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국가가 훌륭한 국가일까
지난 11월,
많은 부모들이 일어나자마자 자녀의 방을 열어봤다고 한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발생한 300여 명의 압사 사상자.
(사망 156, 부상 151 - 2022.11.1. 17:33 기준 )
내 자녀가 저곳에 있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 일요일 오전, 잠을 자고 있는데
아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너 어디니?"
"...? 아빠, 나 방이야"
잠시 뒤, 전화가 한 통 또 왔다.
이번에는 엄마다.
"윤하야, 어디야?"
"엄마.. 나 집이야.."
청년들은 내 일인 것 같아서, 부모들은 내 자녀 일인 듯해서
더 마음 아픈 이번 참사가 아닐까.
전날이었던 10월 29일 토요일에는 일찍부터 충북지역에서 일정이 있었다.
이후 또 다른 일정을 마치느냐고 집에는 새벽 늦게 들어갔더랬다.
그런데 그 사이 이태원에서는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다.
어쩌면 내가 있었을 수도 있었을 바로 그곳에서 말이다.
몇 시간 뒤, 소속되어 있는 많은 다른 곳에서도 안부를 묻는 연락이 왔다.
"네.. 저는 이태원에 가지 않아서, 괜찮습니다.."
월요일까지 빠듯한 일정을 끝내고,
화요일이 되자
이태원 참사에 대한 타격이 갑자기 전해져 왔다.
'국가란 무엇이지..?'
그에 대한 대가로 해당 아파트는 외부인에 대한 단속을 하고,
아파트 조경을 관리하며,
매주 분리수거 일이 되면 정리를 돕는 등의 일을 한다.
긴 여행을 떠나 있을 때는 관리 아저씨가 택배를 대신 보관해주기도 한다.
외부인에 대한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거나 아파트 내부가 지저분하다면
관리비가 제대로 쓰이지 않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제기를 해볼 법하다.
그러한 문제 제기 대표자로는 부녀회장 등이 있다.
내가 속한 동, 시, 그리고 국가는 나와 당신이 낸 세금으로 운영된다.
내가 이 나라에 사는 값이고, 운영회비 같은 것이지 않을까.
그 돈으로 계절별 시내 조경을 관리하고 길을 수리하며
신호등과 가로등 같은 것 등을 관리한다.
그런데 그보다 더 기본적인 것은 우리의 기본 권리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세우고 모든 종류의 위험에서 시민을 보호하며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게 행동하는 국가"가 훌륭한 국가라고 생각한다.
2011년에 작성된 <국가란 무엇인가>의 초판 서문 일부이다.
지난 10월 30일 오전,
중대본의 명칭 논의가 있었다.
'참사'가 아닌, '사고'로.
'희생자'가 아닌, '사망자'로 명명.
혹자는 주최가 없는 행사였으니 국가에게 책임을 돌릴 수 없다고 얘기한다.
교통사고와 같은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차량 통행량이 너무나도 많은 교차로에 신호등이 없다고 가정해 보자.
지자체에서 부러 신호등을 설치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이 중 해당 구역의 통행량 정도가 불규칙하기 때문이 다수의 원인이다.
이를 이번 참사에 대입해 보면 어떨까.
통행량 정도가 불규칙한 바로 그곳에,
특정 행사로 인해 통행량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날들이 있어왔다.
그래서 교차로 주변 상가 측은
통행량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특정 행사기간에
교통경찰을 배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그들이 가진 당연한 권리이기도 하다.
매주 주말과, 특정 행사기간이면 통행량이 급격하게 늘어났지만,
운이 좋게도 작은 사고 정도만 일어나는 데에 그쳤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시기를 지나오다가,
결국 2022년,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일어나고 만 것이다.
모두들 불안해하던 대규모의 사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