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유독 익숙한 위스키, 시바스리갈.
시바스 리갈. 한국사람들에게는 "시바스 리갈" 이라면 아예 못들어본 사람, 그리고 한번 이상은 들어본 사람으로 갈릴 것이 분명한 위스키. 외국 사람들이라면 그냥 "블렌디드 스카치 위스키의 하나" 로 취급받을 이 술이 유독 한국인들에게는 "역사의 한 흔적속에 남아있는 무언가"로 불리는 것은 지금 이때가 딱 시바스리갈과 연결되는 어떠한 키워드 하나 때문에 그런 것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박정희. 그렇다. 10월 26일은 김재규가 박정희를 궁정동 안가에서 저격한 "10.26 사건"이 있던 날이고, 그 당시 궁정동 안전가옥에서 박정희가 마지막으로 마신 술이 시바스리갈 12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시바스리갈 18년이나 25년이 아니었냐 하지만, 안타까운 사실은 그 당시, 그러니까 1979년 당시엔 시바스리갈 12년과 로얄 살루트 21년밖에 없었던 상황이었고, 로얄 살루트는 박정희가 "너무 아끼고 아끼다 못해" 자기 집에서만 놓고 마셨다고 하기 때문에 그때는 오히려 시바스 리갈 12년만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시바스 리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뭔가 "욕과 같은 어감으로" 들리는 (그래서 MBC '무한도전'에서도 "시바스 대갈"로 패러디 된 적도 있었던) 이 술은 왜 시바스 리갈일까? 바로 "시바스 브라더스"라는 회사에서 이걸 처음 만들었기 때문이다. 병 목에 있는 1801년, 그리고 애버딘이라는 지명이 이것을 너무나 깔끔하게 요약해주고 있는데, 제임스 시바스라는 사람이 1801년 스코틀랜드 애버딘에 있는 식료품점에 취직했다. 그리고 (원래는 다른 사람들이 만들고 운영했던) 이 식료품점을 이어받고 그것을 키워서 "시바스 브라더스"라는 식료품점이 되었다. (물론 처음엔 그 식료품점의 이름은 "시바스 브라더스"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제임스에게 형제가 있었으니 바로 그 사람이 존 시바스이다.
조니 워커를 이야기할 때도 그랬지만 보통 스코틀랜드의 식료품점은 각종 식재료,홍차류, 음식들도 취급은 하고 있었지만 당연히 위스키도 취급을 하고 있었는데, 존 워커와 비슷하게 제임스 시바스도 이 위스키를 그냥 팔기엔 너무 품질이 들쭉날쭉하니 블렌딩을 해보자 하여 위스키를 블렌딩 하여 팔고 있었다. 역시 이쪽도 당시엔 몰트는 몰트끼리, 그레인은 그레인끼리 섞을 수가 있었으므로 블렌디드 몰트로 만들어서 팔고는 있었는데, 현재는 이것이 시바스 리갈의 고급 라인업 중 하나인 "시바스리갈 얼티스"로 이어져 온다 (얼티스는 블렌디드 몰트 위스키이다.)
당시에는 제임스만 그 애버딘의 식료품점에서 일하고 있었고, 존은 다른 일을 하고 있었는데, 제임스 시바스의 식료품점은 당시 애버딘쪽의 귀족층과 그 근처인 발모랄 성에 있는 영국 왕가 (당시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였다) 에 식료품과 차를 공급하게 되면서 같이 위스키도 공급을 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어 1854년, 시바스 브라더스에서 만든 위스키를 처음에는 "시바스 브라더스 로얄 글렌디 위스키"라 불렀다. 그리고 그 사이에 다른 일을 하던 존도 제임스의 제안으로 애버딘의 식료품점에 들어오면서 우리가 아는 그 "시바스 브라더스"가 제대로 완성되기에 이른다.
