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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희 Oct 08. 2021

개남 開南

제1 부 을미년 2장 벙어리 처녀


“만석이 아부지.”

손녀 분이를 품에 안고 자던 옹간네가 나직한 소리로 부른다.

“주문 외고 계시우?”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한밤중에 저리 은근한 소리로 부르는 건가. 앉아서 눈을 감고 있던 덕보 영감은 마음이 흩어지면서도 속으로 외고 있는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를 그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장대 끝 개남장 머리가 잘 기억이 안 난다. 진짜 개남장이었든가.

“아무래도 새애기 배가 불러오는 것 같은디.”

뜬금없는 옹간네의 말에 덕보 영감은 눈이 번쩍 뜨였다.

“뭔 소리여?”

“오매 조용히 말허씨요. 저쪽 방에 다 들리것네.”

“말을 혀.”

“배를 봉께 산달이 얼매남지 않은 것 같어라우. 혼인헌 지 을매나 되었다고. 남세스러와서 참말로.”

“참말이여?” 

“아니 긍게 처녀 총각이 꼭 혼인해야 애가 생기는 거는 아니지만. 우리 천석이가 칠월 백중 때 남원에서 솔찬히 있단 온 것도 사실이고.”

옹간네가 말을 눙쳤다. 하지만 곧 폭폭한 속을 터트린다.

“참말로 무슨 처녀가 어째 길쌈할 줄도 모르고 물 길어올 줄도 모르고. 방아 찔 줄도 모르고, 며느리 본 늙은 시에미가 물동이이고 동네 우물가기도 우세스러봐서. 얼굴만 선녀 같으면 머할거여.”

덕보 영감이 봐도 그랬다. 남원에서 왔다는 벙어리 처녀는 손이 가래떡 반죽처럼 흰 것이 호미 한번 빨래 방망이 한번 잡아본 적 없는 양반집 규수 같았다. 물동이를 이고 나갔다가 아까운 항아리를 깨뜨린 뒤 옹간네는 며느리를 우물가에 내보내지 않았다.  

“저래가꼬 이런 깔끄막 골째기에서 어찌 살랑가. 벙어리니 뭘 물어볼 수도 없고.”

한숨을 폭폭 내쉰다. 그러나 다행한 일 아닌가. 아들을 낳으면 천석이가 살아오지 못하더라도 대가 끊기지는 않을 터였다.

“나가서는 뭔 소리 허들말어.”

덕보 영감은 다시 눈을 감는다. 손 안의 염주를 굴리며 다시 속으로 주문을 시작한다.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참말로 내 얼굴에 내가 먹칠 허는 건디 누한테 말할랍디여. 동네 여편네들이 네삭동이네 오삭동이네 우물가에서 입방아를 찧을 판인디. 참말로 번갯불에 콩 구어먹듯끼 맹물 혼사를 올린다고 헐 때 알아봤어야 하는디.”     

줄줄거리던 옹간네는 덕보 영감의 말이 없자 벽 쪽으로 돌아누웠다.      

쏙똑 쏙똑. 

봄이면 우는 쏙똑새 소리가 뒷산 옥녀봉에서 들린다. 멀리 상두산에서 그 소리를 들었는지 쏙똑새가 답하듯 또 울었다. 쏙똑 쏙똑.

자는가 했더니 아직 할 말이 더 남았는지 옹간네가 다시 돌아누웠다.

“천석이가 성황산에 싸우러 가기 전날 새복에 말이요. 저 짝 방에서 머라 머라 작은 소리가 나고 우는 소리도 나고혀서 내가 살째기 벽에 귀를 댔는데... 시상에.....”

옹간네가 말을 똑 끊었다. 참지 못해 덕보 영감이 묻는다.

“댔는디?”

“아니 긍게 실은 내가 살째기 나가 문틈으로 들여다봤는디......”

“봤는디?”

“시상에 처녀는 땃땃하게 아랫목에 이불 덮고 누워있고 우리 천석이는 얼음 같은 윗목에 돌부처 모양 앉아 있더라니까 요.”

