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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희 Oct 08. 2021

개남 開南

제1부 을미년 7장 녹두 아내 순영


밤이 짧았다.

옹간네는 동편마을 김문행 대접주 집에 누워 밤새 창평댁 마님과 두런두런 난리통에 생사가 갈린 사람들 이야기를 하다가 날이 샜다.      

“고부댁 가져다주게.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겠는가.”

붉은 비단 치마였다.

“굴에서 덮고 자면 따뜻할 거네. 장흥 사돈집에서 민어포를 보내왔네. 용규 갖다 주게.”

“시상에... 마님....”

창평 마님은 쌀가루를 떡으로 쪄서 가루 낸 흰무리도 한 되 넘게 싸주었다. 토굴에서 밥 대신 흰무리 가루 물에 타 먹을 때 같이 타 먹으라고 간장을 적셔 말린 검은 종이도 내주었다. 아마도 회문산에 숨어있는 김문행 대접주에게 보내려고 만들어놓았던 피난 음식일 터였다. 

“우리 문행이가 녹두 훈장 식구 걱정을 많이 했는데... 장남이 폐병이라니.....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창평 마님은 기가 막힌 지 눈을 감고 주문을 몇 번이나 외웠다.

“겨울 내내 토굴에 숨어 온몸에 얼음이 박혔을거구마.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창평댁은 말꼬리를 흐렸다. 간밤에 옹간네는 녹두 훈장 가족 소식을 묻는 창평댁에게 큰아들 용규가 토굴에서 폐병으로 뭉텅뭉텅 입으로 피를 쏟는다고 전했다. 

왜군들이 태인에 오자 녹두장군 식구들은 지금실 옥녀봉 아래 토굴로 피했다. 사위 강만복이 미리 파놓았던 시누대 숲 토굴로 처가 식구들을 피난시켰다. 밤중에 몰래 시누대 숲에서 나와 사위 집에서 밥을 먹고 이불을 덮고 자기도 했으나 눈에 불을 켜고 들쑤시고 다니는 수성군 민보군 때문에 봄이 와도 여전히 토굴을 벗어나지 못하고 숨어있었다. 

“성녀가 지금실로 시집간 것이 선운사 미륵 배꼽 열린 임진년이었등가?”

“그렇지요. 그 해부터 녹두 훈장은 늘 쫓기는 몸이 되셨응께라우.”     

3년 전이었다. 나라에서 동학 금단령을 내려 동학 도인들이 날마다 관아에 글려갔다. 탐관오리들은 돈 좀 있으면 동학도라고 잡아가 엽전 푼까지 싹싹 글겅이질을 하니 사방이 곡소리였다. 

공주에서 전주에서 동학도들 수천이 모였다. 최수운 선생이 죄 없음을 인정하고 동학도 서학처럼 탄압 말고 인정하라는 상소장을 써 들고 감영으로 갔다. 녹두 훈장이 소장을 든 소두로 전라감영에 들어가기로 결정되자 개남장은 녹두 훈장 둘째 딸 성녀를 서둘러 중매하고 혼인시켰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치르는 혼사여서 동네 아낙들이 모여 신랑각시 솜이불과 치마저고리를 지었다. 

옹간네는 혼사가 왜 그렇게 순식간에 이루어졌는지 임실댁에게 들었다.

옆집 총각 강만복은 개남장을 따라 동학에 입도한 집안으로 가세가 넉넉했다. 삼례취회를 얼마 앞두고 강만복을 불러 개남장이 말했다.

“자네도 알것지만 무리를 이끌고 우두머리로 감영에 소장을 바치는 일은 목숨을 거는 일이네. 백성의 소원을 들어주더라도 소두는 잡아 유배나 처형 같은 무거운 벌을 내리는 것이 나라 법이니.”

“알고 있고만이라.”

“만복이 자네가 중헌 일을 해야 쓰겠네. 녹두 훈장은 앞으로 큰일을 할 사람. 자네가 사위가 되어 남은 가족들을 보살폈으면 허는디 어쩐가?”

“해야지라우. 개남장이 허라하면 머든지 다 해야지라우.”