그러던 중 1860년, 영국 내에서 법이 바뀌면서 "그레인과 몰트 위스키를 섞을 수 있게 되어" 이후 존과 제임스 시바스는 이 위스키의 블렌딩 제법을 바꾼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시바스 리갈의 블렌딩 제법이 되는데, 이걸 처음에는 주로 들여오던 위스키의 원산지인 스트라시싼의 이름을 따서 "시바스 브라더스 로얄 스트라시싼"이라 지었다. 문제는... 이후 시바스 형제 중 핵심이라 할 수 있던 제임스 시바스가 일찍 죽고, 그 아들인 알렉산더 시바스도 오래 못살고 죽고, 형제인 존 시바스와 그 가족들은 시바스 브라더스 식료품점을 운영할 형편이 안되어, 나머지 동업자들이 시바스 브라더스 가게를 이어오게 된다. 다행인 것은, 제임스 시바스가 그래도 그것을 동업자였던 찰스 스튜어트 하워드에게 블렌딩 제법을 전수하게 되면서 (마스터 블렌더인 것) 로얄 스트라시싼은 1900년대까지도 동일한 품질로 쭉 이어지게 되었고, 시바스 브라더스를 이어받은 동업자들은 1909년, 시바스 형제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당시엔 정말 희귀했던) 25년 숙성의 원액들을 모아, 블렌딩한 후 그것을 간단하게 "제왕의 (Regal) 시바스 위스키" 라 명명하였고, 그게 바로 "시바스 리갈 블렌디드 스카치 위스키" 가 되어, 그걸 줄여서 부르게 된 게 지금의 "시바스 리갈" 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금주법이나 여러 이유 (특히 세계대전이나 대공황) 등으로 인해 시바스 브라더스는 25년의 원액으로 쭉 시바스리갈을 만들 수 없었고, 결국 시바스 리갈은 이후 1949년 씨그램이 인수하기 전까지 12년의 원액을 최소 숙성년수로 두고 블렌딩을 계속하는 상태가 이어진다. (그래서 한 때는 NAS, 숙성년수 미표기에 가까울 정도로 막 섞인 시바스리갈도 나왔다 한다.)
재밌는 것은 이 1949년을 기점으로 시바스리갈과 함께 시작하게 된 것이 바로 "로얄 살루트"이다. 씨그램의 샘 브롬프먼 회장이 캐나다 사람이지만 영국 왕실의 덕후(?) 였던 지라, 시바스 브라더스를 인수하고, 그 직후 시바스 브라더스 위스키의 핵심이 될 "스트라스아일라" 증류소를 인수하고(인수할 때 당시는 밀튼 증류소라 불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에서는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를 하는데, 그게 1952년이었다.
샘 브롬프먼은 "아예 시바스 브라더스 소유의 증류소들도 인수했고, 밀튼 증류소도 인수했고 하니 새로 즉위하신 여왕님께 진상할 위스키를 따로 만들자!" 해서 시바스 브라더스에서 가진 여러 원액, 당시 밀튼 증류소에서 숙성중인 위스키 원액들 중에서 최소년수 21년 (당연히 영국 왕실 예포가 21발,즉, 21 Guns라서 그렇다.) 이상을 모아서 그걸 "로얄 살루트"라 해서 출시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1952년부터 씨그램이 80년대 보급형 블렌디드 위스키라 할 수 있는 (시바스) 패스포트나 100파이퍼 같은 제품들을 만들기 전까지는 시바스 브라더스에서 낸 제품 라인업은 일반형인 시바스리갈 / 고급형인 로얄 살루트 딱 2개 뿐이었다는 것이다.
시바스리갈 12년은 솔직히 "박정희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유명한 것 때문도 있지만,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전 즈음에 위스키,꼬냑 등의 양주 수입 제한이 풀리며 정식수입이 된 이래 "한국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위스키" 에 있어 발렌타인과 함께 양대산맥으로 불려왔었다. (넷플릭스 영화 '서울대작전'에서도 정부나 재계의 '높으신 분'들, 그중에서도 메인 빌런으로 나왔던 문소리가 작중에서 꼬냑과 위스키를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처음 영화가 나올 때 '그게 80년대 말이라는 시대 설정 고증에 맞냐'는 지적이 나왔었는데, 이 부분은 고증이 틀린 것이 아니다.)
