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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희 Oct 08. 2021

개남 開南

제1부 을미년 6장 장흥 덕도 대탈출

“이년이 김개남이가 살아왔다고 쓴 통문이라도 감추고 오는 거 아녀? 풀어봐.”

술냄새를 풍기는 수성군 하나가 옹간네 머리에 인 나물 보따리를 긴 창으로 찔렀다.  “암 것도 아니어라우. 생선 장시하는 동상 갖다 줄라고 너물을 좀이고 왔당게요.”

“지금실에서 돌팍에 맞아 시방 사람이 죽게 생겼어.” 

놀란 분이가 울음을 터트리며 등짝에서 바들바들 떨었다. 소란이 일자 주막에서 중노미가 뛰어나왔다. 저만치 유상대 버드나무 아래 물고기를 낚던 아이 하나가 쏜살같이 동네로 뛰어갔다. 

분이를 땅바닥에 내려놓고 삼베 보따리를 푸는 옹간네 가슴이 쪼그라들었다.

‘항아장시 왜놈이 죽었단 말인가? 그래서 수성군들이 징검다리를 지키는가?’ 

벙어리 며느리와 차곡차곡 다듬어 골라온 나물과 고사리가 이리저리 헤집는 수성군 창끝에 허물어지고 흩어졌다.

“동학 허는 것들은 음흉하니 감춰도 치마 속곳에 감췄것지. 보따리에 넣었을 리가 없지.”

늙은 수성군 하나가 킬킬거리며 쪼그려 앉은 옹간네 치맛자락을 창으로 휘적였다.

“오메 왜 이런다요. 암것도 감춘거 없당게라.”

속곳까지 벗어보라 할 참인가, 치마 끝을 불끈 여며 쥐며 옹간네는 눈앞이 캄캄했다.

그때였다.

“무슨 일로 아녀자를 희롱하는 게냐?”

검은 갓을 쓰고 무명 도포를 입은 양반이 큰소리를 치며 다가왔다. 이마를 수건으로 묶은 건장한 장정들이 지게 작대기를 들고 뒤따라왔고 물고기 잡던 소년 하나가 그 뒤에서 머리를 내밀었다. 갓을 쓴 이는 무성서원 색장에 고현향약 임원 국헌 양반이었다. 수성군들이 입술을 비죽이며 머리를 조아렸다.

“어제 아침 비도가 나타나 용머리 장터로 가는 보부상들을 해치는 일이 일어나서...”

“그래서 아녀자가 물미장 든 보부상들을 해쳤다는 게냐?”

국헌 양반을 본 옹간네가 허리 숙여 절을 했다. 

다그치는 목소리가 서릿발 같은 국헌의 도포 허리에는 감사에게 상으로 받은 큰 칼이 매달려 있었다. 동학군 토벌 공로를 인정받아 전라감사가 상으로 내린 칼을 차고 말을 타고 고현내로 금의환향한 연유로 태인 관아 수성군들은 국헌 앞에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국헌 양반도 개남장도 같은 도강 김 씨 일문이었지만 동학군 반대편에 섰던 이들은 충신으로 기세가 등등하고 동학군이었던 이들은 역도로 몰려 죽거나 도망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소문처럼 동학군 토벌 공으로 군수 벼슬이라도 내리면 누가 감히 국헌을 서손가닥 반쪼가리 양반이라고 뒷흉을 볼 것인가. 국헌이 내를 건너 무성서원으로 향하는 걸 옹간네는 큰절로 배웅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

옹간네는 얼른 나물을 주어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콩닥거리는 새가슴으로 남촌에 들어섰다. 즐비한 초가집들 사이 조개껍데기 같은 동생의 초가집이 보였다. 골목에 들어서자 기다리기라도 한 듯 성님 성님하며 꺼꾸리 색시 곰녀가 뛰어나와 보따리를 들었다..

“형님 욕보셨지라우?”

눈썹에 녹두알만 한 곰보자국이 하나 흉이지만 병은 아니었다. 

“죽일 놈들. 수성군들 행패가 갈수록 더하니, 아예 주막에서 밤낮 퍼질러 산당게요.”

“오매 우리 봉선이 그새 처녀가 다 되었다잉.”

사립 문짝에 서 있던 딸 봉선이가 배시시 웃으며 등 뒤의 다홍 댕기가 보이도록 고모인 옹간네에게 절을 했다.

“분이야 이리 와라. 세수하고 머리 빗겨줄게.”

봉선이가 얼른 분이 손을 잡았다. 눈물로 범벅되었던 얼굴에 머리카락이 찐득하게 달라붙어있던 분이가 쪼르르 언니를 따라 사립문으로 들어섰다. 

“봉선애비는 줄포장에 조기 실러 갔구만이라.”