“새복인 게 일어났것제”

“먼 소리랍디여? 혼인한 지 사흘 째면 밤마다 깨가 말로 쏟아지고 새벽에 우는 닭은 모가지를 비틀고 싶은 때가 바로 그 때인디.”

덕보 영감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옹간네가 후딱 일어나 앉는다.

“설마 뱃속에 넘의 자식을 넣고 시집온 기생년은 아니겠지라? 

덕보 영감은 쯧쯧 혀를 차고 방문을 연다. 

‘차라리 기생이면 낫지. 양반집 금지옥엽 딸을 동학군들이 겁탈해서 뺏어갔다고 남원에서 몽둥이를 들고 들이치면 어쩌누. 종놈이 양반 딸을 욕보였으니 강상죄인 이라고 집을 불태우고 덕석을 말아 몽둥이찜질을 하면 옹간네도 나도 죽은 목숨. 분이는 또 뉘 집 종으로 끌려갈 것인가?’

나쁜 꿈을 꾸는지 칭얼거리는 분이를 토닥이며 옹간네가 기어이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나는 어째 저 벙어리 처녀가 영 내 며느리 같지가 않어라우. 참말로 개복인지 새복인지. 천석이 놈은 새색시 데려온 지 사흘 만에 왜놈들이 총 들고 죽이러 온 성황산으로 가더니 죽었는지 살았는지....” 

캄캄한 속에서 덕보 영감은 댓돌을 더듬더듬 짚신을 찾는다.

“우리 만석이가 보고 잡소. 돈 많이 벌면 우리 어매 비단옷에 기와집에 종 부리고 살게 해 준다고 했던 우리 큰 아들... 우리 분이 에미는 맷돌질을 해도 그리 잘하고 도굿통에 방아질도 그리 잘했는디.... 썩을 놈의 난리는 왜 일어나서 우리 만석이가 그리 험한 꼴로 시상을 뜨고..... 분이 에미는 친정으로 뜨고.”

새벽부터 또 눈물 바람이다.

“은전에 눈이 멀어 제 발로 죽을 자리 찾아간 것을 누굴 탓해?”

짚신을 발에 꿰던 덕보 영감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마당에 서니 캄캄한 밤하늘에 봄 별이 반짝인다. 

세상사가 어찌 되었든 저 밤하늘은 영롱하기 그지없다.

“덕보야 저 끝없이 넓은 저 우주에서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콩알보다 작대여. 우리 모두는 콩알만 한 시상의에 눈에 안 보이는 티끌이나 한 가지라고 홍 사또님은 늘 그러셨다. 그러니 사람이 사람을 양반 천민 나누는 것은 하늘이 보기엔 가당치 않은 일이라고.”

태인 관아 관노비였던 할아버지는 사또의 담뱃대를 들고 따라다니던 종노미였다. 북경에 다녀왔다는 홍사또는 밤마다 별을 보고 글을 썼는데 곁에서 먹을 가는 어린 종에게 별에 대해 말했다. 덕보라는 이름도 홍사또를 못 잊은 할아버지가 지어준 것이었다. 

“저기 우주가 우리가 왔던 고향이고 죽으면 우리는 모두 저 캄캄한 하늘의 별로 간다고. 가고 오고 그러니 죽는 것이나 태어나는 것이나 하늘이 보기에는 둘 다 똑같은 것이여.”

그러니 죽는 걸 언제까지나 슬퍼할 필요는 없는 일이라고, 보부상군으로 황톳재에 갔다가 죽은 큰아들 만석이가 생각날 때마다 덕보 영감은 되뇌어왔다. 그러나 개남장은 아직 죽으면 안 될 사람, 살아있어야 할 사람이었다. 세상이 도로 거꾸로 돌아가서는 안되지 않은가. 그랬다간 천석이는 살아있어도 영영 집에 못 돌아올 터였다. 싸움에서 지고 죽창을 들고 화승총을 들고 오갈 데 없이 몰리던 동학군들에게 고향은 호랑이 아가리가 된 지 오래였다. 살아남은 사람도 일하던 논과 밭, 부모형제 처자식이 있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돌아왔다가는 역적이고 비도라고 잡혀갔다. 동비 놈들은 씨를 말려야 한다고 양반들은 시절을 만난 듯 외치고 다녔다.     

