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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희 Oct 08. 2021

개남 開南

제1부 을미년 9장 남원 능소화 

죽을 것 같았다. 덕보 영감이 끌려가는 모습을 보던 개복이는 산통이 왔다. 옹간네가 방으로 데려가 짚을 깔고 뉘었다. 그러나 사흘이 되도록 덕보 영감 집에서는 애기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지 않았다. 진통으로 몸부림치던 벙어리 며느리는 온몸이 땀이 젖어 기진맥진하다가 입을 열어 죽을 것 같아요 하며 숨을 헐떡였다. 시상에 벙어리가 아녔구먼. 놀라움과 반가움도 잠시 옹간네는 산통에 몸부림치는 개복이를 보며 속이 바싹바싹 타들어갔다. 아가 다 그려. 다 그렇게 애기를 낳는 거여. 개복이가 옹간네를 부여안고 일그러진 얼굴로 신음을 했다. 엄니헌테 가고 싶어요. 아가 마음 약해지면 안 된다. 아가, 애기를 생각혀야지. 옹간네를 부여잡았던 팔이 스르르 풀리며 개복이는 또 정신을 잃었다. 태리야 태리야 어디선가 부르는 소리. 다홍빛 능소화들. 어머니 어머니. 무엇을 붙잡으려는 듯 허공을 헤매던 손이 힘없이 툭 떨어졌다. 옹간네는 가슴이 덜컹했다.      

6월 아침 담장에 능소화가 붉었다. 태리가 어머니와 사는 집은 남원 광한루에서 머지않은 골목 안 깊숙한 터였다. 크지 않은 기와집은 깊숙이 엎어놓은 소쿠리처럼 산 아래 박혀있었다. 오래전 한양에서 벼슬살이를 했다던 아버지의 얼굴을 태리는 몰랐다. 할머니 제삿날, 둔덕방 큰집에 가면 집안 어른들은 갑신년 난리에 아버지가 죽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운봉 외갓집 식구들은 아버지가 갑신년 역적으로 몰려 나라 밖으로 도망갔다고도 했고, 멀리 남쪽 섬에 숨어 살고 있다고도 말했다. 어머니는 간혹 술에 취할 때면 소식 모르는 아버지 생각을 하는지 눈물을 보이곤 했지만 별 말이 없었다.     

갑오년 6월 25일 남원 장날 김개남이 입성하면서 남원은 천지가 뒤집어졌다.

두 살 어린 몸종 삼월이는 몰래 다람쥐처럼 쪽문 밖으로 나갔다 소문을 물고 오곤 했다. 은행알 같은 주판알을 튕기며 삼천 이백 오십 닷 전이요, 일만 구천 열 석전이요 연습을 하는 태리 옆에서 삼월이는 귀여운 입으로 속살거렸다. 

“아씨. 개남대접주 말이여라. 세상을 구하려고 지리산 천왕봉에서 100일 기도를 했는데 하늘이 손바닥에 개남이라고 글자를 두 개 써줬대요. 남조 선국 새나라를 열라고. 그래서 이름이 개남이래요.”

“그래? 하늘이 점지한 인물이란 말이지?”

“양반 상놈 상하귀천이 없는 나라, 누구나 하늘처럼 똑같이 대접하고 대접받는 새 나라가 남조선 개남국이래요.”

“춤출 사람들이 많겠구나.”

“큰 부잣집 곳간을 열어 쌀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어요.”

“홍길동처럼?”

“여자들은 용담유사를 외우며 글자공부를 한 대요. 동학엔 여자 대두령도 있대요.”

태리는 주판알에서 손을 뗐다.

“여자들이 두령을 한단 말이냐?”

“예. 아씨. 또 개남장을 따라 태인에서 온 총각 동몽군들은 100명이 넘는데 하나같이 키가 크고 말도 잘 타고 인물이 잘났다지 않아요. 새 나라를 세우면 다들 높은 벼슬을 받을 거래요.” 

놀라운 소문들이었다. 태리도 삼월이를 따라 담장 밖을 나가보고 싶지만 어림없는 소리였다.

