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상두산 김개남
※2021 전북 정읍시 상두산 모습: 동학 대접주 김개남의 고향이 석산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돌방무덤같은디.’
정남수는 포클레인을 멈추고 중얼거렸다.
가시가 억센 엄나무들이 촘촘히 입구를 가로막고 있어 그저 산에 박힌 돌인 줄만 알았는데 폭약에 산이 허물어지면서 돌기둥이 드러난 것이다. 요양병원에 계시는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엄나무 순이어서 좀 더 피면 올라가 꺾어볼 요량으로 포클레인 기사 정남수가 며칠 전부터 눈독을 들이고 있던 자리였다.
“돌가루 먼지땜시 동네 사람 다 죽것다."
“우리 동네 남자들 암에 걸려 다 죽고 씨가 말랐다.”
“시장은 사장 말고 주민들 편에 서라.”
산 아래 하우스 옆에서 동네 늙은이들이 외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을 캐내기 위해 산을 발파하는 날이어서 동네 사람들이 몰려온 것이다. 화약이 폭파하자 비산먼지가 버섯구름처럼 온 산을 감쌌다. 엄나무 순들은 비산먼지에 뒤덮여 뜯어도 못 먹게 되었다. 아쉬운 마음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무너진 산자락에 돌방무덤 입구가 선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돈 필요 없다. 상두산 파괴 멈추라.”
“저 산에 송이버섯 노루 궁둥이 버섯을 돌려달라.”
“동학 김개남 대접주 고택을 문화재로 지정하라.”
“동학성지에 20년 석산개발도 모자라 또 허가를 내주는가?”
늙은이들이 외치는 목소리를 들으며 정남수는 다시 돌방무덤을 바라본다.
산 너머 영원에서도 이런 돌방무덤이 발견되어 문화재 지정이 되기도 했다. 한때는 정남수도 결혼식 사진 촬영으로 돈맛을 보기도 했지만 소도시에 젊은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결혼사진도 점점 비싼 웨딩업체와 옵션으로 찍는 바람에 사진관은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먹고 사느라 공사판을 구르다 보니 포클레인 사진기사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지만 쉬는 날엔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리는 것이 낙이었다.
10여 년 전 영원 향토사학자 곽형님이 고향 은선리에서 돌방무덤을 발견했다. 면장이나 시장은 콧방귀 뀌는 시늉만 했다. 발을 동동 애달아하는 형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몇 달에 거쳐 주말마다 은선리 산자락을 오가며 사진을 찍어 돌방무덤을 알리는 작업을 도왔다. 그렇기 때문에 돌방무덤의 입구는 외갓집 기와 대문만큼이나 눈에 익었다. 정남수는 현장 사무소로 차를 몰았다.
“부장님. 아무래도 문화재 신고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문화재? 무슨 풀 뜯어묵는 소리여. 이 산속에 무슨 문화재?”
사무소의 김 부장은 큰일 날 소리라는 듯 인상을 확 찌푸리며 소리쳤다. 그러면서도 서둘러 차를 타고 공사현장으로 올라왔다.
“저기 돌기둥 두 개 위로 큰 돌이 지붕처럼 걸쳐져 있지 않습니까? 굴방식 돌방무덤이 분명합니다. 국사책에서는 횡혈식 석실묘라 하지요.”
“헛소리 허지 마. 흙 파는 사람이 멀 안다고. 보기에는 그냥 산자락에 바윗돌이구만.”
“흙이 차있어서 그렇지 입구의 흙을 파내기만 하면 넓은 석실이 나옵니다.”
“무덤을 돌집으로 지었어? 늙은 부모 죽으라고 갖다 놓는 고려 장터?”
“아닙니다. 가까운 영원면에도 많아요. 포클레인도 화약도 없는 옛날에는 이 무덤 짓는 것이 지금으로 치면 아파트 짓는 것만큼이나 큰 공사였을텐데 그 돈 있으면 부모 공양하지- ”
“안에 금관이나 도자기 이런 것들이 들어있단 말이야?”
“그렇진 않을 것입니다. 이 무덤은 왕들의 묘가 아니라서 유물이 나오는 경우는 없다고-”.
“그려? 문화재다 뭐다해서 골치 아파지기 전에 포클레인으로 빨리 뽀샤버려.”
“예?”
“저기 저 사람들 안 보여?”
산 아래 하얀 비닐하우스 옆에는 여전히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골치 아프구먼. 이 석산 허가 낼라고 들어간 돈이 얼만지나 알아? 재판까지 해서 겨우 허가가 떨어졌단 말이야. 시장이나 국회의원 거기에다 돈 냄새 맡고 달라드는 측근과 똘마니들까지 쥐어주고 멕여주느라 드는 돈이 얼마인지 아냐고? 더구나 저렇게 시끄럽게 해서 마을 발전기금이네 동네 꽃놀이네 이 동네 저 동네에서 뜯어가는 돈은 또 얼마고. 거머리 같다니까.”
김 부장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래도 허가만 받으면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 석산이란 걸 이 판에서 누가 모를 것인가.
“무슨 동네 신문 기자라고 개처럼 물어뜯고... 내년 선거에 나올라고 쇼하는 거야. 지들이 시의원 시장해보라지. 어디 뒷돈 받을 사업 없나 눈에 불을 켜고 다닐걸. 언놈이나 시장되면 지 시장될 때 밀어주고 보태주는 놈들이 한둘이겠냐고. 선거를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돈은 공짜가 없응께. 돈으로 주든 사업으로 주든 자식들 취직자리를 만들어주든 뭐든지 갚아줘야 하니까. 아주 머리통 까지게 들이대고 덤비는데 무슨 수로 당해.”