우두커니 별을 보던 덕보 영감은 아래채 두엄 칸 옆 골방문을 연다. 구들에 불을 지피지 않아도 냉기가 가실 때가 왔으니 이제 골방에서 혼자 지내도 될 터였다. 다시 청수를 올리고 주문을 왼다. 새벽마다 주문 외우는 소리로 들썩이던 동네였지만 개남장이 처형당한 후 사방으로 사냥꾼들이 동학도를 잡으러 다니자 주문 소리가 뚝 그쳤다. 

하지만 마음이 복잡할 때는 주문만큼 좋은 게 없었다. 잡생각을 떨치고 온 힘을 다해 외우다 보면 차츰 마음속의 흙탕물이 가라앉고 맑은 샘물이 퐁퐁 솟구치며 온몸이 새싹 움트는 나무처럼 새로운 기운에 감싸였다. 

주문을 오래 한 도인들은 그런 말에 저절로 이심전심 고개를 끄덕이지만 도인이 아닌 사람은 그 무슨 귀신 씬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고개를 젓거나 손가락을 머리에 대고 빙빙 돌리는 것이 미친놈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니 술과 고기보다 이불속의 마누라보다 청수 주문이 더 좋다는 말은 입 밖에 꺼낼 필요가 없었다. 주문 중에 하늘의 지극한 기운이 크게 내리면 구름처럼 훨훨 날아 멀리서 일어나는 일을 보기도 하고 앞날을 미리 보는 이도 있다지만 덕보 영감은 그런 경지에 이른 적은 없었다. 그리 볼 수만 있다면 개남장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있을 텐데. 

지기금지 원위대강 지기금지 원위대강. 지기금지 원위대강 지기금지 원위대강......  

여느 날보다 더 간절한 마음으로 덕보 영감은 주문을 왼다. 개남장이 살아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며느리가 아들 낳았으면 하는 마음보다, 더 앞장을 섰다.      

“만석이 아부지 만석이 아부지. 큰일 났구만이라. 송하 도사가 오늘내일한다요.”

옹간네의 외침에 덕보 영감은 눈을 뜨고 방문을 열었다. 어느새 해가 떠서 마당이 훤했다. 우물에 다녀온 옹간네는 물동이도 내리지 않고 선채로 입을 여는데 개복이가 물동이를 내려주려고 부엌에서 나왔다. 

“수성군들이 어찌나 패부렀는지 또 송장 치우게 생겼다고. 남조선 뱃노래를 부르며 개남장이 살아있다는 거짓 소문을 장날에 퍼트렸다고 관아에 잽혀가서는-”

“악”

개복이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허리를 숙인 옹간네 머리에서 내려주려고 잡고 있던 물동이를 놓쳤는가 싶더니 물동이가 나동그라져 발등에 굴렀다.  

“아이고메. 참말로. 미운 강아지 상추밭에 똥 싼다더니. 항아리마다 다 깨묵게 생겼네.”

덕보 영감은 며느리가 놀래서 애가 떨어지면 큰일이다 싶었다. 치마 끝이고 발이고 물로 흥건하게 젖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개복이는 입을 틀어막고 선 채로 닭똥 같은 눈물만 툭툭 떨어트린다. 

“근디 니가 송하 도사를 아냐? 어째 친정아부지 죽었다는 소식마냥 물동이까지 떨어트리고 난리-”

“여기 김개남이 집이 워디여?”

갑자기 들려온 큰 소리에 옹간네가 입을 다물었다.

낮은 돌담 너머로 우락부락한 사내가 얼굴을 디밀고 있었다. 그 뒤로도 패랭이를 쓰고 단단한 물미장을 든 머리가 서넛은 더 되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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