곰녀가 마루에 앉은 옹간네에게 시원한 물그릇을 건네며 말했다.

물을 다 비운 옹간네는 삼베보자기를 풀어헤친다.

연하게 살이 오른 푸른나물에 통통한 고사리까지 수북한 것을 보고 곰녀의 얼굴이 환해진다.

“참말로 먼 나물이 내금새가 이리 좋대요. 아침에 분이 아배 오면 꼬사리 넣고 조기 지져드릴 참잉게 하룻밤 주무시고 가셔야제라 성님.”

”안 그려도 그럴라고 허네. 마님도 좀 뵙고. 장흥에서 애기씨가 왔담서?”

옹간네는 천석이 소식에 애가 탔다. 동학군으로 나가 소식이 끊긴 지 벌써 다섯 달이다. 입 밖으로는 황톳재에서 죽은 만석이 이름만 부르며 애달파하지만 죽은 자식보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자식이 더 가슴팍을 후벼 파는 걸 누가 알 것인가. 벙어리 며느리 배가 남산만 하게 불러오는데 천석이 생사를 모르니. 아니 모르는 게 나을랑가. 장흥 석대들에서 수천이 죽었다는디 그 가운데서 천석이 대님 자락이라도 보이면 어찌 살꼬. 생각만으로 눈물이 고였다. 곰녀가 점심밥을 한다고 나물을 싸들고 정지로 들어간 뒤 옹간네는 마루에 앉아 찬찬히 깨끔한 마당을 둘러본다.      

밤이 되자 뒷산 성황산, 앞산 시산에서 머슴새가 울었다.

동편 고래등 큰 기와집은 종들이 하나도 없었다. 목에 이천 냥이 걸린 김문행 대접주 집은 사내종 계집종 할 것 없이 다 도망가고 늙은 어머니와 젊은 며느리 둘이서 어린애들만 끌어안고 남아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기웃거리는 수성군들 때문에 젊은 며느리는 마음 놓을 틈이 없었다. 

흰머리 창평댁이 아주까리 등불을 켜놓고 뻐끔뻐끔 담배연기로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수심이 가득한 젊은 색시와 장흥으로 시집간 애기씨가 다듬이질을 하다가 멈췄다.

“마님 잘 계싯지라우?”

큰 절을 하려는 옹간네를 창평댁이 말렸다.

“절은 무슨. 관두고 앉게.”

“무슨 말씀이여라우. 마님이 절을 받으세야-”

“마님은 무슨. 정원이 자네가 어디 날 때부터 종이었든가.”

정원이. 권정원. 옛 이름을 꺼내는 창평 마님 말에 옹간네는 눈물이 핑 돌았다.

“자네가 처녀 적에 모란꽃 수를 그리 잘 놔서 다들 어찌 칭찬을 허든지. 이야기책은 물 흐르듯 어찌 그리 잘 있었던고.” 

“참말로 마님도 참. 벨 말씀을 다 허신다요.”

안동권 씨 딸로 태어났지만 새끼 밴 암퇘지 한 마리에 열다섯 살에 종으로 팔려갔다. 장승같은 종놈과 짝을 지워주었다. 만삭으로 애기가 밀고 나오는데도 보릿방아를 마저 찧어야 했던 그날, 통시간에서 아기가 쑥 나왔다. 탯줄에 매달려 대롱거리는 아기가 옹기 독 똥통에 빠질까 봐 붙잡으려다 그만 똥통에 빠졌다. 그 뒤로 주인집에서는 애기낳다 옹기 똥 간에 빠진 옹간네라고 불렀고 누구나 배를 잡고 웃으며 함부로 그렇게 옹간네라 불렀다. 그날 비로소 안동권 씨 성은 영영 되찾을 수 없을 거란 걸 알았다. 평생 종년. 그 뒤로 아무도 권정원이라 부른 이가 없었다.      

“천석이 소식은 있는가?”

“입암 갈재 넘어 남쪽으로 갔다는 말뿐이여라. 장흥으로 밀려가고 진도로 밀려갔다고만 허지. 아무도 돌아오지 않으니....” 

옹간네는 코끝이 맵다. 마님은 누가 들을세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문행이는 회문산에 들어가 있네. 천주학쟁이들이 회문산에서 숯 구워 팔던 숯막에 동학 두령들이 숨어들어 있다네.”

숨은 두령들이 살아있다니 다행이었다.

“종성리 너머가 바로 회문산 아닌가. 진눈깨비만 아니었어도 그 밤으로 개 남장이 회문산에 들었을 텐디. 그놈의 진눈깨비 때문에 종성리에 하룻밤을 유하다 임낙안이 그놈이 밀고해 전주성으로 끌려가지 않았는가. 간을 토막 쳐 개에게 던져주어도 아깝지 않을 놈. 개남장이 아전놈인 지를 어치케 대해줬는데 은혜를 모르고 목을 비게 만들다니. 죽일 놈.”