“태인 동몽군들이 그리 잘났단 말이야?”

“예. 푸른 머리끈을 동여매고 칼춤을 추는데 훌쩍훌쩍 지붕 위를 날아다닌대요.”

태리가 빙긋이 웃었다.

“삼월아, 너 동몽군에게 시집을 가고 싶은 거지?” 

“아, 아니여요. 아씨.”

“피, 거짓말.”

둘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무자 대흉에 부모가 죽고 떠돌던 계집애를 보릿고개 삼월에 어머니가 거둬먹였다. 집안에 사람들이 없었으므로 둘은 소꿉놀이부터 늘 붙어 자랐다. 삼월이는 몸종이니라 어머니가 아씨라 부르라 일렀지만 동무에 가까웠다. 삼월이는 바느질을 잘하고 태리는 주판을 놓고 글을 썼다. 꿀과 엿이 떨어지지 않는 넉넉한 살림이었으므로 담장 밖의 세상이야 댕기머리 두 소녀가 알 바 아니었다.      

그러나 토지를 관리하는 바깥채 마름 박 씨는 갈수록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사랑방에서 주판을 튕기는 어머니 옆에서 마름 박 씨가 골목 밖 세상을 목소리 낮춰 보고하는 소리를 태리도 들었다.

전주성에서 나온 김개남이 호남 좌도의 군현마다 총든 군사 수천을 이끌고 순회하자 고을마다 군수와 현감 아전들이 모두 전라감영으로 도망갔다. 포졸들은 벙거지에 전복을 죄다 벗어놓고 숨었으며 불량한 부호들과 천석꾼 양반들은 다들 피난을 갔다. 김개남이 남원성에 입성한다는 방문이 남원 곳곳에 나붙자 남원 부사도 성을 버리고 숨었다. 

“남원성 노비들과 교룡산성 중들과 고리백정촌 무당촌 천민들과 지리산 땔나무꾼들, 오수역의 역졸들까지 어느새 모두 동학에 입도했었는지 모두 다 남원 성문을 활짝 열고 개남을 맞았다 합니다. 팔도에 대나무 뿌리처럼 한 몸으로 땅속에 뻗어 대나무 같은 두령이 팔도에 수십만 명이라 하니 머지않아 동학이 세상을 다 차지할 거라 합니다.”

동학 도소에서는 못된 양반들을 불러다 징치 하여 백성들의 서리서리 맺힌 원한을 풀어주고 있다 했다. 

“노비문서를 불사르고 모든 고리채를 탕감하고 왜놈 상인에게 쌀을 팔지 못하게 한다고 합니다.”

“고리채 탕감? 꿔갈 때는 감지덕지 갚을 때는 생살 비듯. 심보 한번 고약타.”

어머니는 남의 나라 일처럼 말했다.

“피난을 가셔야 허지 않겠어요?”

“피난? 어디로?”

어머니는 주판을 굴리는 걸 멈추지 않고 물었다.

“운봉으로 가자는 겐가? 운봉이 예서 백리인가 천리인가.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친정으로 가봤자 난을 피하겠는가. 아버님 댁이 되려 더 위험하지. 웬수로 이를 가는 이들이 운봉 백리 안에 어디 한둘인가.”

마름 박 씨는 더 말을 못 했다.

“들이치면 쌀가마니 돈 꾸러미를 적당히 내주게. 재물을 준다는데 죽이기까지야 하겠는가. 돈 앞에는 장사 없네라.” 

     

동학군이 처음 태리네 집에 나타난 것은 이른 여름 아침이었다. 그날 태리는 담장 아래 떨어진 싱싱한 능소화를 주워 바구니에 담았다. 시들지도 않은 꽃이 어쩌자고 툭툭 떨어져 흙 위에 뒹구는지 모를 일이었다. 태리는 꽃들이 가여워 마루 그늘에 놓아둔 물그릇에 담아줄 참이었다. 

