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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혜영 Apr 10. 2023

직장인의 연가는 놀러가는 날이 아닌 병원가는 날

저번주 금요일과 월요일인 오늘 병원에 가기 위해 연가를 썼다. 금요일에는 부러진 치아 한 개를 살려보기 위한 치주 수술을 받았고 오늘은 작년에 미뤄둔 국가건강검진을 하기 위해 아침부터 병원에 갔다. 금요일 치과 치료 이후 주말이 다 날아가버려서 오늘 하루 남은 연가가 무척 소중했는데 그마저도 오전 내내 병원에 가느라 시간이 가버렸다.


치료한 치아는 여전히 아파서 약을 더 처방받아왔고 염증이 생기지 않게 항생제 연고를 바르고 경구용 항생제를 타왔다. 그냥 빨리 뽑는 걸 결정하는 것이 더 나을 거라는 의견을 듣고 조금 침울한 상태로 언덕에 핀 꽃을 보러 갔다. 겨우 270m 거리의 경사를 오르며 숨이 차서 4번을 쉬어 갔다. 내가 이 정도 언덕에 힘들어한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어서 꽃이 평소보다 예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지난주 회사 뒤에 있는 언덕을 오를 땐 이렇게까지 숨이 차진 않았는데 이게 다 이가 아파서 그런 것이라면서 투덜거리다가 피하고 싶은 날이 점점 다가오는 것 같아서 순간 짜증이 몰려왔다. 그래서 내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엄마에게 “나는 지금 볼이 부어 사회에 불만이 많아 보이니 엄마를 찍겠다.”말하면서 대신 엄마 사진을 잔뜩 찍었다.


내가 고생하는 것이 무척 속상한 엄마에게 “엄마 감염만 안되면 괜찮아! 아픈 건 며칠 약 먹으면 되니까!”라고 말하며 넘겼지만 머리는 복잡했다. 예전에 사랑니를 뽑고 감염이 생겨 열이 40도까지 오르던 일이 생각나서 발치를 하는 것이 괜히 겁이 났다. 심장 판막질환이 있으면 치과 치료 시 발생하는 감염에 판막이 망가질 수 있기에 피가 나는 치과 치료 시 항생제를 먹으면서 조심히 치료를 했던 것이다.


향후 심장 수술을 받기 전에 발치할 치아나 치료받을 치아가 있으면 미리 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있어서 나도 서서히 내가 아끼는 어금니와 굿바이 인사를 할 시기를 계획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해야 할지 예상 못했다. 정말 부러진 것이 맞는지 우선 믿어지지 않으니 일단 더 써보는 미련을 남겨두고,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것은 아니라니 정말 아플 때 버려버릴 용기를 가진 다음에 치아를 뽑겠다는 결심을 해야 한다. 마침내! 임플란트를 하고 나서 치아보험 청구까지 하면 끝나는 일인 것이다.


겁쟁이는 미리 겁을 잔뜩 먹다가 이내 무덤덤하게 치료를 받을 것이다. 이때를 대비해서 치아 보험을 들어둔 나를 칭찬하면서 그래도 발전된 의료기술이 있으니 사는데 지장이 없겠다는 것에 안심했다. 나는 이제 몸 안에 온전히 내 것이 아닌 금속 성분이 들어가서 점점 탈인간화되어 포스트 휴먼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근시가 생긴 눈을 대신한 안경, 치아를 대신한 임플란트 치아, 심장 판막을 대신할 또 다른 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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