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을미년 8장 개남장은 살아있다
어째야쓰까 어째야쓰까
옹간네는 밤 깊도록 잠이 들지 못했다. 가슴이 날카로운 새의 부리에 콕콕 찍히는 듯이 아팠다.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을 많이 당해 순영은 폐병에 걸린 것이다.
‘저도 나처럼 기구헌 팔자.’
부용꽃처럼 곱다고 소문났던 평사리 새댁 순영은 병자년 괴질에 서방과 새끼를 한꺼번에 잃고 청상과부가 되었다. 어린 자식을 애장터에 묻어도 젖 물은 눈물처럼 금세 마르지 않았다.
“옥이 어매가 애를 낳고 그만....”
구절재 고개 넘어 소금실에서 애기를 품에 안고 등에 업고 사람이 온 것도 그 무렵이었다. 강화도에 왜놈들이 와서 대포를 쏘고 난리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족숙 김시풍과 김상흠을 따라 한양에 간다고 집을 나간 개남과 녹두는 해가 가도록 소식이 없었다. 시아버지는 멀리 훈장으로 떠나 없으니 당장 가장 가깝게 지내는 개남장집을 찾아온 것이다. 젖어미를 구하던 임실댁이 순영의 소식을 듣고 옹간네를 앞세워 지금실에서 평사리로 찾아갔다.
“갓난쟁이가 젖이 없어 죽어가고 있네.”
소복 차림으로 빈집에 홀로 앉아있던 순영은 아무 말이 없었다.
“갓난쟁이라 암죽도 못 삼키네. 제발 살려주게.”
임실댁이 애타게 매달렸다. 상복 입은 순영은 겨울을 지금실에서 젖어미로 살았다. 어미 얼굴도 구분 못하는 어린 두 딸을 제 딸처럼 품어 살렸다. 봄이 되어서야 뒤늦게 돌아온 전녹두는 목놓아 꺽꺽 울었다. 개남장도 눈물이 후둑 후둑 빗방울처럼 방바닥에 떨어졌다. 엄마 엄마 부르는 딸들을 두고 순영은 차마 떠나지 못했다. 소금실로 순영이 따라갔다.
“다시 한번 지금실에 발걸음을 하면 나는 너와 부자의 연을 끊을 것이다.”
녹두를 보자마자 뺨을 후려친 아버지 전창혁 훈장이 무섭게 소리쳤다. 눈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처자식을 사지에 몰아넣고 네 놈이 나랏일을 근심한단 말이냐? 수신제가도 못하는 놈이 치국평천하를 논하다니.”
어머니도 부인도 며느리까지 모두 저 세상으로 보낸 아비의 피눈물이었다.
오직 하나뿐인 아들 과거급제가 몰락한 집안의 유랑 훈장 아버지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아들의 과거 공부를 위해 스승 가까이 황새마을로 이사했다. 갓을 쓴 몸으로 지게를 지고 유기공장 놋그릇 장사까지 마다하지 않은 아버지였다. 그러나 아들은 원평장터에서 나라의 앞날을 이야기하며 과거 공부와 멀어졌다. 장터를 떠나 천하 문장이 날 집터를 찾아 상두산 아래 지금실 산속으로 집을 옮겼다. 여기저기 떠돌며 훈장을 하고 장사를 하다 명절이나 제사에 돌아와 보니 혹 떼려다 더 큰 혹을 붙인 꼴이었다. 윗마을 개남과 날 밤을 새우며 세상일을 논하며 무술을 닦는다고 상두산 회문산을 오르내렸다. 전훈장은 아들이 공부에 전념하도록 더 깊은 산골 소금실로 집을 옮겼다. 그러나 이미 녹두의 가슴은 과거에서 멀어졌다. 왜놈들이 쳐들어왔다는 소식에 강화도로 갔던 것이다. 김시풍을 따라 녹두는 운현궁에서 대원군을 만났다. 나라를 위해 한번 죽고 싶을 뿐이라고 호기롭게 말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차마 아버지께 고하지 못했다.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오골닭 한 마리만 구하면 을매나 좋을고. 옻나무 껍질을 넣어 고아 먹이면 기침이 잦아든다는데. 그 비싼 오골닭을 어찌 구할 건가.’
덕보 영감이 방으로 들어왔다.
“독사 한 마리 잡아오씨요. 구렁이도 괜찮고.”
“지 매형이 얼마 전에도 고아먹였는디.”
“참말로 고부댁도 폐병이라 안하요.”
옹간네 목멘 소리에 덕보 영감이 한숨을 쉬었다.
담배쌈지를 벌리더니 담뱃대에 불을 붙였다.
“천석이 소식은 들은겨?”
“장흥에서 말이여라우. 살아서 배를 타고 섬으로 간 사람은 수백 명이라는데 죽은 사람은 수천수만 명 셀 수가 없다하대요.”
