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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희 Oct 08. 2021

개남 開南

제1부 을미년 4장 상두산 호랭이굴

삿갓이 상두산 자락으로 사라지자 집으로 온 덕보영감은 맘이 급했다.

개남장이 살아왔으면 머물 곳은 단 하나 상두산 호랭이굴 뿐이었다. 서둘러 망태를 매고 나가다 소리쳤다. 

“밥 멀었어?”

“쑥죽 끓고 있고만이라.”

“밥에 소금 간해서 서너 덩이 싸줘.”

“아니 쌀이 어디 있다고?”

“실겅 아래 묻어놓은 쌀.”

“오메 뭐시여라?”

옹간네의 눈이 커졌다.

“산삼 자리에 댕겨 올 참이여. 애 날라면 미역도 사야 헐 테고.” 

옹간네는 산삼이란 말에 부엌 살강 아래를 파고 약처럼 숨겨두었던 항아리 속 쌀을 꺼낸다. 덕보 영감은 밥 익는 냄새가 너무 더디다고 상두산 호랑이 굴 속에 개남장이 앉아 기다리기도 하는 것처럼 마음이 급했다.      

“엄마 엄마.”

손녀딸 분이가 엄마꿈을 꾸다 일어났는지 눈물을 비비며 방문을 열고 나왔다. 덕보 영감은 분이를 등에 업고 마당 끝에 선다. 동쪽 묵방산에서 불끈 솟구친 햇살에 도원천이 강물처럼 반짝인다.

“분이야 우지 마라. 할매가 쌀밥 헌다.” 

“쌀밥?”

“그려 쌀밥 묵게 우지 마라.”

분이가 등에서 울음을 그치고 얼굴을 따뜻한 등에 댄다.     


개 남장이 분이만했을 때는 다들 개똥이라 불렀다. 이태조를 도와 나라를 세운 개국공신 김회련이 받은 왕지가 도강 김 씨 집안의 큰 자랑이었다. 임진왜란 정유재란의 의병장이 여럿 난 태인 갑족의 후손이라 방귀소리도 제일 큰 가문이 도강 김 씨였다. 도강 김 씨 집안의 막둥이 개똥이는 수호지를 어찌나 좋아했던지 수대산 양산박 두령 장청이 되겠다고 글공부가 끝나면 날마다 정량리 집 앞 도원천에 나가 돌을 던졌다. 동네 아이들도 덩달아 줄지어 도원천 가운데 바위를 맞히느라 제비 새끼처럼 시끄러웠다. 납작하니 메뚜기처럼 날아가는 비황석을 줍고 갈고 던지다가 어깨가 빠지는 바람에 덕보 영감이 업고 의원 집으로 달음박질을 친 적도 있었다.

“ 나는 이담에 장청 색시처럼 돌팔매질을 잘하는 처녀와 혼인을 할 것이여.”

개똥이는 등에 업혀 덕보 영감에게 그렇게 의젓한 소리를 하기도 했다. 

몇 해를 넘기지 지나지 않아 동무 미륵이와 함께 마침내 날아가는 꿩을 잡고 토끼 사냥을 할 만큼 실력이 늘었다. 미륵이와 개똥이는 탐관오리에 맞서 일어선 수호지 양산박 108 두령 흉내를 내며 정량리 동곡리 아이들을 죄 이끌고 상두산을 오르내렸다. 아이들이지만 귀가 있어 상두산 여립이 산성 왕바위에 올라 멀리 바다를 보며 어른들처럼 수심 어린 말들을 서로 나누곤 했다.

“서쪽 오랑캐 나라에서 온 배여. 머리는 노랗고 눈은 파랗고 얼굴은 눈처럼 하얀데 키는 장승보다 크고.”

“천자가 서양 오랑캐의 쫓겨 열하로 도망가고 자금성이 불타버렸다지 않아.”

“중국 사람들을 다 죽이려고 아편을 먹인대여.”

“다음엔 조선으로 쳐들어온다는데 저들의 대포는 백리를 날고 한번 터지면 성이 통째로 날아간대.” 

“중국에는 천주학당이 높이 서고 땅도 서양 오랑캐가 맘대로 차지했대여.”

“십자가를 목에 걸고 있으면 서양 오랑캐들이 안 죽인대.”


13살 소년왕이 한양에서 아버지 대원군을 등 뒤에 세우고 등극하던 해 개똥이는 열두살이었다. 그 해 정량리에도 큰 소동이 두 번이나 났다. 이른 봄 개똥이에게 줄포 앞바다에 새카만 이양선이 왔다는 소리를 용머리 장터에서 듣고 돌아와 전해준 것은 덕보 영감이었다. 다음 날 개똥이는 말없이 동무 열댓 명과 70리 길을 걸어 줄포항까지 갔다가 갯가 아이들과 패싸움이 붙는 바람에 큰 소동이 났다. 못 보던 낯선 애들이 찾아오자 갯가 아이들이 이양선을 보려면 돈을 내라고 응짜를 부렸던 것이다. 상두산에서 왔다는 소년들 돌팔매질에 맞아 찢어진 어린 것들 상처를 고쳐놓으라고 줄포에서 떼 지어 사람들이 쫓아오고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는 바람에 굉장했다. 머리통이 깨진 애들이 한둘이 아니라며 줄포 사람들은 개똥이네 곳간에서 퍼준 쌀자루를 메고서야 물러갔다.

