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휴대폰만 열면 수천 장의 사진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지만 불과 20년 전만 해도 사진은 백일이나 돌 때, 소풍갔을 때, 생일 때, 잔치할 때, 입학이나 졸업할 때 등 특별한 날에만 찍는 것이었습니다.
카메라는 워낙 비싸서 놀러갈 때는 주로 가격이 저렴한 일회용 카메라를 가지고 가곤 했는데 방심한 채 찍다보면 20여장 정도를 찍을 수 있는 필름 두 세통을 쓰는 것은 순식간이었습니다. 꼭 필요한 장면이 아니면 선뜻 셔터를 누르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어느새 손가락은 셔터를 눌러버리곤 했지요.
그렇게 찍은 필름들은 사진관에 맡겨야 했고 인화된 사진을 만나기까지의 시간은 길기만 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당일에 찾을 수 있도록 시간이 단축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사진을 보기까지 반드시 필요했던 것은 ‘기다림’과 ‘인내’였습니다.
사진은 찍힌 사람만큼 장수를 인화해서 나눠주었는데 사진을 처음 찍은 사람이 사진 값을 따로 달라고 요구하긴 했지만 대개는 못 받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그러면 그 인화비용은 고스란히 처음 사진관에 맡긴 친구의 몫이 되곤 했지요.
지금도 이따금 그때 그 시절이 담겨있는 앨범을 꺼내보곤 합니다. 마음이 헛헛할 때나 막연히 옛 시절이 그리워질 때 먼지 쌓인 앨범을 꺼내 지난 사진을 보노라면 힘든 마음은 어느새 누그러지고 메마른 가슴은 촉촉해집니다.
흑백으로 남아있는 갓난아기 때 사진부터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변해가는 내 모습을 보는 시간, 사진을 찍는 순간이 대부분 행복한 때라는 것을 생각하면 사진이야말로 행복을 모아놓은 추억의 보따리쯤이 되겠지요.
소풍가서 찍은 사진을 보면 소풍날 아침이 떠오르고 자연스럽게 엄마가 김밥을 싸던 순간의 따뜻하고 행복했던 아침풍경이 떠오릅니다. 엄마가 김밥을 말아 도마에 올려놓고 썰면 동생과 나는 서로 김밥 끝부분을 먹겠다고 어깨를 밀치곤 했지요.
귀한 바나나 한두 개가 김밥과 함께 소풍가방에 담기기도 했고 삶은 계란과 사이다는 필수였습니다. 조금 잘 사는 친구들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카세트를 들고 나와 폼을 잡기도 했고 일회용 카메라를 가지고 가는 친구도 꽤 있었습니다.
사진은 추억을 소환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치유의 힘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삶이 고되고 힘들 때, 마음이 갈라지고 메마를 때,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았을 때, 외로울 때 사진은 그 어떤 것보다도 큰 위로가 됩니다.
사진이 최소한 십년, 이십년,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지났을 때 더 큰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요즘 편리하게 사용하는 휴대폰 사진, 인화되지 못하고 휴대폰에 남아있는 사진이 그렇게 오랜 시간을 버텨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당신의 앨범 속에는 어떤 추억들이 담겨있나요. 오늘은 모처럼 먼지 소복이 쌓인 옛 앨범들을 꺼내서 힘들고 지친 우리의 영혼을 잠시 위로받아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