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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10. 2022

127. 가장 아름다운 때


얼마 전만해도 초록 일색이던 나뭇잎들이 어느새 울긋불긋한 색으로 온 산을 물들이고 있습니다. 일 년에 한 차례 밖에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지요.     

올해 설악산은 10월 19일, 치악산은 10월 22일, 중부지방에 있는 속리산은 10월 26일, 계룡산은 10월 30일, 한라산은 10월 31일에 단풍이 절정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내장산과 무등산, 두륜산은 각각 11월 8일, 11월 5일, 11월 11일이 되어야 단풍이 절정에 이른다고 하니 아직 단풍을 즐기기엔 늦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마치 그림처럼 대자연이 노랗고 붉게 물든 이 마법 같은 모습을 즐기기 위해 나들이를 떠나는 행렬도 많습니다.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내장산과 설악산 등에는 벌써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지요.     

단풍은 초록색을 띠는 엽록소가 점점 줄어들면서 엽록소에 가려져 있던 색소들이 나타나거나 또는 잎 속에 있던 물질들이 기존에 없던 색소로 바뀌면서 일어나는 자연현상입니다. 붉은색 단풍은 잎 속에 안토시아닌이라는 색소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나타는 현상으로 잎 속의 엽록소가 점점 줄어들 때 비로소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은행나무 잎처럼 노랗게 물이 드는 것은 잎 속에 카로티노이드라는 색소가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이 색소는 잎이 만들어질 때 엽록소와 함께 만들어지지만 엽록소의 1/8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잎이 처음 만들어질 때는 엽록소에 의해 초록색을 띠다가 가을로 접어들어 엽록소가 파괴되기 시작하면 점차 카로티노이드의 색깔인 노란색이나 갈색으로 물들게 됩니다.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지는 해에는 단풍이 그리 아름답지 않지만, 가을의 문턱에 접어들면서 기온이 천천히 내려가는 해라면 곱게 물이 든 아름다운 단풍과 만날 수 있습니다. 잎이 천천히, 느린 속도로 자연에 순응하며 세상과 어우러질 때 비로소 가장 아름다운 모습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따뜻한 봄이 잎의 탄생기라면 한여름 짙은 녹음은 잎의 전성기입니다. 전성기의 잎은 여름 장마나 태풍 같은 거센 비바람을 이겨내면서 꿋꿋하게 자신의 일을 해냅니다. 전성기를 지나면 왕성하게 활동하던 잎도 엽록소가 빠져나가면서 노년기를 맞게 되고 그때가 되면 잎은 일생에 있어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선물처럼 얻게 됩니다. 단풍의 계절이 지나면 잎은 스스로 나무에서 떨어져 나와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겠지요.     

잎이 맞는 노년기는 비록 가장 왕성하게 일하던 때와는 다른 모습이겠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빛나는 모습으로 세상에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느린 속도로 기온의 변화에 적응한다면 잎은 더욱 화려하고 빛나는 모습으로 세상에서의 마지막을 장식하겠지요.     

인간도 자연의 일부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청춘의 뜨거운 열정이나 패기, 아름다움은 곧 사라지겠지만 세상의 이치에 순응하면서 살아간다면 눈앞에 보이는 백발과 주름만으로 치부할 수 없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서 있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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