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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10. 2022

131. 친구

한 시인이 SNS에서 친구 자랑을 합니다. 강아지처럼 좋아한다는 말로 시작한 시인은 외로울 때나 슬플 때, 기쁠 때, 아플 때, 좋아 죽을 때마다 생각나는 친구라고 덧붙입니다.     

시인의 친구는 넋 빼고 울고 있으면 밥 먹자 하며 등짝을 후려치고, 조금 잘난 척이라도 할라치면 원래 네가 하는 짓거리잖아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외롭다고 하면 미술관으로 영화관으로 바닷가로 목욕탕으로 무조건 막 끌고 다니는 친구, 시인에게 그 친구는 울고 싶을 때 엎드려 울고 싶은 땅이었습니다.     

그녀가 올린 한 장의 사진은 예쁜 색색의 보자기에 싼 친구표 김치입니다. 올해도 시인은 그 친구가 담가 보내준 김치를 먹으며 오래 오래 친구의 마음을 생각하겠지요.     

그 글을 읽는 순간, 내 마음 속에는 참 오랜만에 질투 같은 묘한 감정이 느껴졌습니다. 그런 친구를 갖고 있는 그 시인이, 그리고 그런 벗이 되어주는 시인의 친구가 못내 부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끝내 댓글을 한줄 남겼습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이지요.     

학창시절, 항상 붙어 다니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우리는 항상 어울리며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음식을 나누고, 아픔을 나누곤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대학이라는 문 앞에 서자 우리의 관계는 소원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사람은 대학이라는 제도권 안으로, 또 한 사람은 밖으로 밀려났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보이지 않는 계급이었고 그 계급 앞에 그만 무릎을 꿇고 말았던 것이지요.     

사회에 나와서도 마음을 나누고, 음식을 나누고, 아픔을 나누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회에서는 학창시절보다 더 많은 장벽들이 우리를 가로막았고 그것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젊은 시절은 실타래처럼 얽어진 사회의 그물망 속에서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에 우리의 자존심을 빗대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한 시인의 친구 자랑이 못내 부러웠던 것은 내 스스로 그런 친구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전화기에 천여 개가 넘는 전화번호를 갖고 있어도 막상 시인이 했던 것처럼 외로울 때나 슬플 때, 기쁠 때, 아플 때, 좋아 죽을 때마다 찾을 수 있는 친구를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편하게 연락을 취하기엔 현실 속에서 부딪치는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늦어서, 때로는 친구의 가족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서, 때로는 나이 값도 못한다는 말을 들을까봐서, 때로는 사회적인 체면 때문에 그때마다 번번이 마음을 접고 말았던 것이지요.     

그러나 이제 생각합니다. 나는 과연 친구가 외로울 때나 슬플 때 함께 해줄 마음의 공간을 비워두었던 것일까 하고 말입니다. 언제나 내 상황이나 일이 친구보다 먼저인 건 아니었을까하고요.     

지금, 당신은 마음을 위로받을 친구가 있나요? 아니, 누군가에게 그런 위로가 되어줄 친구인가요? 오늘은 문득, 마음을 나눌 옛 친구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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