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추천하는아나운서 Feb 23. 2024

[20C]Mary Shelley 메리 셸리

세계 최초의 SF작가는 여자였다고?

*세계 최초의 SF소설가

*그 소설이 바로 '프랑켄슈타인'

*그런데 세기의 불륜녀라고?


I. 생애


1797.08.30 - 1851.02.01 (53세)

1831년 새뮤얼 존 스텀프가 그린 메리 셸리 (예쁘군...)

1) 가족

아버지 : 윌리엄 고드윈

-최초의 무정부주의자

-무신론자

-영국의 언론인이자 작가

-급진적 자유주의자


어머니 :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최초의 페미니스트

-<여성의 권리옹호>저자

-둘째 딸인 '메리 셸리'를 낳다가 산욕열로 사망



2) 집안 환경

따로 교육을 받지는 못했다.

친모는 메리를 낳고 11일 만에 사망했고,

계모는 딸의 교육을 거부했다. 


그래도, 당시 언론인이자 작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많은 문인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문학소녀로 성장한다.




II. 그녀의 사랑..?


1) 아버지 제자를 만났다.

'집안 환경'에서 지식인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많은 문인들과 교류했다고 했던가.


결국,

1814년, 아버지의 제자 중 하나였던

22세 시인, '퍼시 비시 셸리'와 사랑에 빠진다.


(이 때, 메리의 나이는 17세..

*그러고 보면 집에 누굴 들이느냐는 지인짜 중요하다. 버지니아 울프도 오빠와 집에서 독서모임을 하는 오빠 친구와 눈이 맞지 않았던가..) 


믿거나 말거나 돌아가신 어머니의 묘비에 적 

어머니의 이름을 더듬어가며 '쓰기'를 배웠다나.

영국 낭만주의의 3대 시인 '퍼시 비시 셸리'

진보적인 성격도,

글쓰는 성향도 매우 잘 맞았다고 한다.

 

그럼 뭐하나,

퍼시는 이미 유부남이었고,

아내가 살아있으며,

슬하에 아이도 있었는데?!!(멈춰!!)




2) 불륜녀가 되고


그런데,  생각보다 상관 없었나보다.

혹은 내가 생각보다 보수적이었거나0_0


1814년,

메리는 퍼시의 아이를 임신한다.

안타깝게도 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은

한 달만에 사망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를 

퍼시의 아내, 헤리엇이 알게 된다.

그래서 메리와 퍼시, 이 둘은 어떻게 했을까.


도피 여행을 떠난다. (네?)

메리의 의붓언니인 클레어와 함께, 

프랑스 파리로.

(이게 정상적인 '자유분방한 견해'의 범위인가..

아, '진정한 자유분방함'에는 이토록 경계가 없는 것인가?)


그 사이 헤리엇은 

연못에 몸을 던져 자살을 한다.


야사에 따르면,

헤리엇 또한 남편의 외도를 알고 맞바람을 피웠으나,

임신을 하고서 당시의 시선이 두려워 자살을 한 것이라고.


(당대 여자로 살기 참 어려웠다....라고 하기에

메리가 참 대단하기도 하고..음..)




3) 정부인이 되었다.


1816년.


첫번째 부인 헤리엇의 장례식을 치르고나서,

곧바로 둘은 결혼식을 올린다.


이게 무슨 영국 3대 낭만주의 시인이람.

아니다, 

이게 바로 진정한 낭만주의인가?!




III. 작품활동


1) 공포괴담클럽


유럽으로 떠난  


1816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조지 고든 바이런'만난다.


('바이런'은 나중에

'퍼시'와 함께 영국 3대 낭만주의 시인이 된다. )


그런데, 

당시 분위기가 굉장히 흉흉했다고.

1815년에 인도네시아에서 

역사적으로 큰 규모였던 탐보라 화산 분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틀동안 세계 일부 지역은 어둠 속에 갇히기도 했고
다음 해인 1816년까지도 세계 곳곳에서 '여름 없는 해'를 맞이했다.
미국에서는 6월에 눈이, 7월과 8월에 결빙이 관측됐다고 한다. 


우중충하고 눅눅하고 기분도 울적하고

밖에도 못나가는 날이 이어졌던거다.


시간도 때울 겸,

메리와 남편인 '퍼시', 친구 '바이런', 주치의인 '폴리도리'

종종  공포 괴담 짓는 놀이를 시작했단다.


