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말할 수 있다.
그녀와 가족들은 이제는 모두가 편안하게 말할 수 있다.
그녀의 새엄마가 스스로를 내려놓고 편안하게 가신 후 그녀의 가족들은 비로소 친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레 할 수 있게 되었다.
새엄마가 살아 계실 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새엄마의 별스럽고 특별한 그 성격 앞에서 아무도 그녀의 돌아가신 엄마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오랜 시간 동안 침묵의 다른 말이었다. ‘말하면 상처가 되고, 침묵하면 멍이 드는’ 그 시간을 지나며,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앓아야 했다. 그 중심에는 한 사람이 있었다. 새엄마.
는 성격이 괴팍했고, 고집은 벽처럼 단단했으며, 거짓말은 마치 숨 쉬듯 자연스러웠다. 술과 담배는 그녀의 위로였고, 그 위로의 끝은 가족들의 지친 한숨이었다. 특히 함께 살던 둘째 아들과 며느리, 아버지와 막내딸은 매일의 삶이 그야말로 ‘버티는 일’이었다. 새엄마의 분노와 억지, 감정의 기복은 하루도 조용한 날을 허락하지 않았다. 다른 자녀들에게도 상처를 남긴 그녀는, 어쩌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많은 부담과 고통을 나누어준 존재였다.
하지만 새엄마에게는 막내딸이 있었다. 유일하게 그녀가 낳은 딸. 막내는 그녀에게도, 우리에게도 복잡한 존재였다. 우리는 막내를 아꼈지만, 때로는 불쌍하다고 느꼈고, 또 때로는 미안함과 거리감이 교차했다. 막내는 늘 엄마의 기분을 살폈다. 자신만이라도 엄마의 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단단히 싸맸지만, 점점 그녀의 말과 행동에 지쳐갔다. 그리고 결국, 누구보다도 크게 상처를 입었다
새엄마가 세상을 떠난 날, 우리는 같은 자리에서 각자의 감정으로 그녀를 떠나보냈다. 어떤 이는 조용한 안도 속에, 어떤 이는 억눌렀던 눈물 속에. 하지만 막내는 조금 달랐다. 혼자 조용히 울던 그녀는 “그래도 엄마니까… 미워해서 미안해”라고 말하며 고개를 떨궜다. 힘들게 했던 기억보다도, 미워했던 순간들이 더 후회스럽다고. 이제 다시는 말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기에, 용서받을 수 없는 말들을 너무 많이 했다고.
그 말을 들으며, 우리는 비로소 진심으로 막내를 이해하게 되었다. 막내도 결국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딸이었다. 우리와는 다른 무게로, 다른 각도에서 엄마를 안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아마도 막내는 앞으로도 오랜 시간 복잡한 감정을 안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움과 분노, 후회와 슬픔이 뒤섞인 채로.
그러나 새엄마의 죽음 이후, 생기가 넘치고 평안해졌다. 아버지는 차분해졌고, 모두들 이제는 마음의 평안을 되찾았고, 둘째와 며느리의 얼굴에도 웃음이 보였다. 식탁에는 오랜만에 즐거운 대화가 오가고, 서로의 눈을 피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막내 역시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무표정 대신 잔잔한 표정을 되찾아갔다. 그녀는 여전히 조용히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 감정 속에 자신도 천천히 스며들게 두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도 비로소 ‘친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운 이름, 기억 속 따뜻한 손길, 짧지만 깊게 남은 그 시간들을. 새엄마가 살아 있을 땐 입에 올릴 수조차 없었던 이야기들. 마치 오래 잠가 두었던 문을 조심스럽게 여는 기분으로, 우리는 그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그녀의 향기, 웃음, 우리와 함께 했던 평범한 날들을.
가족은 완전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너진 순간들이 훨씬 더 많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놓지 않았다. 서로 상처를 안고 있으면서도, 끝내 등을 돌리지 않았다. 그것이 가족의 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제야 그녀는 안다. 때로는 누군가의 부재가, 오히려 진짜 마음을 마주하게 해 준다는 것을. 다시는 오지 않을 평온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가족'이라는 이름을 조심스레 입에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참을 필요도, 숨길 이유도 없다. 그리운 사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자유, 슬픈 기억을 나눌 수 있는 용기,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 그것이 지금의 우리를 이루고 있다.
막내의 눈물이 말해준다. 아픔도 사랑이었노라고. 우리가 모두 그렇게 살아왔다고.
아버지도, 그녀의 동생들과 그 가족인 올케들과 조카들까지 모두가 이제는 좋은 것들만 기억하고, 그래도 고마웠던 이야기들만을 나누면서 각자의 삶 속으로 들어가 부지런히 자신들의 행복한 시간들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렇게 상처를 가지고 있던 그녀는 이제는 어느 누구도 불편하고 두려웠던 그때를 떠올리지 않고 이해와 감사함으로 평안해 지길 기도한다.
다음에 '가족이란 이름으로 2'를 어떤 이야기로 돌아오게 될지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