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도 없고 물도 없고 정도 없는 화강석에서 맥박이 뛰고, 신성神性이 넘치고, 호흡이 고르고, 온溫과 엄嚴을 구비한 위대한 모습이 드러날 때, 환희는 장인의 손끝에 있지 않고 신라 천지를 휩쌌을 것이고 천지를 울렸을 것이다”
1934년 한국 미술사학의 선구자로 알려진 우현 고유섭 선생은 석굴암 본존불을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술사학자들은 종종 시처럼 이런 글을 남겼는데 미술사학자를 시인으로 만드는 대표적인 존재가 바로 석굴암이었다고 합니다.
신라 경덕왕 때 짓기 시작해서 혜공왕 때 완공된 석굴암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고 벽에는 39개의 불상들이 조각되어 있으며 한가운데 본존불상이 놓여있는 형태입니다. 석굴암은 신라인들의 창조적 예술 감각과 뛰어난 기술이 담겨 있는 불교건축과 조각으로 한국 고대 불교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걸작이기도 하지요. 마치 돌 속에 계신 부처님을 사람이 들어내서 모신 것 같다는 말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니 뛰어난 작품이라는 점에서는 누구도 이견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맨 처음 그 돌 속에 부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아본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남들은 흔하다고 생각하는 돌 속에 숨어 있는 부처님을 알아본 석공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석굴암이라는 위대한 작품과 세기를 넘어 마주할 수 있는 기회도 없었을 테고 그 바위도 그저 산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바위로만 남아있었겠지요.
이탈리아의 조각가인 미켈란젤로의 최대 업적 중 하나로 손꼽히는 ‘모세 상’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미켈란젤로가 70세가 되던 1545년에 만든 모세상은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죽고난 후 무덤에 쓰일 조각품이었다고 합니다.
미켈란젤로는 이 ‘모세 상’을 만들기 위해 대리석 하나를 가지고 와서 작업장 한켠에 두고 시간이 있을 때마다 돌을 향해 이렇게 질문했다고 합니다. “거기 돌 속에 계시는 당신은 누구입니까. 당신이 누구신지 내가 알아야 바깥으로 들어내 드릴 수가 있지요”라고 말입니다. 아마도 돌 속에 숨어 있는 예술적 혼과 생명을 향해 던진 말이었겠지요.
앞서 말한 우현 선생의 말처럼 피도 없고, 물도 없고, 정도 없는 돌에서 맥박이 뛰고 신성이 넘치는 이런 모습을 발견해내기가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無에서 무엇인가를 창조해내는 예술가들은 모두 이런 고민들을 하며 살아가고 있겠지요. 그것은 예술을 행하는 자신에 대한 믿음, 그리고 예술적 가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비로소 가능해지는 일입니다.
예술가가 아닌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은 필요합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빛을 찾고 보람을 느끼려면 가장 먼저 그 일을 하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하고 나아가 내가 하는 일 속에 가치와 보람이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행하는 과정에서 그저 돌처럼 무의미하게 끝나지 않으려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나의 일에 담긴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은 없는가 하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