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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서영 Aug 07. 2022

편백이에게

편백아

엄마야... 엄마는 요즘 자꾸 너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난단다. 집채만한 크기에 얼굴은 시커먼 아이가 어느 날 엄마 앞에 나타났을 때 엄마는 사실 우리의 인연이 이렇게 길지 몰랐단다. 너에게는 상처였겠지만 너가 버림받아서 엄마 곁에 오게 되었을 때 엄마는 사실 너라는 생명체가 너무 아름다워서 몹시 흥분해 있었단다. 너와 친해지고 싶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너의 케이지로 들어가서 너에게 책도 읽어주고 가만히 쓰다듬어 주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던 날들도 기억나니? 모든 의료진이 너가 무서워 마취를 하고 진료를 보려고 할 때 엄마가 마취 없이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었잖아. 우리 편백이가 정말 신사라는 걸 사람들이 그때는 잘 몰랐었지.

     

[편백이는 담요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어쩌면 아픈 다리때문일지도 몰라서 항상 푹신한 담요를 편백이를 위해 준비해두곤 했다.]


편백아

너는 여기에 와서 오랜 병원 생활로 실내 생활이 익숙하다며 무작정 집으로 쳐들어와서 지냈던거 기억나니? 할아버지가 처음에는 기함을 하시다가 나중에는 너를 제일 아끼셨지. 너는 그렇게 우리 가족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단다. 우리 가족 뿐만 아니라 우리 집에 한번이라도 방문했던 사람들은 항상 편백이 너의 안부를 제일 먼저 묻고는 했단다. 그래서 엄마는 항상 이 집을 ‘편백이의 집’이라고 불렀단다. 엄마도 알고 있었단다. 언젠가는 편백이의 집에 편백이가 없을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그래도 말이다, 편백아. 이 집은 영원히 ‘편백이의 집’이란다. 

    

[편백이를 밖에서 키울 생각이셨던 아빠와는 달리 편백이는 실내를 고집했다. 결국 거실을 점령하고 들어누운 편백이다.]


편백아

너는 아주 멋진 리더이기도 했단다. 절대 작은 아이들을 공격하거나 위협하지 않았고, 큰 애들의 싸움을 크게 만들지도 않았단다. 그래서 덕분에 우리 집은 평화로웠고 따스했으며 행복했단다. 그러다 나이가 들어 점점 건복이의 세력이 커지는 걸 보면서 엄마는 언젠가 세대교체가 이루어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단다. 그리고 건복이와 너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싸운 날 엄마는 피를 흘리는 너를 보며 마음이 찢어졌단다. 우리 편백이가 정말 나이를 먹었구나... 싶어서 말이다. 그게 왜 그렇게 서글프던지... 비록 리더의 자리에서 내려왔어도 품위를 잃지않고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는 다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단다. 역시 너는 멋진 개였단다. 

    

[편백이는 작은 애, 큰 애 가리지 않고 두루 잘 지냈다. 누구를 괴롭힌다던가 무엇을 뺏어먹는 일같은 건 하지 않았다. 멋진 아이였다.]


편백아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정상이었던 너의 혈액 수치가 갑자기 안 좋아졌을 때 엄마는 눈앞이 캄캄했단다. 갑자기 눈에 띄게 산책을 힘겨워 하고 식욕도 줄어들어 해본 혈액검사였지만 엄마는 솔직히 이렇게 까지 안 좋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단다. 모든 병이 그렇겠지만 일단 알고 나면 절대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지는 질환이 있단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신부전이란다. 그래서 신장이 망가지는게 무서운 거지. 너의 신장의 기능이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는 걸 알았을 때 엄마는 그걸 받아들일 수가 없었단다. 왜냐하면 다른 신부전 환자들은 대부분 그 정도의 수치가 되려면 많이 마르거나 임상증상이 더 뚜렷하게 나타나기 때문이지. 하지만 너는 겉보기에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엄마는 더 부정하고 싶었던거 같다. 그때부터 너와 같이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수액을 맞추고 퇴근하면 집에서 수액을 맞추는 일상을 반복했지. 그러다 급기야 너는 더이상 보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악화되었고 그런 너를 동물병원에 두고 거의 병원에서 살다시피하며 너를 보살폈단다.

      

[편백이가 병원 수술실에 자리를 잡고 누워있다. 나는 시간이 날때마다 돌보았지만 끝내 살리지 못했다.]


편백아

병원이 너무 바빠 너를 돌봐주는 시간을 내기가 힘들어 엄마가 4일 휴가를 내고 너와 꼭 붙어 있었던 때 기억하니? 그리고 휴가를 하루 남겨두고 너가 새벽에 엄마곁을 떠났던 것도 기억하지? 엄마가 충분히 너와 함께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엄마가 충분히 슬퍼할 수 있도록 시간을 남겨두고 떠나간거지? 너가 혹시라도 괴로운건 아닌지, 안락사를 해야하는건 아닌지 고민하는 엄마가 힘든 결정을 내리지 않아도 되도록 너가 먼저 떠나간거지? 편백이 너는 떠날 때도 멋지게 신사답게 그렇게 갔구나... 너의 배려로 엄마는 너의 빈자리를 잘 견뎌내고 있단다. 그래도 말이다, 편백아... 엄마는 너가 너무 보고싶구나.

     

[편백이가 내 침대에 누우면 내가 누울 공간이 없었다. 그래도 어찌 삐집고 들어가서 편백이를 안고 누우면 누군가 그 모습을 사진찍어 줬으면 했는데... 결국 그 사진 한장 못남겼다

편백아

너가 강아지별로 떠난지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구나. 엄마의 편지가 많이 늦었지? 엄마가 너 이름만 생각해도 너무 눈물이 나서 도저히 편지를 써내려갈 수 없었단다. 지금도 몇번을 멈췄다가 다시 쓰는지 모른다. 거기서 만복이랑 숑숑이랑 먼저간 아이들 잘 만나고 있니? 우리 편백이 얼굴 하나 안 상하고 그 모습 그대로 편안한 표정으로 잠들어 줘서 고마웠단다. 그 모습 엄마는 계속 기억할테니깐 우리 편백이 이쁜 얼굴로 강아지별로 간 그 얼굴 엄마는 하루에도 몇 번씩 떠올린단다. 편백아... 정말로 정말로 엄마한테 와줘서 고마웠단다. 엄마는 편백이 엄마로 살아서 너무 좋았고 앞으로도 계속 편백이 엄마일거고 우리 집은 편백이 집일 꺼란다. 사랑한다. 편백아... 그저 바램이 있다면 한번만이라도 널 꼭 안아보고 싶구나... 

    

[많이 아픈데 힘든 몸으로 내 퇴근길에 나와서 반겨주던 모습의 편백이. 한번만 너를 다시 안아볼 수만 있다면...]



편백이 엄마여서 행복했던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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