메리셸리(좌), 퍼시비시셸리(우)
 조지 고든 바이런(좌), 존 윌리엄 폴리도리(우)

 여기서 메리는

 '시체를 모아 전기의 힘으로 되살린 한 과학자의 이야기' 꺼냈다.


이를 듣고 바이런 소설 집필을 권유했으며,

남편(이때까지는 불륜남) 퍼시가 적극적으로 소설화 작업을 도왔다고. 


1816년에 소설은 완성되었고,

2년 후인 1818년

'프랑켄슈타인'은 익명으로 세상에 내놓는다. 


1818. <프랑켄슈타인>메리셀리 

1819. <뱀파이어>폴리도리


하지만 모임에서도 또 문제가 생긴다.

바이런이 메리의 의붓 여동생인 클레어를 유혹하면서

둘 사이에 딸이 태어난 거다.

(...역시 집에 아무나 들이면 안된다. )

(하나만 곁들이자면, 그 아래의 유명한 말을 한 애가 바이런이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유명해져 있었다."




IV. 그리고 그 이후



1) 연이은 아이들의 죽음


메리 셸리 퍼시 비시 셸리의 사이는 좋았다고 한다. 

첫 아이를 잃고,

영국에서 이탈리아로 넘어온 뒤 두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둘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던 듯 보인다.



프랑켄슈타인을 세상에 내놓던 1818년, 

둘째 아들이 사망했고,

다음 해인 1819년에는 셋째인 딸이 사망했다.


1819년에 네 번째 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가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이가 되었다.



2) 남편의 이른 죽음


이후 1822년,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들을 보러 오던 퍼시의 배가 

항해 도중 폭풍을 만나 침몰했고, 그대로 익사한다. 


실종되었다가 며칠 후 해변으로 떠밀려온 

남편의 시체는 처참했다.


그동안 시체는 부패했고,

새들이 얼굴을 파먹어서, 

그야말로 끔찍한 모습이 되었던 것.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남편 심장 (퍼시 비시 셸리)] / ⓒ Louis Édouard Fournier)

 

퍼시 비시 셸리의 나이, 

스물 아홉이었다. 

(이 말인 즉슨, 메리 셸리의 나이는 스물 넷...)


하는 수 없이 친구들과 메리는 

퍼시를 화장 하기로 결정했지만,

당시에 유럽에서는 화장이 흔한 일이 아니었다고.




3) 남편의 심장을 간직하는 여자?


2018년 <서프라이즈>에서도 다루었던 부분이다.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메리의 아들이,

메리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퍼시의 심장 이야기.

퍼시가 쓴 '아도네이스' 시가 적힌 두 장에 

그의 심장이 쌓여있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화장을 했음에도 심장이 타지 않았음에 

의문을 가진 사람들로 인해,

1995년, 병원 연구원 아서 노먼은 이렇게 주장했다. 


“퍼시가 결핵을 앓고 있어 심장이 타지 않았다”



갑자기'결핵'이라니? 좀 새롭다.


'결핵균'으로 감염된 심장은 

석회화되어 불에 타기까지가 시간이 좀 걸리며, 

당시의 화장 기술로는 불이 먼저 꺼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얘기하니

왠지 가능성이 조금 있어보이기도.


이후 그녀는 꽤나 젊은 (어린) 나이임에도 재혼하지 않고

아들 양육과 소설 집필에만 신경쓰며 홀로 살았다고 한다. 

남편의 심장은 주머니에 넣어 간직하며.




V. 사실 이게 마지막은 아니지만


퍼시 셸리 묘비

퍼시 셸리의 묘비는 위와 같다. 

묘비명은 라틴어로 'Cor Cordium'이라고 쓰였으며, 

뜻은 '마음의 마음'이다. 


'마음 속의 가장 깊숙한 마음'정도로 의역할 수 있겠다. 


<서풍의 노래>에서

"겨울이 오면 어찌 봄이 멀 것이랴"라며 희망을 노래했고

<종달새에게>에서는

"우리는 앞을 보고 또 뒤를 본다.

그러나 찾는 것은 이 세상에 없는 것"이라 노래했다. 


그런 그를 열렬히 사랑했던 메리 셰릴.


남들은 어쩌면 겪지도 않았을 

수많은 고통과 슬픔과 충격을 겪고 이겨내면서, 


도리어 자기만의 목소리를 찾고, 

더 많은 책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사회적 편견을 스스로 깨는 힘을 

가지게 됐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