아직 우물에 두레박도 던져지지 않고 아궁이에 불도 지펴지지 않은 고요한 아침이었다. 꽃을 물에 띄우다가 문득 무엇인가 잡아당기는 해서 뒤를 돌아보았을 때 태리는 담장 너머에서 쏘아보는 눈동자와 마주쳤다. 푸른 수건으로 이마를 동여맨 사내였다. 삼월이가 말하던 동몽군인가. 가야금의 가장 가느다란 줄을 건드린 것처럼 마음이 가늘게 떨렸다. 쪽물 들인 푸른 수건 아래 환한 이마와 깊은 눈매가 어딘가 아주 낯설지는 않았다. 사내는 꼼짝 않고 형형한 눈빛 그대로 태리의 얼굴을 한참을 쏘아보더니 담장 위에 무언가를 올려놓고 사라졌다. 태리가 멈칫거리며 갔을 때 능소화 붉은 꽃그늘에 작은 묵주가 하나 놓여있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낯선 사내가 올려놓았음이 분명한 그 묵주를 태리는 손에 쥐었다. 오랜 손때에 닳은 검은 묵주가 따뜻했다.

“태리야, 태리야, 어찌 그러고 서있는 게냐?”

방문을 열고 나온 어머니가 마루에서 다정하게 불렀다. 태리는 얼른 소매에 묵주를 밀어 넣었다. 어쩐지 어머니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오후의 해가 뉘엿뉘엿 저물 무렵 손님이 왔다.

둔덕방 큰집에 사는 백부였다. 백부가 태리의 집 대문을 들어서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더구나 갓도 쓰지 않고 상투머리 그대로 쫓기듯 들어왔다. 늘 나귀 고삐를 쥐고 따르는 종 칠성이도 없이 혼자였다. 백부는 혼이 빠진 사람처럼 허둥지둥했다. 사랑마루에 앉아있던 어머니는 놀라 주판상을 밀쳐놓고 일어섰다.  

“물 한 그릇 주시오.”

삼월이가 우물로 달려갔다.

벌컥벌컥 물 한 그릇을 다 비운 백부가 큰 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오늘은 예서 하룻밤 머물러야겠습니다.”

그제야 어머니는 밥상을 차리라 이르고 사랑방으로 모셨다. 태리가 절을 올렸다. 한여름인데도 어디선가 낙엽 타는 내음이 났다. 백부는 얼굴이 몹시 야위었다.

“아버님은-”

“아버님은 나주로 피난을 모셨습니다. 아이들은 에미와 함께 외가로 갔고.”

“그런데 칠성이는 어찌하고...”

어머니는 갓 없는 백부 얼굴을 마주하기 민망한지 고개를 살짝 돌리고 물었다.

“남원땅 종놈들이 죄다 동학에 입도해 개남 수하가 되었는데 칠성이가 반편이가 아닌 이상 종노릇하고 둔덕방에 남아있겠습니까? 대나무로 창을 깍아들고 교룡산성에 있겠지요.”

백부는 목이 타는지 삼월이가 새로 떠온 물까지 벌컥벌컥 마셨다. 

“저 무지막지한 놈들이 갓 쓴 양반 능욕하기를 웬수대하듯 하니. 갓을 벗겨 저희 머리에 얹었다 벗었다 하더니 갓으로 제기차기를... 갓을 쓰고는 남원땅을 나돌아 다닐 수가 없습니다. 개벽 개벽하더니 남원이 개벽 천지 개판이 되었습니다.”

둔덕방 종갓집 백부는 전에 없이 상스러운 말까지 입에 담았다. 마름 박 씨가 밥상을 들여왔다. 박 씨가 술을 올리자 백부는 박 씨 잔에도 콸콸 술을 부었다. 그리고는 단숨에 술잔을 비우고 박 씨에게 말을 토해냈다.

“자네 보기에 이제 우리 땅의 나락이 여물면 누가 거두겠는가? 아니 그 곡식을 우리 것이라 집안으로 가져올 수 있을 성싶은가? 끝났네. 저들이 토지를 농사짓는 이들에게 골고루 나눠줘야 한다고 주장 허네. 소작을 해도 열 말 나면 한말은 나라에, 두말은 땅주인에게, 일곱 말은 땀 흘린 농사꾼이 가져야 한다고 개남이 말했다더군. 저 동학 비도 놈들이 종도 토지도 갓도 다 빼앗으려 드는 거지. 그런 세상이 온다고 개복 세상 개복 세상 노래를 부르더군.”