김 부장이 웩 소리를 내더니 누런 가래침을 뱉었다. 담배 피우는 양이 늘어나더니 가래침 덩어리도 커지고 있었다. 딸이 고3이고 아들 하나는 대학생 졸업한 놈은 몇 년째 취직 공부 중이라 했다. 시청에 기간제라도 들이밀까 하고 여기저기 말을 해보지만 순번 타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돈이라도 한 뭉치 찔러주면 어렵지 않겠지만 김 부장은 사장이 아니니 월급으로 뭉칫돈을 무슨 수로 만든단 말인가. 폐가 나빠져 담배를 끊어야 한다면서도 먹고살라면 일을 해야 하고 담배라도 피우지 않으면 이 일은 너무나 견디기 힘든 일이란 걸 정남수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징글징글허구만. 다른 동네는 1년에 한 오천 쥐어주고 방귀깨나 뀌는 놈 또 몇천 몰래 쥐어주면 잠잠해지는데 저 놈의 동네는 밤낮으로 동학이네 김개남이네 들먹이며 갈수록 더 시끄러워지니.”
정남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수막이 길 양쪽으로 갈수록 더 많이 나붙고 상두산 석산 20년 지긋지긋하다고 동네 사람들이 대문짝만 하게 인터뷰를 했다. 급기야 상두산에 석산이 다섯 군데 개발되면서 주민들이 수십 년 고통을 받고 있다고 9시 전국 뉴스에까지 나왔다. 그뿐인가. 석산 돌가루가 저수지로 들어와 저수지에 물고기 민물새우 씨가 말랐다며 저수지 물까지 다 빼버리고는 새 흙이 나올 때까지 싹 긁어내고 더는 돌가루가 저수지로 못 들어오게 해달라고 시위가 이어졌다. 게다가 동네 사람들은 돈을 모아 석산허가 취소 소송까지 걸어 재판 중이었다. 그럴 때마다 김개남의 이름이 나왔다. 100년도 전에 역적으로 목이 잘려 패가망신한 동학 우두머리 이름이 왜 살아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그러나 주민들이 이기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려우리라는 걸 정남수는 안다. 석산 밥을 먹으며 살아온 세월이 확신시켜주었다. 공무원도 의원도 결코 주민 편이 아니다. 저렇게 못살겠다고 외치는 노인네 중 10년 허가기간 끝나면 몇이나 살아있겠는가. 동학군처럼 저 늙은 동네 사람들도 머지않아 그렇게 주저앉을 것이다.
그때 뿌옇게 먼지를 날리며 차가 달려오더니 이 팀장이 뛰어내렸다.
“부장님 저 사람들이 드론을 띄우려 하고 있습니다.”
“뭐야 드론?”
달려온 이 팀장 말에 김 부장이 피우던 담배를 집어던졌다.
“신문사 기자가-”
“머해 임마. 빨리 가서 막아야지. 장 기사 빨리 포클레인 끌고 올라가. 밥줄 끊기고 싶어?”
정남수가 머뭇거리자 김 부장이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담배 냄새가 확 풍겼다.
“빨리 포클레인으로 올라가 얼릉 부수어버리란 말이여. 진짜 문화재가 나와 드론에 찍히기라도 하는 날이면 이 공사는 끝이야. 끝.”
“그래도 나중에 문제가...”
“문제는 문제를 만드니 문제가 되는 거지. 옛날 사람들이 돌로 무덤 만드는 거나 지금 사람들이 돌로 집 짓는 거나 다 똑같은 일. 문제가 되기 전에 얼른 덮어. 어머니 요양 병원비가 몇 개월 밀렸다고 했지? 돌을 빨리 캐서 팔아야 밀린 월급을 받을 거 아니야.”
김 부장은 차문을 세게 닫더니 이 팀장과 함께 사람들 모인 아래로 내려갔다.
정남수는 돌방무덤을 부수었다. 사실 돌방무덤이 아닐 수도 있었다. 전문가도 아니고 다시 보니 그냥 큰 돌이 우연하게 걸쳐진 것 같기도 했다. 입구의 돌은 포클레인 삽날로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곽형님이 와도 여기가 돌방무덤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터였다. 무덤 입구에 세워졌던 큰 돌들을 집어 아예 멀리 옮기고 잠시 한숨을 쉬었다. 끊은 지 몇 년 전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다시 일을 시작했다. 혹시나 해서 무덤자리 흙은 포클레인 삽날이 성냥개비나 되는 것처럼 아주 살살 파냈다. 어느 순간 포클레인 삽날에 무엇인가가 부딪혔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돌이 아닌 것이 직감적으로 전해졌다. 정남수는 얼른 포클레인에서 내려와 손으로 삽날 근처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보드라운 흙에서 질항아리가 하나 나왔다. 아직 드론은 뜨지 않았다. 김 부장 정 부장은 최선을 다해 실랑이를 하고 있을 터였다.
정남수는 항아리를 들고 얼른 포클레인으로 들어왔다.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단단한 항아리 안에는 기름 먹인 책이 한 권 들어있었다. 푸시시 바람 빠지는 소리가 입 밖으로 나왔다. 김개남 전. 표지를 떠들자 전주성 남문 초록 바우에서 개남장 목이 사라진 건 1895년 정월이었다고 첫 줄이 쓰여있었다. 김개남 이야기인가. 이게 돈이 될까? 정남수는 잠시 생각하다 덮어놓고 다시 포클레인을 움직였다.
항아리 속의 책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정남수는 도통 알기가 어려웠다. 어쩌면 큰돈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남수는 항아리에서 나온 책을 동학 공부하는 최은희에게 건넸다. 정남수가 오래전 결혼사진을 찍어준 인연으로 김개남의 이야기 하나가 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