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두 분이 사는 친정집에는 해마다 100포기가 훨씬 넘는 김장을 합니다. 집 뒤에 있는 남의 땅을 빌려 텃밭농사를 짓는 부모님은 12월이 되면 그곳에서 수확한 재료들을 깨끗이 다듬고 씻어서 정성스럽게 김장준비를 합니다. 준비하는데 하루, 속을 버무리고 김치 속을 넣는데 하루, 꼬박 이틀이 걸리는 긴 작업입니다.
팔순을 바라보는 부모님은 미리 준비해 둔 수십 개의 통들을 깨끗이 씻어 두고 김장 속을 넣는 대로 마당 한켠에 차곡차곡 쌓아둡니다. 워낙 많은 양을 하기 때문에 자식들은 물론이고 이웃들까지 와서 팔을 걷어붙입니다. 김장이 끝나면 수육에 김장김치를 먹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김장비용을 드리거나 몸으로 노력봉사를 하는 것으로 부모님이 해주신 김장에 우선권을 가진 자식들이지만 식구가 별로 없으니 많이 가져가봐야 두 통입니다. 그러고 나면 남는 것은 동네 분들의 몫입니다. 혼자 사는 어르신들에게 한통씩, 그리고 부모님 집에 세 들어 사는 분들에게 각기 한 통씩 돌아갑니다. 자식들이 매번 사먹어도 되니 김장 하지 말자고 하는데도 굳이 해마다 고생스럽게 농사를 짓고 김장을 담는 것도 모두 더 많이 나눠먹기 위한 것이지요.
부모님 집은 낡기도 했지만 월세를 적게 받아서인지 다문화가정이나 홀로 거주하는 분 등 꽤 다양한 분들이 함께 삽니다. 부모님 생신이나 명절이면 가장 먼저 챙기는 것도 그분들께 드리는 음식입니다. 설날이 되면 자식들은 큰 쟁반을 하나씩 챙겨서 그분들께 떡국이나 이런저런 음식들을 담아 전달하기 바쁩니다. 고향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명절을 보내는 분들과 명절음식을 나눠먹어야 한다는 것이 어머니의 오랜 의지이니까요.
어머니는 항상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잊으면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말을 실천하듯 오랜 세월 변함없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마음을 나눕니다. 젊은 시절 세를 얻으러 갔다가도 자식이 많다고 매번 퇴짜를 맞았다는 어머니는 문 앞에서 울기도 많이 하셨다지요. 먹을 것이 없어 배를 곯는 일은 허다했고, 자식이 뜨거운 물에 발을 데어 살점이 떨어져 나갈 때도 소주 몇 병을 사서 냄비에 부어 그 속에 발을 담그라고 한 후 하루 장사를 끝까지 해야만 했던 일은 지금도 어머니에겐 아픈 기억입니다. 도와주는 사람 한명 없는 객지에서는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아이들의 배고픔을 달랠 수 있었으니까요.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어머니는 비록 낡고 오래된 집에 살기는 하지만 장사를 하지 않아도 배를 곯는 일이 없고, 작은 방이지만 월세도 주고 있으니 어느새 올챙이에서 개구리로 탈바꿈하신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 어머니에게 옛 시절은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기억입니다. 지금 세를 사는 분들이나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은 모두 어머니의 올챙이 시절을 되새기게 해주는 분들인 셈이지요.
어머니는 지금도 항상 “개구리가 처음부터 개구리더냐? 개구리가 올챙이 적 시절을 잊어버리면 안 되는 거다”라고 되짚어 말씀하십니다. 오늘처럼 가끔 올챙이 시절이 까마득해 질 때마다 되새기게 되는 어머니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교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