“그려. 그 일이 개벽 세상을 위해 자네가 할 큰일이네. 개벽 세상은 하루아침에 오는 것이 아니고 오래오래 우리는 고달픈 고개를 넘어야 할 것이네.”

황토현에서 전주성에서 태인 성황산에서 난리가 나고 대포가 터져도 강만복은 동학군에 들지 못했다. 동네 밖은 용머리 장터나 태인 관아에 간혹 나갈 뿐 오직 철 맞춰 농사짓고 소 먹이고 나무하며 살았다. 덕분에 난리가 끝난 뒤에도 피난할 일이 없었다. 

“폐병에는 약이 없으니 큰일이네. 장가도 못 가고 그리됐으니.”

창평 마님은 한숨을 몇 번이나 쉬며 옹간네를 보냈다.     

곰녀는 마루에 앉아 분이에게 주려는지 봉선이 노랑 저고리를 뜯어 바느질을 고치고 있었다. 옹간네가 온 줄도 모르고 분이와 봉선이는 감나무 뒤란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 머리를 얼마나 야무지게 빗겼는지 둘 다 깎아놓은 밤톨 같았다. 동생의 얼굴을 보고 가려고 기다렸지만 점심참이 넘었는데도 줄포에 간 꺼구리는 오지 않았다. 조기를 소달구지에 싣고 올 시간이 벌써 지났는데도 감가 무소식이었다. 

“봉선 아비가 장에 늦겠구먼.”

옹간네 말에 곰녀의 얼굴에 그늘이 진다.

“줄포에 우렁각시 살림을 채린 것도 아닐 테고 무슨 일이 당가. 조기 그물이 찢어지는 파시 철인디.”

“성님 아무래도 봉선 아비가 진창에 빠진 것 같어라우.”

“진창에?” 

“정분이 난 지집이 있는 거 같어라우.”

“파시 철에 분 바른 색시들이 조구 떼 모양 포구에 몰려드는 건 해마다 있는 일 아닝가. 술 한잔 허고 수작도 부리고 그것이 길바닥 흙 숨 쉬며 쎄빠지게 고생하는 장돌뱅이들 낙잉게 그러려니 혀야지 어쩌것능가.” 

곰녀가 노랑 저고리를 털썩 내려놓았다.

“그게 아니여라우. 가면 사나흘은 집에 안 온당게요. 장 파하면 와서 하룻밤 자고 새벽부터 일어나 또 소몰고 가버린당게요. 폴세 석 달이 넘었어요. 갯가 처녀들은 당돌허기가 백 여시 같다는데 아무래도 단단히 홀린 것 같어라우.”

“눈으로 본 것도 아님서 그리 말하면 못쓰네. 자네가 어서 아들을 날 궁리를 혀야지.”

“참말로 형님 하늘을 봐야 별을 따제요.”

곰녀가 가슴을 쳤다.

“그 백여시가 아들이라도 나면 지는 어쩐대요. 아들 못 낳는 거는 칠거지악이니 쫓아내도 어쩔 수 없는디 지는 봉선이랑 둘이서 어쩐대요.”

“참말로 말이 씨된다고. 쓰잘데기없는 말은 허들 마소. 비록 봉선 아비가 비린내로 밥을 먹고 살아도 안동권씨 일문이네. 조강지처를 버리다니 사람을 뭘로 보고.”

옹간네가 성을 내자 곰녀가 흐느꼈다. 

“시원한 물이나 한 그릇 주게.”

옹간네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쉬며 마당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꺼꾸리가 진짜 갯가 처녀나 기생에게 아들을 낳는다면 큰일 날 일이었다. 곰녀는 비록 집안은 가난해 종없이 물동이를 이고 다녔어도 엄연히 고현내 전주 이 씨 양반집 딸이었다.     

