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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희 Oct 08. 2021

개남 開南

제1부 을미년 3장 비황석





“영감탱이가 귀가 먹었나? 역적 김개남이 집터가 어디냐고?”

우락부락 패랭이가 다시 물었다. 놀란 옹간네가 개복이를 데리고 부리나케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때였다.

“접장님 찾었어라우, 여그가 틀림없고만이라.”

뒤쪽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사내들은 우르르 몰려갔다. 

지금실 고개를 넘어와 용머리장에 장터로 내려가던 장돌뱅이 패거리임에 틀림없었다.

“시상에 등짐까지 풀어놓고 개남장 집은 왜 찾는당가?”

어느새 옹간네가 가까이 와서  돌담 밖을 가리켰다.

산기슭 외따로 백 살은 됨직한 푸른 소나무 한그루가 우람했다. 가지들이 우산처럼 빙 둘러 쫙 뻗은 큰 소나무를 동네 사람들은 개남송이라 불렀다. 새벽이면 붉은 기둥을 오르내리며 개남은 칼 노래를 부르고 칼춤을 추었다. 높은 가지 끝까지 새처럼 훨훨 날아오르는 모습이 영락없는 은적암 최수운 선생의 모습 그대로라고 어릴 적 은적암에서 동자승으로 최수운을 모셨던 일해 스님은 지금실에 올 때마다 감탄했다. 

‘시호시호 이내시호’ 칼노래를 부르며 ‘용천검 드는 칼을 아니쓰고 무엇하랴’ 소나무 끝에 올라가 개남이 옷자락을 펄럭이며 ‘용천검 날랜 칼은 해와 달을 희롱하며 게으른 무수장삼 우주에 덮혀있네’ 목소리를 높이다가 소나무 위를 구름 밟듯 가볍게 솟구쳐 온몸을 큰 바람처럼 휘몰아치며 돌아 ‘좋을시고 좋을시고 이내신명 좋을시고’ 춤을 추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광활했다. 하늘의 지극한 기운이 감응해야만 가능한 춤이라 했다. 진인을 찾아 팔도를 떠돌던 송하 도사가 새벽안갯 속에서 개남이 칼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난 뒤 지금실에 머문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근디 저 도토리만 한 왜놈 항아장시는 이번 장에도 또 왔나벼?”

군산항에서 오는지 서양 옷감, 왜놈 사기그릇, 석유통을 묶은 등짐들이 소나무 아래 보였다. 깊은 산골인 용머리 장터에서도 물 건너온 옷감과 그릇, 석유 같은 걸 몇 년 전부터 쉽게 구경할 수 있었다. 아낙들이 좋아하는 분과 성냥, 미국 담배, 학질에 특효약인 금계랍과 아까징끼같은 약 등 자잘한 물건을 왜놈 황아장수는 궤짝에 넣어 장터를 돌아다녔다. 덕보 영감은 뒤란을 돌아 멀찌감치서 패랭이들을 바라보았다.     

“진개남 진개남 하더니 좃되야 부럿네.”  

“석유를 찌클었는지 아조 서까래까지 다 타부럿구만요.”

“김개남이가 남원에서 왕이 되면 상두산 아래서 삼정승 육판서가 날 거라고 굉장혔지.”

“정량리 것들이 어찌나 좌도 우도를 활개 치고 다녔는지 남원 사람들은 정량리가 고부보다 더 큰 줄로 안단 말입니다. 접장님.”

패랭이들은 물미장을 들어 불타버린 집터를 가리키며 떠들었다.

“에구머니나.”

물동이를 이고 물을 길어오던 과부 백암댁이 장돌뱅이를 보자 황급히 돌아섰다. 불타버린 집 빈터지만 마당 돌우물엔 변함없이 맑은 물이 솟구쳤다. 지난봄 서방이 전주성 함락에 갔다가 한양 경군 대포에 죽자 백암댁은 청수 그릇을 개밥그릇으로 던져버린 지 오래였다. 하지만 동네에 하나뿐인 개남장 마당의 우물물까지 먹지 않을 수는 없어 눈을 흘기며 물을 길어 다녔다. 늘 집안에서 볼 수 있었던 안주인 임실댁도 개남이 잡혔다는 소식에 몸을 피했다. 늦은 밤 영문을 모르는 어린 백술이는 큰 집 종의 등에 업혀가며 덕보 영감에게 몇 번이나 손을 흔들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진눈깨비를 뚫고 물래봉을 넘어온 태인 수성군들이 집에 불을 질렀다. 옥녀봉 이마 아래 우뚝하니 널찍하던 다섯 칸 집과 큼지막한 초가 별채는 그날로 잿더미가 되었다.      

