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를 벗어났습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내비게이션이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특히 낯선 도시에서 운전할 때는 이런 말을 수십 번 듣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덜컥 겁이 납니다. 길을 잃으면 어쩌나, 복잡한 도로에서 헤매다가 엉뚱한 곳으로 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러나 착한 내비게이션은 불과 몇 초 지나지 않아 “경로를 재탐색합니다”라는 말로 우리를 안심시킵니다. 빠르게 목적지까지 가는 경로를 탐색하는 내비게이션이 있으니 설령 길을 벗어나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다 해도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길을 조금 돌아가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고 목적지가 바뀌는 것도 아니니까요.
목적지에 빨리 도착할 수는 없겠지만 어쩌면 전혀 다른 길을 가는 동안 길가에 핀 아름다운 코스모스나 해바라기를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드넓은 바다와 만나게 될지도 모르지요. 마음을 더 편하게 갖는다면 길에서 파는 따끈한 옥수수를 사먹거나 신나는 음악에 심취하면서 더 즐겁게 길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시골 샛길을 알고 있다면 굳이 내비게이션이 가르쳐주는 길로 가지 않아도 됩니다. 내가 다른 길로 들어서면 내비게이션은 몇 번이고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라고 소리치겠지만 그럴 때면 마음속으로 콧방귀를 뀌는 거지요. 당신이 모르는 나만의 길을 알고 있다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요. 그럴 때면 마치 AI를 이긴 능력 있는 사람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할 겁니다.
내비게이션에는 언제나 목적지에 도착하는 최단거리가 입력되어 있으니 처음부터 시키는 대로만 간다면 우리는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도 있습니다. 누구보다 먼저 목적지에 도착해서 느긋하게 여유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다른 사람들이 도착하는 시간까지 기다리려면 혼자서 무료한 시간을 감당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제나 정해진 길로만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길이 아니면 낙오자라고 생각하거나 실패했다고 생각하기도 하지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을 가야하고, 취업을 해야 하고, 결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남들이 모두 거치는 과정에서 이탈하면 인생이 실패했다고 여기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죽음이라는 목적지에 가 닿는 긴 여정입니다. 그 길을 어떻게 갈 것인지는 오로지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취업을 먼저하고 대학을 갈수도 있고 결혼부터 하고 공부를 나중에 할 수도 있습니다. 공부가 아닌 취미생활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남들이 가는 길에서 벗어나 돌아서 갈수도 있고 남들이 모르는 샛길로 갈수도 있습니다. 길은 선택이지 필수가 아닙니다. 중요한 건 그 길을 혼자 갈 것인지, 함께 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좋은 친구가 있다면 돌아서 가는 길도 즐거울 테니까요.
만일 지금 내가 가는 길이 잘못된 길이 아닐까 걱정이 된다면 잠시 여유 있게 주위를 둘러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빨리 도착해서 무료하게 기다리는 것보다는 좋은 친구와 함께 주변을 둘러보며 여유 있게 돌아가는 것도 인생을 조금 더 의미 있게 살아가는 방법이 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