“급한 상이라 찬은 변변치 않으나 밥을 드시지요.”

어머니의 말에도 백부는 밥숟가락은 들지 않고 술만 비운다. 갓을 빼앗기고 치욕을 당한 울분이, 아니 지금껏 누려왔던 모든 것을 고스란히 빼앗겨야 하는 두려움과 혼란이 백부의 대감댁 종손 체통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다들 말이 없는데 숙부는 혼이 나간 듯 혼잣말인 듯 중얼중얼거린다.

“한양에서 호남 동학 배척 상소를 주도했던 남원 양반들이 사방으로 콩 튀듯 도망을 갔다. 도망가지 않은 양반들은 동학에 입도를 하고 나주의 호족들이 왕건에게 딸을 바치듯 동학 두령들과 혼인을 맺느라 분주한 꼴이라니. 그 기세 등등하던 한 씨 집안이 개남의 조카와 혼사를 자랑하고. 허허. 다들 동학 두령들과의 혼맥으로 솟을대문 기와지붕을 보전하려 동학에 기웃거리니 말세다 말세. 그러니 장가 안 간 동몽군들이 힘없는 양반집 문에 수건을 걸어 두고 납폐라고 우기며 강제로 혼인을 맺고 딸을 빼앗긴 양반집들마다 곡성이 터지는데 장터의 터진 입들은 후천 개벽 남조선에 요임금 순임금이 다시 났다고 개남개남 노래하니. 미친놈들 홍건적 도적놈들.”

그러나 그 목소리는 갈수록 힘이 없었다. 동학에 입도를 하거나 멀리 피난을 가거나 담장 안에 숨죽여 웅크리고 있거나 어찌 되었간에 한양에서 낙향한 참판댁 가문의 위세는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흥, 아편쟁이.”

안채로 돌아와 버선을 벗는 어머니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이십 년 넘게 과거 보러 한양 오르내리며 아편만 배워왔지. 아편 때문에 종손이 부친을 홀로 나주에 두고 남원으로 다시 달려온 게야. 몰래 도망쳐왔을 걸. 아편이 그렇게 무서운 게야.” 

새벽닭이 울자마자 백부는 아침도 아니 들고 떠났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쓰시던 헌 갓을 내줬다. 백부는 갓을 쓰고 오갈 데 없는 늙은 행랑아범 부부가 남아있을 뿐인 집으로 새벽이슬을 밟으며 남이 볼세라 바삐 갔다. 


가뭄으로 호박잎까지 축 늘어진 저녁이 왔다.

골목이 소란스럽더니 게 있느냐 왁자지껄 소리가 태리 집 앞에서 멈췄다. 사정을 알아보러 나간 마름 박 씨가 한참만에 손에 푸른 수건을 들고 왔다.

“무엇인가?”

“동몽군들이 왔습니다. 납폐라고... 사흘 후에 혼례를 치르겠다고....”

마름 박 씨가 딸꾹질을 했다. 태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납폐라면 혼인할 때에, 사주단자의 교환이 끝난 후 정혼이 이루어진 증거로 신랑 집에서 신부집으로 보내는 선물이 아닌가. 오동나무 함에 혼서지와 오곡 담은 오방색 주머니들, 치마저고리를 지을 청단 홍단 비단들과 금비녀, 은비녀, 은장도, 금가락지, 옥가락지, 각종 예물들을 말하는 것임을 태리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정혼한 일도 없이 납폐라니. 그것도 쪽물 들인 수건 한 장이.

“어떤 놈이 납폐를 보낸다던가?”

어머니의 목소리가 가위처럼 날카로웠다. 마름 박 씨가 대답을 못하고 딸꾹질만 했다.

“설마 둔덕방 씨 종놈 칠성이 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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