곰녀는 부지런했다. 꼬막같이 작은 초가집이지만 앵두나무 옆에 반들반들한 장독대들만 봐도 옹골져서 올 때마다 저절로 웃음이 났다. 지금도 호박 넌출은 돌담 위로 뻗어가고 오이 넝쿨도 대나무 가지에 너울너울 춤을 추며 올라가고 있었다. 지붕으로 타고 올라갈 박넝쿨도 동아줄 맨치 실허고 담장 아래 조르르 봉선화며 옥잠화에 족두리꽃까지 풀하나 없이 한들거리고 있다. 족보 있는 양반 집안이니 능소화를 담장 안에 심어도 뉘라서 뭐라 할까마는 줄포 장터 오가는 조기 장수 신세니 양반꽃 욕심을 내어 무엇하랴. 하지만 꺼꾸리가 돈을 벌어 토지를 사고 집안을 일으킨다면 조 부대에 빚을 지고 넘어간 옹지 기와집을 다시 찾는다면 능소화를 따로 심을 까닭이 없었다. 

그러나 조기팔아 번 돈을 기생 치마폭에나 던져준다면 어느 세월에 집을 찾고 토지문서를 다시 손에 쥐어볼 것인가. 옹간네는 힘이 쑥 빠져 벽에 등을 기댔다. 한참만에 물그릇을 가져온 곰녀는 눈물 닦은 붉은 눈으로 다시 저고리를 집어 들었다.

‘손 끝 야무진 색시 얻어 자식 낳고 조상 제사를 지내며 사는 걸 꿈처럼 다행으로 알고 살았건만. 참말로 본처를 두고 시앗을 보았을꼬.’     

옹간네가 비봉산 빗재에 오르자 자운영 꽃빛으로 저녁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노랑 저고리를 입은 손녀 분이는 봉선이 언니 치마꼬리를 붙들고 따라다니더니 기어이 남촌에 남았다. 심란한 곰녀도 봉선이와 까르르 웃으며 노는 분이를 귀여워했다. 소금에 절인 독조기에 보리밥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겠다 싶어 옹간네는 못 이기는 척 놓고 왔다. 그때까지 봉선 아비 꺼꾸리는 줄포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빗재를 넘으면 평사낙안 너른 들판이 훤했다. 강물이 들판 논 사이를 구불구불 흘러갔다. 팍팍한 다리를 두드렸다. 종이 된 것은 팔자려니 한지 오래였다. 소원이 있다면 동생이 어서 아들을 낳아 대를 잇는 것뿐인데. 용머리 장터에서 조기를 팔아도 종인 누나가 부끄러워서인지 누나 집에 발길을 하지 않았다. 남의 집 종년인 누이에게 어찌 살가울 것인가? 그저 폭삭 꼬꾸라진 집안을 일으키기만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그러나 비린내로 밥술을 연명할 뿐 나라에는 과거도 없어지고 어느새 옹간네는 흰머리 환갑이 넘은 나이가 되었다.      

이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만 세상사 쓸쓸허구나      

자기도 모르게 상여소리가 옹간네 입에서 절로 나왔다. 쓸쓸했다. 장흥 석대들 목 잘린 남편을 겉치마에 싸서 업고 속치마로 눈밭 30리를 걸어 집으로 왔다던 아낙네가 눈앞에 본 것처럼 자꾸 어른댔다. 사내들은 새 세상을 만든다고, 나라를 지킨다고 집을 나가 싸우다 죽었다. 다 큰 자식은 어디서 죽은지도 모르고 어린 자식은 돌아오지 않는 아비 생각에 두려움에 떨며 병들고 굶주린다. 남은 여자들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목숨으로 도망가고 숨었다.      

지금실에 도착하자 날이 어둑해졌다. 옹간네는 창평댁 마님이 싸준 보따리를 들고 비봉산 토굴에 숨어있는 녹두의 아내 순영이와 큰아들 용규를 들여다보고 갈 참이었다.  백암댁이라도 보면 큰일이었다. 옹간네는 몇 번이나 사방을 둘러보다 시누대밭으로 몸을 숨겨 들었다. 성녀가 쪼그리고 앉아 숨죽여 울고 있었다.

“어찌 울고 있당가?

그러나 성녀는 더 서럽게 울 뿐이다.

“엄니 좀 보고 갈라네.”

“엄니가...”

옹간네는 가슴이 철렁했다. 

“피를 쏟았구먼요.”

“멋이여? 피를?”

    옹간네는 다리가 휘청거렸다. 아들도 모자라 어미 순영이까지 걱정하던 대로 그 무서운 폐병에 걸렸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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