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을미년 5장 임술년 꺼꾸리
덕보 영감이 망태 가득 엉게 순과 두릅순을 꺾어 들고 마당에 들어선 것은 오후 해가 슬쩍 비봉산을 넘어가려던 참이었다.
“얼라? 칠보산에 산삼 캐온다고 쌀밥 뭉쳐가더니 어째 그새 오요?”
“가다가 죽은 뱀을 밟았어.”
“쯧쯧 오매 산신령님이 산삼 점지해줄라가 삼십육계 줄행랑을 쳐불었것네.”
망태를 내려놓은 덕보 영감이 찔레 한 줌을 분이에게 쥐어주었다.
“처남헌티 갔다 와.”
“오매 뭔 소리여라? 남촌에 댕겨오란 말이여라?”
“그려. 처남이 엉게 순을 좋아허잔여.”
옹간네는 마루 끝에 앉아 망태를 쏟아 두릅과 엄나무 순을 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우리 만석이가 괴기보다 맛있는 것이 엄나무 순이라고 이맘때면 산밭에 무거운 거름 내고 와서는 한 소쿠리도 먹어치웠는디... 지 외할매를 닮아서. 우리 천석이는 두릅을 좋아허고..”
개복이가 옆에서 거든다고 엉게 순을 들추다 아니나 다를까 흰 손가락에 가시가 틀려 입으로 가져간다.
“니는 참말로 쓸데가 없당게. 아무짝에도. 가만히 있다가 묵기만 혀라 잉. 똥은 잘 나올거여.”
개복이가 딸을 낳고 천석이가 죽었으면 집안은 대가 끊긴다. 제사도 못 지내고 족보도 없는 종놈이 대를 이을 걱정을 하다니 새가 웃을지도 모른다고 할지 모르지만 떡갈나무 아래 도토리가 싹트듯 생명을 잇는 일보다 중한 게 어디 또 있겠는가. 개복이가아들을 낳는다면 좋겠다 생각하며 배를 보다가 금세 옹간네는 마음이 어두워진다.
‘참말로 저 뱃속의 애가 천석이 씨가 맞을까?’
다음날 일찍 머리에 나물을 인 옹간네는 분이와 함께 빗재를 넘는다. 오공리 김 부잣집을 빙 둘러 아름드리 느티나무들이 연두 순으로 환하다. 고개를 넘으니 시산과 칠보산 성황산이 병풍처럼 잇대어 장관이다. 소가 누운듯한 와우리 너른 들판과 검댕이 마을이 멀리 보이고 명천을 휘돌아 나온 강물에 징검다리가 길게 놓여있다. 징검다리 건너 무성서원 검은 기와지붕 위로 뒷산의 천년 고운수 나무가 자욱한 연둣빛 안개처럼 곱다.
“가자 가자 분이야 징검다리 건너 얼릉 가자.”
징검다리 건너 버드나무들이 죽 들어선 유상대를 지나 꼬막 껍데기 같은 초가집이 옹간네의 친정이다. 친정이라 해도 임술년에 태어나 스물세 살이 된 친정동생 하나가 살고 있을 뿐 친정부모는 산으로 간지 오래다. 고운 선생이 술잔을 띄우며 놀았다는 버드나무 방천에서 사내아이 둘이 낚시로 물고기를 잡고 있다. 건져 올린 낚싯대에 물고기가 매 대려 있자 등에 업힌 분이가 손바닥을 치며 웃었다.
엉게순을 좋아하는 동생 꺼꾸리가 태어나던 날도 오늘 같은 봄이었다.
애기낳다 엄니가 다 죽게 생겼다고 얼른 와서 손이라도 잡아보라고 남촌에서 사람이 왔을 때 옹간네는 서른이 막 넘은 나이였다. 엄니는 아이가 거꾸로 들어섰다 했다. 머리가 나와야 하는데 발이 보인다고 날갯죽지가 걸려 세상으로 못 나오고 어미도 어렵겠다고 했다. 고추씨 종다리를 밭고랑에 둔채로 가보니 의원도 산파도 소용없이 엄니는 기진맥진했다. 방바닥 지푸라기가 피로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피비린내 낭자한 방에 어미 얼굴은 퍼렇게 사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노산에 거꾸로 들어선 아이라니. 아버지는 술을 마신 붉은 얼굴로 내 팔자에 무슨 아들을 보겠냐고 역정을 냈다.
옹간네는 오던 길을 돌아 유상대로 달려갔다.
“살려주씨요. 살려주씨요.불쌍한 우리 어메 좀 살려주씨요.”
오는 길에 움찔하며 쳐다보았던 선비를 찾아 매달렸다. 금산사 미륵부처님처럼 우람한 몸에 서기가 뻗치는 눈동자는 마주치자마자 온 몸이 으스스 떨렸고 이 세상 사람 같지가 않은 풍모에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합장을 했던 터였다. 그 사람이라면 엄니를 살려줄것만 같아 내달린 것이다.
“우리 엄니가 애기가 거꾸로 들어서서는 나오들 못하고...”