효자 김문행 대접주가 개남장을 친형님처럼 따르고 마지막까지 앞날을 의 논했던 터라 창평 마님은 속사정에 훤했다. 

“우리 문행이 개남장의 명을 받아 녹두대장에게도 화중장에게도 경선에게도 용계장 모두 회문산으로 숯막으로 오라고 사람을 보내 전했다네. 그래서 녹두대장이 회문산 아래 피노리까지 왔는디 아깝게 잽히고. 다른 대접주들도 회문산에 못 다 이르고 죄 잡히지 않았나. 녹두를 잡은 아전이 임두학이라고 임낙안 일가라네. 독사 같은 임가 놈들. 쥐새끼 같은 아전 임가 놈들.”

장흥으로 시집갔다가 풍비박산 난 친정 걱정에 다니러 온 애기씨의 떨리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왜놈들은 사람이 아니여라. 총에 맞아 죽는 건 호강 이제라. 작두로 목을 자르고 석유를 찌클어 태워 죽이고 총알 아깝다고 산재로 바닷물에 몰아 수장시키고... 그런 천벌을 받을 놈들이 세상에 또 있을까?” 

친정집에서 장흥 애기씨는 눈물을 훔치며 장흥 소식을 전했다.

“고개에 굴러다니는 머리통이라도 치마폭에 주어다 장사를 지낸 여인네는 복이여라우. 발목에 묶은 대님 짝을 들춰 서방님을 찾은 여인네가 있어라우. 일부러 동백꽃을 수놓아 묶어주었는데 동백꽃 대님은 발목에서 찾았는데 시상에 몸에 얼굴이 없더래요. 목없는 서방님을 겉치마에 둘둘말아 업고 30리를 걸어 온 여인네는 그래도 객지귀신 아니되었으니 을매나 다행이냐고 말하고 그 자리에서 까무라쳤다고.”

“시상에.. 시상에...”

김문행 대접주의 젊은 색시가 입을 틀어막고 촛농 같은 눈물을 뚝뚝 떨궜다.

“불에 타버린 시신을 입을 벌려 깨진 어금니로 찾아 업고 온 여인네도 있다우. 부자가 입도하고 처남 매부 형제 사촌이 입도하니 동학에 입도한 집안엔 사내가 남아 있지를 않지라. 여인네들이 꽁꽁 언 시신 사이를 헤치고 다니며 아버지를 찾고 서방을 찾고 동생과 시 아재 아들을 찾아 까마귀 우는 석대들 들판 눈보라 사이를 울며 헤매니 지옥 이제라. 어디  조선땅에서 장흥 석대들만 그럴랍디여.”

옹간네는 입술을 막고 운다.

우리 천석이도 그래서 벙어리 색시가 대님 짝에 도라 지수를 놓았단 말인가. 그래서 그날 아침 그놈이 에미 애비 보는 앞에 그 대님을 몇 번이나 묶었다 풀었다험서 죽기를 작정하고 나섰단 말인가. 석대들 넓은 들판에 누워 얼어붙은 시신 사이에 파란 도라지꽃 대님을 묶은 우리 천석이도 누워있단 말인가.

“애기씨 장흥 석대들에선 모다 아주 죽었소? 살아서 도망친 사람은 아예 없소?”

지푸라기를 잡으려는 심정으로 옹간네가 말했다.

“아니여라. 덕도에 숨은 동학군들은 살았다요. 안개 낀 밤에 소년 뱃사공이 배에 태워 이 섬 저 섬으로 나눠 태워다줘서.”

“몇이나 살아남았당가요?”

“500명이라든가 600명이라든가 덕도로 숨은 이들은 소년 뱃사공 덕분에 다 살았다하대요, 이방언 대접주 딸도 머슴과 함께 그 배를 타고 먼 섬에 살아있다고 하더만요.”

“덕도에서 살아남은 동학군이 500명이라고라우?”

옹간네 눈이 커진다. 어쩐지 어쩐지 그 500명 속에 천석이가 끼어 안개 낀 밤 배를 타고 도망가 먼 먼 섬에 숨어있는 듯 옹간네는 가슴이 울렁거린다. 머나먼 남쪽 섬으로 갔으면 살아있어도 어찌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란디 말이여라. 개남장이 살아있다고 장흥 사람들은 철썩같이 믿고 있어라우. 억불산에서 칼춤을 추는 걸 봤다는 사람이 여럿이라고. 어제 지금실에 개남장이 왔다갔다는디 보셨능게라? 참말로 살아있을랍디여?”

장흥 애기씨가 옹간네를 보며 숨죽인 목소리로 물었다.          


  

<덕도 대 탈출> 박홍규.  한지에 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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