“개남이 모가지는 아직도 오리무중 이제?”

“겁대가리도 없이 초록 바우에 매달린 모가지를 훔쳐간 놈은 누굴까요?”

“뻔하지 않은가. 5만 부하 중에 한 놈이겠지. 남원에서 5만 명이 김개남을 따라 일어섰으니.”

“전라감영에서 모가지를 찾는다고 정월 보름부터 고개마다 새우젓 장수 젓갈독까지 쏟으며 눈이 벌겋게 찾고 있지만 당최 종적이 없다지 않습니까?”

“차라리 개남이 살아있으면 좋겠네. 나도 동학 수괴 잡아서 천냥 돈에 벼슬받아 팔자 좀 고쳐보- 어이쿠.”

패랭이가 갑자기 눈을 감싸 쥐고 꼬꾸라졌다. 납작한 돌 하나가 마당에 굴렀다. 

“아이고 접장님 괜찮소?”

작은 패랭이가 넘어진 패랭이를 큰 소리로 흔들었다. 시누대 숲에서 먹물 옷을 입은 사내가 삿갓 머리로 사뿐히 우물가에 내려섰다. 

“웬 놈이냐?”

“이, 이, 놈 동비 놈이 분명하다. 이 동네가 동비의 소굴이라고-”

“오냐, 오늘은 장사 때려치우고 동비 사냥이나 해볼까? 천 냥짜리면 좋겠는데.”

물미장을 치켜든 패랭이 셋이 우르르 삿갓을 둘러쌌다. 삿갓이 훌쩍 돌담으로 날아올랐다. 새가 앉은 듯 돌담에서는 굴러 떨어지는 돌이 하나도 없었다. 

‘저 신은?’

덕보 영감은 눈동자를 문질렀다. 낯익은 가죽신이었다. 상두산 너머 원평 백정 접주 동록개의 갖바치들이 상이암에 있던 개남장의 두령 100명에게 가죽신을 지어 바친 것은 7월이었다. 소가죽과 연장을 소가 끄는 수레에 싣고 상이암까지 가서 지푸라기로 발을 일일이 재서 만든 그 신발이 틀림없었다. 가죽신을 신으면 아무리 험한 산길이어도 길 없는 풀숲도 호랑이처럼 늑대처럼 달릴 수 있었다. 새끼로 칭칭 동여맨 짚신과는 달랐다. 백정 동록개를 도와 상이암에 갔던 덕보 영감은 가죽신에 눈을 떼지 못했다. 

“동비 사냥? 이 놈들아 경회루에서 임금이 왜놈들에게 잔치를 열었다. 수십만 조선 백성을 살육한 왜놈들에게. 이기고 돌아와 장하다고 궁궐에 불러 공로를 치하하며 돈과 술상을 내렸단 말이다. 장악원 기생들이 왜놈들에게 술을 따르고 승전무 춤을 추었다. 동학군마저 없어졌으니 이제 왜놈들은 털 뽑은 닭처럼 조선을 삶아 꿀꺽 삼킬 일만 남았다. 천냥? 부모 자식이 왜놈들 종으로 살날이 코앞인데 한 치 앞을 못 보는 똥 버러지 같은 놈들.”

“뭐여? 똥 버러지?”

“이런 호로상놈이 어디 앞이라고 말을 그 따우로 찌클어.”

“우리가 지난봄 금산에서 동비 100명을 아작 낸 혜상공국 보부상이여.”

가죽신이 웃었다. 

