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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희 Oct 08. 2021

개남 開南

제1 부 을미년  1장 도둑맞은 모가지

                                
                                                                                                     

전주성 남문 초록 바우에서 개남장 목이 사라진 건 1895년 정월이었다.

소나무에 매달려있던 개남의 목이 백주대낮 포졸들 눈앞에서 도둑맞았다. 

다음 날 새벽 전주성 남문에 괘서 한 장이 크게 걸렸다.

“산 개남이 죽은 개남의 목을 가져간다. 개남개벽 오만년대운” 

전라감영이 발칵 뒤집히고 잘린 목에 다시 천냥의 현상금이 걸렸다.

그러나 100일이 가까워지도록 개남의 목은 오리무중이었다. 

”죽은 개남은 가짜, 진짜 개남은 살아있대여.“

“아무도 모르는 산속 동굴에서 수만 군대 다시 모아 말을 타고 총을 쏘고 있다네.”

“콩 석 되는 말이 되고 깨 석 되는 병사가 되고.”

“개남이 다시 돌아와 이전 세상을 깨끗이 때려 부수고 개벽 세상을 연 다지.”     

소문은 나무에 새순이 파랗게 피어나듯 봄바람에 은밀히 번졌다. 한양에서 전녹두가 처형된 이후 개남의 소문은 더욱 기승을 부렸다. 임실 옥전리에 남원 은적암에 금산 장터에 개남이 나타났는데 생전의 옷을 입은 모습 그대로였다고. 숨어있는 장수들을 모으고 있다고. 한동안 개남의 목을 찾아 한몫 잡으려는 이들이 들쑤시고 다니는 통에 지금실 마을은 장날이 아니어도 소란스러웠다. 그러나 청명 곡우 농사철이 다가오자 이즈음은 잠잠해졌다.     

 

‘살아있을 리가 있는가.’

덕보 영감은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조선을 삼키려 하는 왜놈들로부터 나라를 지키겠다고 수만 군대를 모아 싸움에 나섰던 개남이 임금이 보낸 관리에게 죽임을 당하다니. 그 생각만 하면 덕보 영감은 피를 토하고 싶었다. 다 죽게 생겼으니 제발 군사를 이끌고 얼어붙은 동작강을 건너 한양성에 입성해달라 임금이 승지를 시켜 애통조 밀지를 보내왔다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어찌 임금의 군대가 왜놈 대장의 명을 받들고 동학군 수십만 명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저희도 조선 백성이 분명한데 양반들과 아전들은 어찌해서 품삯을 주고 포수를 사들여 왜놈들과 싸우다 쫒겨온 동학군들을 이날까지 꿩사냥하듯 잡아 죽인단 말인가?

죽일 놈들. 덕보 영감은 자기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온다. 지난 갑오년 섣달 초사흘이었다. 개남이 잡혀 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받고 엄재를 넘어 전주성으로 갔을 때 그러나 이미 개남은 산사람이 아니었다. 전주성  서문 밖 다리를 건널 때 짧은 겨울해는 어둠을 내리고 시래기국 끓는 냄새 뉘집 저녁 밥상에  오르는지 짧조름한 갈치 굽는 냄새가 퍼지고 있었다. 더 달려 북문 숲정이에 이르자 무리지어 선 강화병들이 양총을 겨누고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막았다. 사람들이 올려다보는 하늘에 희게 회칠한 머리가 까마득한 장대에 걸려있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들여다보니 사지가 찢긴 몸뚱아리가 피에 젖은 저고리에 달라붙어 가마니 위에 널려있었다. 눈알을 파내려는지 장대 주위를 까마귀 떼가 날개를 퍼덕거리며 날았다. 

저 끔찍한 모습이 개남장이란 말인가.

덕보영감은 수없이 말로만 들었던  동학선생 수운 최제우의 최후의 모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30년 전 대구성에서 처형당해 목이 내걸렸다던 수운의 마지막도 이다지 끔찍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덕보영감 눈 앞에서 검은 갓이 목 없는 시신의 배를 갈라 삵쾡이처럼 생간을 꺼내 입에 넣었다. 

“아버님 아버님.”

 피칠한 입으로 엎드린 젊은 유생이 땅바닥을 치며 울부짖었다. 몇몇은 옆에서 큰 소리로 곡을 했다. 

"남원부사 이용헌의 아들이여."

"이 자리에서 아비가 동학 폭도들에게 목이 베였지.덕분에 가문이 멸문의 화에서 벗어났으니.부사가 동비들과 손을 잡았다면 저 아들은 평생 삿갓을 쓰고 이름을 감춘채 살아도 죽은 목숨이 되었을 터. 하늘을 어찌 보겠는가."

"개남 그 놈이 포악하기 이를데 없어 임금이 보낸 관리의 목을 치더니 사필귀정. 속이 씨언하네. 개남 그 비도가 지난 봄 원평에서도 홍초토사와 함께 온 임금의 선무사들 목을 베어 생솔가지로 덮어놓지 않았나."