물론, 시바스 리갈은 70년대에도 높으신분들이 좋아해서(?) 인지 미8군에서 빼온 물건 (소위 이태원이나 남대문의 시장에서 밀수품으로 많이 돌았다는 설이 있다.) 이라던가, 군인출신의 가족이나 친척이 있었던 사람들이 선물로 받아온 것들을 그 때에도 알음알음 맛을 봤다는 사람들의 증언이 나오기도 할 정도로 조니 워커 블랙라벨 만큼이나 한국 사람들에게는 어느정도 친숙한 물건이긴 했다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역사적인 부분을 빼고나서도 시바스 리갈 12는 한국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요소를 많이 갖춘 위스키이다. 바로 "언피티드". 즉 스트라스아일라를 포함하여 시바스리갈에 쓰이는 몰트들은 대체로 피트처리, 즉 이탄을 태워서 몰트를 건조시키지 않고 그냥 석탄을 때서 (요즘은 천연가스나 전기장치를 써서) 건조한 몰트를 주로 사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위 "피트 향"이라 하는 소독약같은 냄새가 나지 않는다.
물론 최근에는 위스키를 수집하거나 접하는 인구가 늘면서, 이 "피트향"이라는 것을 접하는 사람들이 늘은건 사실이지만, 위스키가 대중에 많이 알려지기 전에는 이 "피트향"이 위스키의 진입장벽으로 불려왔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조니 워커 시리즈는 피트 위스키인 <탈리스커>와 <쿨일라> 증류소의 원액을 주로 쓰므로, 그로 인해 생기는 강한 피트향이 조니 워커의 특징이면서도 호불호를 갈리게 한 요소이고, 발렌타인마저도 <아드벡> (BTS의 슈가씨가 즐겨 마신다는 그 아드벡이 맞다.) 증류소의 원액이 약간은 쓰이므로 이 피트의, 쉽게 말하면 '구두약과 소독약 사이의 그 역할 수도 있는 향'을 못버티면 위스키는 쳐다도 안보는 주류가 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시바스리갈은, 그게 없다. 이런 "언피티드"라는 특성은 한국사람들에게 "역한 냄새가 없고" 또한 12년이라는 긴 숙성 (물론 우리나라의 전통식 소주나 청주에 비하면 도수는 세지만, 숙성기간은 반대로 길다) 시간의 특성으로 인해 "독하다는 소문 대비 목넘김은 깔끔하며" 또한 결정적으로 "숙취가 별로 없다" 라는 것이 (이건 증류주의 특성이다. 증류 처리를 하면서 발효주 상태에 있던 미량의 메탄올같은 독성 성분을 많이 거르기 때문) 오래전의 한국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신선한 경험"이었기 때문. 그리고 한국에 정식 수입된 1990년대 초 당시의 위스키는 "높으신 분들이 마신다" 라는 이미지로 인해 호텔이나 백화점 등에서 많이 취급이 되었다. 그래서 이것을 '백화점에서 샀다' 내지는 '호텔에서 잔술로나마 마셔봤다'는 것이 일종의 "성공의 지표"로 불리기도 했었다. 물론 요즘은 시바스 리갈 12년의 경우, (200ml나 350ml로 나오는) 미니병 정도는 편의점에서도 흔하게 보일 정도이기 때문에 이거야 말로 꽤 오래전의 이야기이긴 하다.
언피티드의 특성상, 처음 입에 대었을 때, 달달한 느낌이 들어오고, 살짝 입에 굴릴 때 몰트(엿기름)의 그 곡물향에 영향을 받은듯 중간 느낌의 바디감이 살짝 치다가, 삼키고 나서의 피니쉬는 중간 정도 여운에 계속 단 느낌이 남는다. 이게 달고-살짝 고소하면서 달고-삼킨 후에도 달달한의 3콤보로 지나가는데, 이것이 인위적인 단맛이 아닌 발효 과정과 숙성과정에서 생긴 단맛이 강하게 남아서 분명 알콜 부즈(알콜기)가 있긴 하지만 그것을 단 향과 단 맛으로 빠르게 덮는 감이 강하다. 이래서 한국인들이 굉장히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것은 비슷한 급인 조니 워커 블랙라벨과는 정 반대의 측면이다. 조니워커 블랙은 피트감이 쓰게 들어왔다가 중간에 달고 뒤에 여운을 다시 스모키하게 남기는 측면으로 가기 때문.)