덕보 영감은 대답이 없더니 담뱃재를 털고 일어났다.
“개복이 말이여. 몸이 안 좋은 것 같은디. 밥숟가락 드는 힘도 없고.”
“송하영감헌티는 댕겨왔소?”
“가마니로 덮어 묻었구만.”
“다 죽을랑갑소.”
법궁새가 법궁 법궁 울었다. 삼 씨를 뿌리고 고추씨를 뿌려야 할 날이 다가온다고 재촉하는 소리다. 찔레꽃이 피면 모를 심고 오동꽃이 피면 콩을 심어야 했다. 옹간네가 햇볕에 고추씨를 펴놓고 곰팡이를 골라내고 있을 때 긴 창을 든 포졸들이 들이닥쳤다. 포졸들은 고추씨를 엎어버리고 창끝을 겨누며 덕보 영감을 찾았다.
옹간네는 이건 또 무슨 사단인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옹간네가 가리키는 삼밭으로 달려간 포졸들은 고랑을 파고 있는 덕보 영감을 오랏줄로 꽁꽁 묶더니 창으로 쿡쿡 등을 찔렀다.
“무담시 사람을 왜 잡아간다요?”
옹간네가 포졸에게 기어드는 목소리로 물었다.
“죄를 지었응게 잡아가지 공을 세웠는데 잡아갈까?”
“먼 죄를...”
“비켜 할망구야. 죄는 관아에 가면 저절로 알게 될 테니.”
덕보 영감은 태인 관아에 도착했다.
“꿇어.”
사령이 육모방망이로 어깨를 내리쳤다. 마루 위에 현감이 나와 의자에 앉았다.
“개남이 왔다 갔다는데 사실이냐?”
덕보 영감은 등을 꼿꼿이 세웠다.
“개남이 나타나 보부상들을 줘팼는데 사실이냐? 왜인에게 돌을 던져 목숨을 상할 지경에 이르게 했다는데 네 놈이 그걸 보았다 들었다.”
덕보 영감은 사또를 똑바로 보았다.
이미 동헌 뜰에는 형틀이 놓이고 치도곤을 든 쌍둥이 사령이 서 있었다. 머리를 길게 딴 관아의 동몽이 두려운 얼굴로 치도곤을 바라보았다.
“개남이 다녀갔느냐 묻고 있다.”
현감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처마 밑 참새들이 놀라 날아갔다.
“댕겨갔구만이라.”
덕보 영감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지금실에 나타났던 놈이 누구냐 심문하며 살점이 너덜너덜 피가 튀기리라 생각했던 수성군들은 눈을 크게 뜨고 웅성거렸다.
가장 놀란 것은 현감이었다.
“주, 주, 죽은 개남이 어, 어찌 왔단 말이냐?”
“죽지않았응께 왔지라우.”
“개, 개남이 사, 살아있단 말이냐?”
“예.”
“사, 사실을 말하렸다. 관을 능멸한 죄가 얼마나 큰지 네 놈이 아느냐?”
“강화병이 들이닥친 그날, 개남장은 그날 종성리에 올라가지 않았지라. 개남장은 평소에 홍길동처럼 닮은 이들을 여럿두고 있었응게요.”
덕보 영감 말에 동헌 마당은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했다.
“개남장은 그날 너듸 사랑채 벽장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들었구만이라. 죽어 장대에 걸린 이는 개남장이 아니었-”
“개, 개남은 지금 어디 있느냐?”
“한양으로 갔구만이라.”
“한양? 한양에 왜?
“왜놈 공사관에 들어가 이노우에인가 저노우에인가 왜놈 대가리 목을 따들고 궁궐로 간다혔구만이라.”
“궁? 궁궐 ? 임금이 계신?”
현감의 수염이 제멋대로 부들부들 떨렸다. 아전 하나가 소리쳤다.
“사또 어서 감영에 알려야 합니다. 한양으로 전보를 쳐서 임금의 옥체를 보존해야-”
“그려 그려 비장은 어디 있느냐? 어서어서 말을 타고 감영으로 가거라.”
현감이 허둥지둥 의자에서 일어나며 주먹 침을 튀겼다.
“아, 아니다. 이 놈을 꽁꽁 묶어 수레에 태워라. 내가 내가 감영으로 갈터이니...”
동헌 담장을 빙 둘러보고 있던 이들이 웅성거렸다.
“개남장이 살아있대여.”
“에이 참 말이 되는 소리여?”
“덕보 영감이 죽을 줄 모르고 거짓말을 허것능가?”
“개남장이 죽으니 영감탱이가 노망이 난거아녀?”
“개남장이 칼춤을 추면 열 길을 솟구치는 인물 인디 그리 쉽게 잽혔을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