      

“밥 다 되얐소. 분이야 밥 묵자.”

옹간네 말에 분이가 등을 두드리며 좋아했다. 개복이와 옹간네 분이가 밥그릇 앞에 앉는 걸 보며 망태 안에 삼베 수건에 싼 밥덩이를 넣어 어깨에 맨 덕보 영감은 집을 나섰다. 아침에 삿갓을 쓴 사내가 노루처럼 사라졌던 상두산 자락으로 들어선다. 


상두산 꼭대기 왕바위에 걸터앉아 덕보 영감은 담뱃대를 꺼냈다. 태인 관아 고현내 무성서원 평사리 동곡리 사방이 훤히 보였다. 정월 대보름마다 원평 더네들과 달집자리 다툼을 하며  달집을 태운 자리가 새카맣다. 김인배접주와 김덕명 접주가 사는 동네가 북뽁으러 보인다. 멀리 모악산 회문산 내장산이 병풍처럼 잇대어 변산까지 호남정맥이 뻗어가는데 변산 너머로 바다가 보였다. 

“조병갑 이 놈. 어쩌자고 저 좋은 강물에 억지로 만석보를 막아서는...아무리  왕비가 궁방전 토지에 보를 막아 명례궁에 물세를 거둬 바치라는 명을 내렸다 했지만...”

고부 들판 가운데 홀로 우뚝한 고부 두승산 아랫자락을 휘감아 구렁이처럼 흘러온 정읍천은 만석보 웃머리에서 태인천과 만나 동진강으로 강폭이 넓어졌다. 강물이 부서진 만석보를 지나 백산을 휘감는 지점엔 보름사리 때 밀물져오는 바닷물이 파도처럼 넘실넘실거렸다. 넓은 갈대밭 갯벌로 쪽배가 드나들어 배들평이라 불렀다. 배들평 갯가에는 지금쯤 새파란 갈대 아래 풀게들이 바글바글 풀 뜯어먹는 소리가 요란할 터였다. 동진강이 몸을 푸는 바다 북쪽은 무성서원 고운 선생이 어린 시절 글을 읽었다던 선유도였다. 소년 최치원의 글 읽는 소리에 바다 건너 중국 산둥반도 처녀들이 밤새 잠 못 이루고 가슴 설레었다는 소리는 산둥 땅이 군산포에서나 줄포에서나 배 띄우고 순풍에 사나흘이면 도착할 만큼 가까운 거리라서 만들어진 말이었다. 젊은 시절 군산포에서 골패 노름으로 밤사이 배 한 척을 딴 개남장이 선주와 의형제를 맺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명절이면 북어쾌에 아귀 포를 한 짐씩 보내오던 선주는 개남장 따라 동학에 입도해서 군산 접주가 되었는데 다행히 배를 몰고 무사히 황해도로 갔다는 소식을 얼마전에 들었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있는 것이은 그걸로 천운같은 일이었다. 

     

덕보 영감은 좌우를 몇 번이나 살피고 지금실 고갯길 쪽으로 산자락을 타고 내려 호랭이굴 골짜기로 들어갔다. 이 근방에 삿갓이 숨어 있을 곳은 오직 호랭이굴 일터였다. 개남일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개남일지도 모르는 그 삿갓 사내가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마음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주먹밥을 서둘러 만든 것도 산속 굴속에 밥을 굶고 있을 그 사내 때문이었다.

산새 소리만 이따금 울리고 물소리만 들릴뿐 골짜기는 봄볕에 고요하다. 늑대 바위에서 호랑랭이 굴을 내려보니 엄나무 순들이 파랗게 피어있을 뿐 인적은 느껴지지 않았다. 호랭이가 산다는 굴이 있는 골짜기라서 동네 사람들은 여간해서 발걸음을 하지 않는다. 몇년 전 옆 골짜기 구장리 천주쟁이들 교우촌에 호랑이가 나타나 마당에서 노는 계집애를 물고 간 이후로 더더욱 이 골짜기는 인적이 끊기고 말았다. 덕보 영감은 호랭이 굴이 내려다보이는 건너편 산자락 늑대 바우에 쪼그려 앉는다. 우람한 참나무들도 연두빛 잎이 피어 곱다.

      

“덕보야 그 거이 산삼이여.”

낮에도 캄캄하던 저 호랭이 굴에서 할아버지가 건네주신 쓰디쓴 뿌리를  꿀꺽 씹어 삼켰을 때 할아버지가 했던 말은 잊을 수가 없었다.