시바스리갈 12는 이 특유의 "단 느낌" 때문에 페어링이 되는 종류가 간단하게 "고기"로 정리된다. 맛은 달달하지만 뒷 향에서는 살짝 신 향의 느낌도 있어서 고기 특유의 누린 육향이나 느끼한 기름기를 잘 잡아주기 때문. 그 중에서도 정말 개인적으로는 탕수류, 즉 탕수육이나 꿔바로우 혹은 깐풍기, 좌종당계 (팬더 익스프레스에서 제네럴 쏘라고 파는 그 닭 탕수가 맞다) 같은 음식과 굉장히 괜찮은 궁합을 자랑한다.
약간의 후일담을 더하자면, 시바스 리갈과 로얄 살루트를 팔던 씨그램은 초대 창립자인 샘 브롬프먼과 달리 그 후대인 에드가 브롬프먼 주니어의 사업확장 욕심이 너무 과하게 되어 2000년 파산하고 만다. 그때 하던 "기행" 중에서는 이 로얄 살루트와 시바스 리갈의 라인업을 너무 파편화 시켜버린 것이 컸는데, 대표적으로 로얄 샬루트 38년(스톤 오브 데스티니라 불리며, 1990년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재위 38년 기념으로 나왔다.)과 시바스 리갈 18년(1997년 나왔다) 이 바로 그 대표적인 파편화의 사례. 그리하여 시바스 리갈과 로얄 살루트는 페르노리카에 인수가 되는데, 그나마 씨그램때보다는 시바스리갈의 "역사와 근본"을 찾고 싶어서일까. 시바스 리갈이 12년으로 굳어지기 전의 제법들이었던 25년산 (시바스리갈 25) 과 블렌디드 몰트 (시바스리갈 얼티스) 를 내는 등의 시도를 함과 동시에, 경쟁사들 대비 다소 트렌드와 멀어진 부분들을 메꾸기 위해 다양한 파생 제품들을 내기 시작했다. (특히 시바스리갈 13 엑스트라나 시바스리갈 15 같은 것들이 그렇다.)
시바스리갈 12, 공교롭게도 10월 26일이라는 날짜의 역사적 사건과 겹쳐서 뭔가 한국사람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키워드로 남은 위스키이지만, 가을과 겨울의 경계에 걸친 10월 말, 따끈한 탕수육이나 꿔바로우 등과 함께 시바스리갈 12로 만든 하이볼이나 온더락을 하면서 따뜻한 늦가을의 저녁과 밤을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
<Tasting Note>
감미 - 강함 / 산미 - 없음 (향에서 아주 약간) / 쓴맛 - 약함(아주 살짝 중간에 맵게 치는 정도) / 바디 - 약함 (이것도 중간에 약간)
노트 키워드 : 건포도, 바나나, 크랜베리, 바닐라 (전체적으로 스트라스아일라 베이스의 쉐리 캐스크의 단 향이 가득함), 애플민트(와 아주 약하게 나는 곡물향)
페어링 : 탕수육, 꿔바로우, 깐풍기, 좌종당계 등의 탕수류 중국음식 (소스가 같이 있는 상태에선 더더욱 맛과 향이 폭발할 정도)
<Information>
제품명 - 시바스리갈 12 / 제조사 - 페르노리카 (페르노리카 코리아) / 분류 - 블렌디드 스카치 위스키 (최소 숙성 12년 이상)
주재료 - 몰트+그레인 위스키 (혼합비 미공개, 보리맥아만 스트라스아일라 증류소 외) / 부수재료 : 없음
알콜함량 -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