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무리를 했다 싶으면 나약한 몸이 금방 경고신호를 보내곤 했다. 불규칙한 수면습관은 두통으로 이어졌고, 배는 조금만 찬 걸 먹어도 즉시 비명을 질렀다. 두통이나 배탈이 와도 내가 병원을 가거나 적절한 휴식을 취하지 않는 경우엔 금세 위경련이 찾아왔다.
대부분 예고도 없이 갑자기 찾아오는 증상이었기에 매번 병원을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위경련과 함께하는 끔찍한 밤을 몇 번 경험한 뒤부터 작은 약통을 구매해 증상별로 약을 챙겨 들고 다녔다.
머리가 아프면 두통약을 먹었고, 조금이라도 위가 아파질 기미가 보이면 진경제를 먹어두었다. 종종 알러지 때문에 가려움증이 생기면 항히스타민제를 처방받아 들고 다녔고, 아주 가끔 겪는 어깨 통증약도 혹시 몰라 함께 들고 다녔다.
약과 함께 있으면 불안함이 줄어들었다. 마치 게임 속에서 그냥 먹기만 하면 체력이 원상 복구되는 마법의 알약처럼, 일하는데 걸리적거리는 방해요인을 제거해주었다.
점점 약을 먹는 횟수는 많아졌다. 점심을 먹고 마시는 소화제는 즐겨 찾는 음료수가 되었고 술을 먹고 난 다음 날엔 숙취 해소 약을 챙겨 먹었다. 증상이 심해지면 심한 만큼 복용량과 횟수를 늘리면 그만이었다. 효과는 언제나 탁월했다. 나는 위대한 약학의 발전에 감탄하며 점점 스스로의 주치의가 되어갔다.
퇴사 후 집을 정리하다 약을 들고 다니던 파우치를 열었다. 대일밴드, 진통제, 진경제, 항히스타민제, 어깨 통증약, 소화제까지. 누군가 길을 가다 이 파우치를 주웠다면, 열정과 꿈을 가진 젊은 약학도의 파우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결국 약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계절마다 몸살도 꼬박꼬박 앓은 걸 보면, 약은 약대로 먹고, 통증은 통증대로 겪었다. 나는 어떤 괴물이 되려고 했던 걸까. 정말 아프지 않을 수 있다고 믿었던 걸까. 나는 검은 옷을 입은 사내가 찾아와 거액의 연봉을 제시하며 5년간 돈을 받으며 환자로 살아보지 않겠냐고 제안하고, 내가 덥석 그러겠노라 대답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다시 머리가 아파온다. 습관처럼 두통약을 꺼내려다 멈칫했다. 나는 곧장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불을 껐다. 굳이 약을 먹고 버텨야 할 이유가 없었다. 오늘만큼은 두통약보다 깊은 잠이 먹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