옹간네가 울며 두 손을 비비자 눈썹이 숱처럼 검은 선비는 유상대 바위에서 벌떡 일어났다. 옆에 앉아있던 작고 젊은 선비도 얼른 갓을 썼다. 두 사람이 방에 들어섰을 때 노파가 놀라 몸을 비켰다. 숨이 실낱처럼 잦아들고 있었다. 미륵 같은 선비가는 맑은 물을 떠 오라 이르더니 소매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물에 종이를 태워 섞고 어미의 입에 부어 넣었다.
"이 약은 하느님이 주신 선약이니 목숨을 다시 살리는 약이오."
어미가 어린애처럼 받아 삼켰다. 선비는 스님처럼 우렁우렁 하는 소리로 경을 외기 시작했다.
“지기금지 원위대강 지기금지 원위대강 지기금지 원위대강”
곧바로 미륵 선비의 몸이 대나무 쥐고 신 내린 무당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미의 배를 둥글게 손으로 어루만지며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를 굿하는 무당처럼 온몸을 떨며 외기 시작했다. 어미가 다시 신음 소리를 냈다. 치마를 들추던 노파가 애기 머리빡이 보이오 소리쳤다. 그리고 잠시 후 아이의 울음소리가 우렁차게 터졌다. 사내아이였다.
두 선비는 곧 집을 나섰다. 옹간네가 따라나섰다.
태산 태수였던 고운 선생의 후손으로 무성서원 가장 안쪽 태산사에 모셔져 있는 조상님 최치원의 영상을 뵈러 왔다고 이제 금산사가 있는 금구로 가는 길이라 했다.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하늘이 하신 일이오.”
옹간네는 사람의 속을 환히 꿰뚫고 있는 선비의 눈빛을 마주 보기 두려웠다.
“주문을 지극한 정성으로 외우면 죽었다가도 살아나고 아팠다가도 씻은 듯이 나으며 조화가 무수히 일어납니다. 시천자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 열석자 주문을 외면 세상의 모든 이치를 훤하게 깨닫게 됩니다. 여자나 남자나 늙은이가 젊은이나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양반이나 천한 사람이나 모두 지상 신선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늘이 내안에 머무르시니 주문을 늘 외우시오.”
옹간네는 정신이 아득해서 짚신 발에 꼿꼿이 힘을 주었다.
"지같은 천한 것의 마음에도 하늘이 깃든단 말씀이랑가요?"
“하늘이 보시기에 세상 사람에 귀천이 없습니다. 아무 의심말고 맑은 물을 깨끗한 그릇에 모시고 아침저녁 주문을 외우시오.”
젊은 선비가 스승의 말에 잇대어 말했다.
“제가 지금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사오나 댁을 알켜 주시면 닭이라도 한 마리 구해 꼭 보내드릴랍니다.”
그러자 젊은 선비는 미소를 짓더니
“누군가 도움이 필요할 때 그때 그 사람을 도우시오.”
두 사람은 금구로 간다며 지금실 재를 향해 떠났다. 옹간네는 두 손을 마주하고 허리를 깊숙이 숙여 절을 했다. 미륵부처 같은 뒷모습이 금부처님처럼 환히 빛났다. 옹간네는 갑자기 두 눈이 환히 밝아지는가 싶더니 불끈 해가 뜨듯 가슴이 뜨겁고 환해졌다.
“선비님 이름이라도 알려주시오.”
옹간네는 두 사람에게 뛰어가 아룄다.
미륵부처 사내는 옹간네의 환한 마음을 눈치챈 듯 빙그레 웃었다.
“고운 선생의 후손 수운이오."
그 짙은 눈썹의 미륵부처 조화 선비는 종인 옹간네에게 꼬박꼬박 높임말을 썼다.
옹간네는 신선이 수운 선생에게 그려준 영약 부적 몇 장을 받아 소중하게 품고 돌아왔다. 사람들은 그날 태어난 동생을 임술년 꺼꾸리라고 부르며 그 선비가 죽은 목숨 둘을 살려낸 조화를 부렸다고 말했다. 옹간네는 장독대 위에 맑은 물을 떠놓고 칠성님께 비나이다 비나이다하는 비나리 대신 주문을 외웠는데 지상신선보다 마음속 설움이 녹아나는 듯 세상에 기댈 의지처가 생긴듯 마음이 편했다. 그 좋은 주문이 어찌 역적질이라하는지, 아들 만석이를 생각해도 천석이를 생각해도 개남장과 녹두훈장 송하도사를 생각해도 옹간네는 가슴팍이 숯불에 데인듯 슬픔으로 미어졌다.
버드나무 방천을 다 걸어 남촌 마을이 코앞이었다. 그런데 그때 주막에서 한잔 했는지 눈앞에 술 취한 수성군이 검은 옷을 펄럭이며 막아섰다.
“너 이 늙은 년 이리 와봐. 어디서 오는거여?”
“지금실에서 오구만이라.”
“동학 소굴 지금실? 네 이년 너도 동학허는 년 아니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