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봄 Feb 10. 2022

267. 나의 색깔은

누군가 내게 “당신은 어떤 색깔입니까?” 하고 묻습니다. 참 별거 아닌 질문인 것 같은데 막상 이 질문을 받고 나니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헤집고 지나갑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돌아보게 되고, 내가 살아온 삶도 잠시 돌아보고, 내가 평소에 가진 신념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발 나아가 각각의 색깔이 가진 의미도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빨간색은 정열과 의지를 의미한다든지, 하얀색은 순수와 결백을 의미한다든지, 회색은 이도저도 아닌 것을 의미한다든지, 검정은 어둠 속을 헤매는 것을 의미한다든지 하는 것들 말입니다.     

나는 그중 나와 꼭 맞는 색을 찾아 ‘나는 ○○색’이라고 말합니다. 그때부터 그 색은 단순한 색의 의미를 넘어 나를 대변하는 색이 됩니다. 굉장히 단순한 질문이었지만 나는 그 질문을 받는 순간부터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나는 밝고 경쾌한 ‘노랑’이고 싶었습니다. 한 번도 노랑이 되어본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언제나 노랑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노랑 근처를 맴 돌았습니다. 오렌지색도 못되는 귤색이랄까, 귤색 중에서도 아주 흐릿한 귤색으로 노랑 주변을 맴 돌았습니다. 주변의 노랑들이 부러울 때가 많았지만 그 노랑은 한 번도 나의 몫이 되어주지 않았습니다.     

성장하면서 어느 순간 ‘빨강’이 되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어느 순간에는 앞이 보이지 않는 ‘검정’이 되었던 때도 있습니다. 행복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 불혹의 나이를 넘어서면서는 점점 ‘회색’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색이 지워지는 과정일 수도 있고, 모든 색을 흡수하는 과정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 색이 점점 편안한 옷을 입은 것처럼 내게 잘 맞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문학의 최종 목표가 지식을 쌓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라면 누군가의 색깔을 묻는 이 질문은 최소한 반쯤은 성공한 것처럼 보입니다. 비록 단순히 색깔을 묻는 질문이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삶을 돌아보게 만들었고 생각하게 만들었으니 말입니다. 누구도 스스로의 삶을 한마디로 단언하긴 어렵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하루하루 살아갈 수는 없는 만큼 한번쯤 돌아보고 생각하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겠지요.     

<장자> 제2편 ‘제물론’에는 ‘호접지몽’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장주라는 사람이 꿈에서 나비가 되었는데 이리저리 훨훨 날아다녀도 움직임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워 스스로도 자기가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화들짝 잠에서 깨어보니 자기는 여전히 육신을 가진 인간 장주였다는 것이지요. 장주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자신이 느낀 것은 장주가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이었을까,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인간이 된 것일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누구든 스스로를 한마디로 규정지어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내가 나비였는지 장주였는지도 알기 어렵고 그래서 수많은 철학자들의 화두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되기도 했습니다. 한 철학자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유명한 말도 남겼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누구도 정답을 가르쳐주지 않는 이 세상, 오늘은 나 스스로에게 “나는 무슨 색깔일까” 하고 질문을 한번 던져보는 건 어떨까요. 

이전 01화 300. 고양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