"칼로 흥한자 칼로 망하는 벱이여. 개남에 비하면 전녹두는 양반이었지."

갓 쓴 늙이들이들의 목소리 속에 유독  카랑카랑 한 목소리가 들렸다.

"역적 김옥균의 시체가 양화진에 도착했을때 갑신년 역적난에 아비를 일었던 아들이 옥균의 창자를 꺼내씹어 아비의 원수를 갚자 중전께서 큰 효자라 상을 내리시지 않았는가. 구천을 떠돌고 있을 남원부사께서 저렇듯 효자아들을 두었으니 이제 원이 풀리시겠네."

흡족한 표정의 메기수염 노인을 보며 덕보 영감은 벙어리 냉가슴 앓듯 억장이 무너졌다. 

그냥 저냥 한량처럼 계속 살았으면 좋았을 것을 어쩌자고 동학에 들어 이 험한 꼴을 당한단 말인가.


어흑. 흑흑흑.

참혹한 시신의 모습에 저절로 터져 나오는 비명이 새어나오지 못하게 덕보 양감은 입을 틀어막았다. 사흘 사이에 눈앞에 일어난 이 모든 일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나랏일을 함께 걱정하던 무엇보다도 임낙안은 왜 개남장을 전라감영에 밀고했을까? 어찌 전라감사는 압송 하루만에 처형을 시켰단 말인가? 주저앉고 싶은 마음으로 몸을 돌려 눈물을 닦고 있을 때 저만치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개남의 가까운 벗이었던 최명한이 틀림없었다. 남원 둔덕방 개남의 처가쪽 일가가 많은 탑동 마을의 삭녕최씨 최명한은 태인에 들러 개남과 벗하는 날이 많았다. 물론 갑신년 난리전 일이다. 과거에 급제해 한양살이를 하던 중 갑신년 난에 엮여 왜국으로 도망갔다고도 하고 남쪽 섬 어딘가에 숨어 산다고 하던 최명한이 처연한 표정으로 찢어발겨진 시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자가 어찌 전주성에 있단 말인가.

"서방님."

눈물로 얼룩진 눈으로 덕보영감이 가까이 가서 부르자 최명한의 눈동자가 커졌다. 


"지금실 덕보입니다. 개남장 행랑채-"

그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최명한은 굳은 얼굴로 외면하더니 황급히 자리를 떴다. 덕보 영감은 옷자락을 붙잡지 못했다.


사방에 총을 든 강화병들이 지키고 있었지만 여기저기 흐느끼는 울음소리를 막지 못했다. 멀리서 여인들이 눈물을 훔치며 한목소리로 슬픈 노래처럼 울부짖었다.

개남아 개남아 진개남아 수만군사 어데두고 전주야 숲에 유시됐노. 

개남아 개남아 진개남아 수만군사 어데두고 전주야 숲에 유시됐노     

어둑어둑 성문이 닫히는 시각이 되자 포졸들이 시신을 가마니로 덮었다. 그리고 돌을 얹어놓았다. 무남영 포졸들이 긴 창을 들이대며 사람들을 몰아냈다. 피 냄새를 맡고 모여든 들개들이 흰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개남의 머리는 소금 궤짝에 담겨 우금치를 넘고 남태령을 넘어 한양으로 갔다고 며칠 후 덕보영감 귀에도 전해왔다. 개남의 죽음을 팔도에 알리려는 조정의 뜻이었다. 조선에서 제일 큰 남대문 밖 칠패 시장은 설을  앞두고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리고 한양 백성들과 팔도의 장꾼들은 찬바람 속에 매달린 개남의 얼굴을 보았을 것이다. 공주성에 내걸린 목이 다시 전주로 온 것은 정월 대보름날이 훌쩍 지나서였다. 소금 궤짝에 담겨 천리를 오가며 눈과 비 찬바람에 매달렸던 얼굴이 곤지산 초록바위 소나무에 다시 내걸렸다. 전라도에서 가장 큰다는 남문 장날. 장터에 모인 사람들은 소나무에 내걸린 목을 다들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검은 옷을 입은 사내가 바위에 훌쩍 뛰어오르더니 포졸들을 죄다 남천에 던지고는 목을 나꿔채 비호처럼 사라져버렸다고 그 모습이 남원 은적암에서 칼춤을 추며 날아오르던 개남의 모습과 똑같았다는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덕보영감을 잠못들게 하는 것이다.

‘그럴 리가 있는가. 한번 죽은 사람이 어찌 살아나.’

덕보 영감은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회칠한 그 얼굴이 혹시 가짜였단 말인가?

그 까마득한 장대위 희게 회칠한 얼굴이 개남장이었다고 내 눈으로 확인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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