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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10. 2022

124. 물처럼 산다는 것

고요한 물은 상대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습니다. 바람이 불거나 내면이 고요하지 않은 물에서는 상대방의 얼굴도 일그러져 보입니다. 그것은 타인의 참된 얼굴이 아닙니다. 타인의 참된 모습을 보고 싶다면 물은 반드시 안으로 고요해져야 합니다.     

물은 부드럽습니다. 아무리 손을 넣어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물은 오히려 자신을 잡으려는 손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지나갑니다. 그런 물 앞에서 우리는 그저 우리의 더러운 땟자국만 씻을 수밖에요.     

물은 강합니다. 해일이나 홍수가 나면 아무리 튼튼하게 지어진 콘크리트 건물이라도 버텨내지 못합니다. 물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물이라는 것을 압니다. 파도에 휩쓸려 무릎까지 올라오는 물속에서 삶과 죽음을 넘나든 경험이 있는 나 역시도 그때 이후로 물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느라 참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물은 타자와 융화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네모난 잔에 담기면 네모의 형태로, 둥근 잔에 담기면 둥근 형태로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물의 성질까지 바뀐 것은 아닙니다. 다만 융화할 뿐이지요. 자신을 고집하지 않고 상대의 모습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킬 줄 아는 것, 그것은 타자와 함께 가기 위한 배려입니다.     

물은 나의 길만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흐르는 길에 돌멩이가 가로막혀 있어도 그 돌멩이를 부수지 않고 휘돌아 갑니다. 그러므로 물이 가고자 하는 길에는 돌멩이와 수초 등 많은 것들이 함께 할 수 있고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니 오로지 가고자 하는 길을 향해 전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타자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만이 할 수 있는 포용력이고 추진력입니다.     

흐르는 물은 더 크고 원대한 꿈을 향해 나아갑니다. 지류들이 합쳐져서 강으로 흐르고 다시 바다로 흐르고, 그렇게 흐르는 물은 결국 더 넓은 세계와 만나게 됩니다.     

작은 개울도 멈추지 않고 흐르다보면 결국엔 바다에 이를 수 있습니다. 멈추지 않고 흐르기만 한다면 그 길은 그리 멀지 않습니다. 주변에서 많은 물들이 그 물길로 모여들 테고 그 힘이 합쳐지면 더 빨리 바다에 이를 수 있을 테니까요.     

물은 생명을 살리는 근원입니다. 마른 씨앗은 싹을 틔우지 못하지만 그 씨앗에 물이 닿으면 생명이 탄생합니다. 물이 없으면 어떤 생명도 태어날 수 없고 또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생명을 키우는 것, 생명이 살 수 있게 하는 원천, 그것은 물이 가진 가장 큰 힘입니다.     

우리가 오늘도 어제처럼, 내일도 오늘처럼 여전히 똑 같은 메마른 가슴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은 서서히 죽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마른 감성에 물을 주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하는 일, 끊임없이 자신과 타인의 감성을 일깨워 그 안에서 세상을 향한 푸른 희망을 키워내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물과 같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더 크고 원대한 꿈을 향해, 모든 것을 보듬으며, 모든 생명을 살리면서,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물의 성품을 닮은 사람, 오늘 내가 그리워하는 바로 당신이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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