“산삼은 임금도 자시기 힘든 명약이여. 니는 천하장사가 될 거여. 그란디 산삼을 묵었다고 아무에게도 말허믄 안돼야. 주인 나리가 알면 산삼을 도둑질했다고 멍석 찜질을 당해 너나 나나 황천 목숨이 될 거여.”

연기 없는 싸리나무로 꿩을 구워서 이 굴에서 먹었고 덫에 걸린 산토끼를 구워 먹은 적도 있었다. 고기 먹을 일 없는 종놈 손자를 위해 익은 고기에 소금을 찍어 어미 제비처럼 먹이던 할아버지 얼굴은 얼마나 흐뭇하게 웃고 있었던가. 

“덕보야, 아무에게도 이 굴을 말하지 마라. 여기가 외갓집이고 할아버지 집이고 네 집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약초 캐는 할아버지는 이 굴에 호랭이가 사는 것처럼 동네 사람들에게 더 힘주어 말했던 것일까? 

“마님. 약초 자리를 일러주고 캐는 법을 갈쳐 나야 늙은 지가 죽어도 덕보가 나리마님 약초를 캐다드리지라우.”

그렇게 말하고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는 덕보를 상두산 칠보산 회문산으로, 또 호랭이 사냥꾼 남포수를 따라 지리산까지 데리고 다녔다. 더운 여름에는 약초를 캐다 말고 이 굴에서 잠도 잤다. 고구마 한 덩이나 된장 찍은 보리밥을 먹고 할아버지는 팔베개를 해주며 청학동 이야기를 굴속에서 들려주었다. 

“지리산 골짜기 바위 사이 좁은 길로 백리를 가면 복숭아꽃 핀 마을이 나오고 그곳은 푸른 학이 한번 울면 모든 근심이 다 사라진단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사철 향기로운 과실들이 주렁주렁 열리고 벼이삭은 수수 이삭처럼 무겁고...” 

괴질에 아들 며느리를 잃고 혼자 남은 손자를 젖동냥으로 키워준 할아버지 생각에 덕보 영감은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젖배를 곯은 손자를 위해 눈 딱감고 칠보산에서 캔 산삼을 몰래 먹였던 것이다. 

    

봄에 줄포에서 싸움으로 사달 일어난 지 몇 개월 후 그해 가을 개똥이는 더 큰 사단을 벌렸다. 대구에서 무당처럼 신내림을 받은 최복술이란 훈장이 역적질로 처형되었다는 말이 장날마다 소란하던 때였다. 병을 고친다는 부적을 나눠주고 밤낮으로 주문을 외게 한 서학 죄인 최복술의 목이 대구성 장대 끝에 대롱대롱 매달렸다는 소문은 남원 운봉 고개에서 임실 오리정을 지나 여우치 고개를 넘어 용머리 장터까지 파다하게 퍼졌다. 어린애고 어른이고 여자고 남자고 소년왕과 대원군의 소문만큼이나 큰 난리 소식이었다. 그 난리 못지않게 상두산에서도 큰 사건이 터졌다. 

밥때를 넘기고 밤이 되어도 집집마다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아 정량리 골목은 이집 저집 애를 찾아 소란스러웠다.  여느날과 달리 늑대들의 우우, 긴 울음소리가 먼 골짜기에 메아리쳤다. 동네 사람들이 관솔불을 붙이고 호랭이골로 떼 지어 달려갔을 때 늑대바위에 푸른 불 두개가 보였다. 우두머리 늑대가 호랭이굴을 향해 긴 울음 소리를 냈다.

달 밝은 보름밤이면 상두산 여립이 산성에 모여 전쟁놀이를 하던 개똥이와 동무들이 그날은 고개 너머 마을까지 가서 돼지를 한마리 몰래 서리를 해왔던 것이다. 돼지를 묶어 어깨에 걸머지고 호랭이 굴아래 계곡에서 고기를 구워 잔치를 벌인 것이었다. 그런데 계곡물에서 잡은 돼지 피 냄새를 맡고 배고픈 늑대들이 호랭이 골짜기로 모여든 것이다. 동네 사람들 횃불이 가까이 갈수록 늑대들은 아이들이 들어있는 호랭이굴 가까이로 이빨을 드러내 놓고 으르렁댔다. 굴 속을 향해 부모들이 애타게 아이들 이름을 불렀다. 우두머리 늑대의 울음이 더 거세졌다. 굴 앞에서 화답하는 늑대들의 울음소리도 커져갔다. 덕보 영감도 개똥이 큰형님 영백 영수와 함께 달려갔다. 호랭이 굴 속에 있을 되련님 개똥이 생각에 눈앞이 노랬다.

      

“그날 밤 돌에 맞아 애꾸가 된 상두산 대장 늑대가 여기 이 자리에 서있었지라우?”

등 뒤에서 우렁우렁 한 소리가 났다. 덕보 영감은 앉은 채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참나무 뒤에 가죽신이 보였다.

“오랜만이오. 덕보아재 올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소.”

검은 옷에 삿갓이 나무 앞으로 드러났다.




                                                                                                        

시미즈 도운 <최제우 참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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