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동물병원은 군에서 운영하는 보호소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보호소에 아픈 아이가 입소를 하거나 입소한 아이가 갑자기 아프면 나의 동물병원을 찾으신다. 나는 보호소 애들을 돌봐줄 수 있음에 너무나 감사하며 그런 아이들을 정성껏 치료해주곤 한다.
[열무가 나한테 온 첫날 찍은 사진이다. 이렇게 얌전히 있을 줄 알았는데 몇 일만에 본색을 드러냈다.]
어느 날, 보호소에 말티즈 한 마리가 들어왔는데 오른쪽 허리 부분에 작은 공만한 종양이 달려있었다. 나는 그 아이 종양을 제거하고 그와 동시에 중성화 수술도 진행하였다. 종양은 샘플링을 하여서 조직검사를 보냈고 그 결과 악성 종양은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났다. 천만 다행이었다.
[열무 몸에 붙어있던 종양 덩어리이다. 이 덩어리가 없었으면 열무를 못 만났을 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새삼 고맙기도 하다.]
치료는 성공적으로 끝냈지만 그때부터 이 아이와 나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병원 케이지에 넣어놓으면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고 케이지를 전부 물어뜯어 놓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그 아이를 병원에 풀어두었는데 내가 귀가하고 다시 병원에 와보자 병원 벽을 뚫어놓았다. 그걸 보는 순간 나는 이 아이를 입양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갇혀있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는 아이를 다시 보호소로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이렇게 분리불안이 심한 아이가 어디로 입양되어도 파양 안 되고 잘 살 확률이 낮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미용을 하고 나니 완전 다른 아이가 되어 있었다. 너무 사랑스럽지 않은가?^^]
그 아이는 단점도 있었지만 장점이 더 많은 아이였다. 가둬두지만 않으면 짖음도 없는 순한 양이었다. 사람들도 좋아하고 다른 강아지들도 좋아하는 공격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아이였다. 병원에서 손님맞이 개로 두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하얀 털에 말티즈라고 하기엔 긴 주둥이를 가지고 있어 열무가 생각났다. 그렇게 ‘열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그 아이를 나의 곁에 남기기로 결정을 내렸다.
[아이들과 산책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면 병원으로 가버린다. 그래서 종종 산책만 시키고 병원에 데려다 준다.]
나랑 떨어지기 싫어서 함께 집에 몇 번 가보더니 갑자기 어느 날부터 병원에만 있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큰 개들이 많은 우리 집이 조금 불편했던지 자기가 큰소리치면 예쁨을 한 몸에 받는 병원이 더 좋은 모양이었다. 병원에서 한 발자국도 안 나가겠다고 고집을 피웠고, 안고 집으로 가면 다시 병원으로 혼자 돌아가는 일이 반복되자 나는 포기하고 열무를 병원에 두고 퇴근을 하게 되었다.
[열무가 산책나와서 즐겁게 놀고 있다. 내 곁에서 멀어지지는 않지만 산책은 좋아하는 것 같다.]
분리불안은 그렇게 열무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막을 내렸다. 열무는 자신이 선택한 병원을 훼손하는 짓은 그 뒤로 한번도 없었다. 대신 나는 열무를 보기 위해 출근을 서두르게 되었으며 퇴근은 항상 뭉그적거리다 열무에게 맛있는 간식 전달 의식을 치르고 나서야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열무와 나는 서로 맞춰가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갔다.
내 눈에는 세상 귀여운 열무이다. 사람들이 꼬통아니냐 화이트 테리어 아니냐 이런 말들이 오고가지만 나는 무엇이든 상관없다. 난 열무면 된다.
이렇게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새끼가 된 열무를 가끔 어떤 손님들은 싫어하시기도 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이 동물을 기른다고 모든 동물을 좋아하여야 한다는 전제는 없으니깐 말이다. 하지만 열무는 앞서 말했듯이 갇혀있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는 아이였다. 내가 잠깐 진료를 보는 동안 열무를 가둬두려고 하면 난리가 났었다. 갇히는 것에 대한 끔찍한 기억이 있는 것 같아 가둬두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러다 병원이 너무 바빠져서 간호사 선생님을 채용하게 되었고 가끔 다른 개를 싫어하는 손님이 오시면 간호사 선생님이 열무를 봐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열무를 가두지 않아도 되어서 아주 기뻤다.
[열무의 귀여움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켜줄 사자 매너벨트를 차고 있다. 코끼리 벨트도 있다.]
이런 해피엔딩도 잠시 열무가 갑자기 손님들한테 오줌을 싸기 시작했다. 손님 3분이 오줌 테러를 당할 뻔한 이후부터 열무는 매너벨트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매너벨트를 착용한 이후에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아 아주 만족하고 있다.
[1주일 전부터 자꾸 손을 핥아서 넥칼라 까지 하고 있다. 열심히 약을 발라주고 있으니 손이 괜찮아지면 언능 풀어주려고 한다.]
그렇게 열무는 점점 병원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지고 열무를 찾는 손님들도 늘고 있다. 열무를 위해 간식을 챙겨오시는 분들도 계시니 나는 그저 감사히 생각하고 있다. 열무가 나에게 오기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나는 열무가 눈감는 순간은 그려진다. 분명 내 품에 안겨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까지 나는 열무와 함께 할 것이다. 나의 출근을 반기는 열무가 있는 한 나는 병원문을 기쁘게 열수 있을 것이고, 열무와 함께 시작하는 아침은 언제나 기분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