 받는 날이 많았지만 그렇게 90퍼센트는 믿지 못하고 거짓으로 생각해 버리기 시작했다. 친인척들께서는 모시고 있는 자녀들을 더 염려하고 걱정해 주셨다.
물론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새엄마의 말은 그냥 흘러 들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며느리는 직장생활을 하지 않고 성심껏 부모님을 모시기로 했다. 하지만 새엄마와 함께하는 생활은 어리고 여린 그녀가 감당할 수 있을 만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이들을 돌보고, 가족을 돌보는 일이 자신의 몫이라 여겼고 그렇게 해 보려고 하였으나, 새엄마의 하루에도 열두 번씩 변하는 변덕스러움과 고집에 점점 지쳐갔다
무슨 말을 해도 “네가 뭘 알아서 그래”라는 말이 돌아왔고, 어떤 행동을 해도 새엄마의 기준에서는 ‘틀린 것’이었다. 심지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무람을 받았다. 그녀가 말을 아끼게 된 건, 체념이라기보단, 생존이었다.
그때부터 며느리는 집안일보다 바깥일을 선택했다. 해뜨기 전부터 밭으로 나가고, 해가 지고 나서야 집에 들어왔다.
허리를 굽혀 농작물을 돌보고 그것들이 자라는 것을 보는 것과, 땀에 절어 잡초를 뽑는 일조차도, 그녀에게는 차라리 숨 쉴 수 있는 일이었다. 누가 보기엔 고된 삶 같았지만, 그녀에게 그 고단함은 오히려 안식이었다.
사람의 말보다 흙과 바람이 더 정직하게 느껴졌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울음을 참는 것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자녀들 조차 엄마의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자라나고 있었다.
그녀는 어느 날 조용히 말했었다.
“나는 밭에서 일하는 게 좋아요. 거긴… 말이 없으니까요.”
"차라리 죽고 싶었던 적도 많았어요. 그러나 아이들과 친정엄마를 생각하면 그럴 수는 없었어요"
그 말을 들은 그녀는 할 말을 잃었다.
말 없는 땅이 말 많은 집보다 더 따뜻하다는 현실이, 그토록 슬프고 또 선명했다.
그렇게 새엄마의 주변에는 새엄마의 비뚤어진 욕심으로 인하여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늘어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