“지난 봄날 황톳재에서 은덩이에 눈먼 목화송이들이 동학군 죽이러 왔다가 검은 등짝에 혜상공국 도장이 찍힌 옷을 입고 황천길로 갔는데 오늘 니놈들이 그 동무들이 보고 싶은가 보구나. ”

날렵하게 생긴 패랭이가 물미장으로 돌담을 치며 가죽신이 선 돌담 위로 뛰어올랐다. 보부상들의 박달나무 물미장은 사람을 때려죽일 정도로 단단했다. 물미장 작대기는 지게를 받치거나 지팡이 역할도 했지만 무서운 무기이기도 했다. 산적이나 왈패들에게 장사 물건을 지켜야 했기에 싸움이라면 물미장을 휘두르며 도가 튼 자들이었다. 대원군이 장돌뱅이 보부상들을 병인양요에 소집한 연유도 그런 까닭이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나온 동네 사람들이 덕보 영감 주위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가죽신이 돌담 위를 다람쥐처럼 달려 시누대 숲으로 사라졌다. 물미장 셋이 숲으로 뛰어들었다. 시누대가 흔들리고 고함소리가 들렸다. 한참이 지난 후 다시 가죽신이 튀어나와 담장에 올라섰다. 패랭이 셋이 그물을 펼치듯 담장을 향해 내달렸다. 손바닥 속 올챙이처럼 잡히나 싶던 가죽신이 칼등으로 큰 키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챙하는 소리와 함께 큰 키가 골목으로 나가떨어졌다. 앞뒤로 달려드는 패랭이에게 발목이 잡히나 동네 사람들이 숨을 죽이는 순간 가죽신은 훌쩍 솟구치더니 덕보 영감 초가지붕으로 날아올랐다. 패랭이들은 지붕까지는 엄두가 나지 않는지 닭 쫓던 개 모양 지붕을 올려다보았다. 

가죽신은 지붕에서 삿갓을 살짝 들어 올린 채 동네 사람들을 보았다. 수염이 무성한 입이 보였다. 그때 물미장 지팡이 하나가 팽그르르 활개를 치면서 지붕으로 날아올랐다. 사람들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 가죽신이 훌쩍 뛰어오르자 지팡이는 초가지붕에 떨어졌다. 

“어이쿠.”

눈 깜짝할 사이 물미장이 지붕에서 다시 마당으로 향하는가 했더니 퍽 소리가 나고 패랭이가 나뒹굴었다. 지붕 위의 가죽신이 땅바닥에 사뿐히 내리더니 산기슭을 내달아 개남송을 타다닥 차고 나무 꼭대기로 올랐다. 항아장수가 혼자 살겠다고 등짐을 진 채 달아났다. 동네 사람들이 달려가 소나무 위에 우뚝한 사내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개남장이여. 우리 개남장, 하늘이 우리를 버린 게 아녔네 그려.”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

“저 소나무를 저렇게 날아오르는 이는 세상에 개남장밖에 없지. 암만.”

“저 검은 옷 옷 말이여라. 임실댁이 소매를 좁게 해서 지은 남원으로 보낸 그 옷 맞지라.” 

“그려그려 개남장이 소매 너풀거리는 것을 싫어해서 버선목 하게 지은 옷.”

가죽신은 다시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장돌뱅이들 등짐을 죄다 물이 흐르는 계곡으로 차 버렸다. 

그리고 곧 삿갓의 손을 떠난 돌 하나가 장터로 가는 내리막길로 화살처럼 윙 날았다. 돌은 정확히 사내의 뒤통수에 박혔다. 항아 장수는 궤짝을 등에 진 채 그대로 엎어졌다. 

‘비황석 아닌가. 아, 개남장이 진짜 살아왔단 말인가?’

덕보 영감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삿갓은 손잡아 볼 새도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상두산자락으로 노루처럼 사라졌다.

“하늘이 새 세상을 맹글라고 낸 인물이 그리 쉽게 사그라들 리가 없지. 암만.”

머리가 허연 검댕이네가 저고리 고름을 들어 눈물을 닦았다

“무슨 소리 한번 죽은 사람이 먼 수로 살아온다고 그런 창시 빠진 소리를 한다요?”

뒤에 서있던 백암댁이 앙칼지게 소리쳤다.

“개남장이 살아있으믄 이 동네는 다시 불구덩이가 될 텐데 그래 좋소? 아이고, 이 사단이 벌어졌으니 또 수성군들이 개남장 잡는다고 떼 지어 오겠구나. 이번에는 누가 잽혀가 송하 영감탱이처럼 목숨이 간당간당 해질랑가. 항아장시 왜놈까지 돌 맞은 개구락지가 되었으니 왜놈 군대까지 들이치것네. 죽을 일만 또 남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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