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우리 집에서는 개, 염소, 닭, 칠면조까지 다양한 동물들을 키웠습니다. 특별한 날이 되면 닭은 어느 순간 밥상에 올라와 있기도 했고 개와 염소는 내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 다른 사람에게 팔아버려 눈물 콧물 다 흘렸던 기억도 있습니다. 깊이 정든 동물들을 떠나보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견디기 힘든 일이지요.
사람 먹을 것도 귀하던 시절, 개에게 줄 먹이가 필요했던 엄마는 인근 식당을 돌며 음식찌꺼기를 얻어다 소쿠리에 붓고 흐르는 물로 씻은 후 다시 솥에 넣고 푹푹 삶아서 그걸 개에게 주었습니다. 당시에도 음식찌꺼기 냄새는 고약하기 그지없었지만 그거라도 없었다면 개와 함께 살기란 힘든 시절이었지요. 개는 먹이를 주는 엄마를 가장 좋아했고, 잘 쓰다듬어주는 나와 동생도 잘 따라서 마당에서 사는 또 한명의 식구나 다름없었습니다.
염소는 풀만 먹이면 되니까 뒷마당에 매놓고 저녁이 되면 다시 창고에 있는 우리까지 들여놓기만 하면 됐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풀만 먹고도 잘 사는 염소는 욕심이 없는 참 소박한 동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작고 암팡지게 생긴 얼굴과 이마에 돋은 작은 뿔은 금방이라도 들이받을 것 같았지만 무서운 외모와 달리 실제로는 순하고 착한 동물이었지요.
고양이는 어른이 되고 나서야 키우게 된 동물입니다. 예전에는 고양이를 집에서 키우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고 불길한 동물이라거나 배은망덕한 못된 동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쓰다듬는 사람 손에 길들여졌다 싶으면 어느새 발톱을 드러내고 할퀴고, 공들여 키웠는데도 어느 순간에는 살았던 집을 버리고 짝을 찾아 달아나버리니 말입니다.
어느 날 도로에 버려진 새끼를 거두어 키우다 바늘을 삼키는 바람에 목에 구멍이 나서 수술을 시킨 적이 있었는데 상처가 나은 뒤에는 바람같이 사라져 오래오래 마음을 아프게 한 것도 바로 고양이였습니다. 그때 들인 정을 혼자 떼느라 한참을 애를 먹었지요. 이후로 고양이는 다시 키우지 말아야지 다짐했습니다. ‘정주고 내가 우네’ 하는 노랫말처럼 고양이는 안 그런데 나만 혼자 정을 들였나 싶어 내심 괘씸하고 서운했거든요.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는 동물, 어쩌면 그게 사람이 싫어하는 요소이자 고양이만이 가진 매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집에서 키우는 많은 동물들은 사람과 한동안 살게 되면 어느 정도는 길들여지게 마련입니다. 사람을 반가워하고, 밥 줄 때를 기다리고, 밥을 가져다주면 달려와 꼬리를 흔들거나 어떻게든 고마움을 표시합니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길들여진다는 것은 자신이 가진 야생과 본성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뜻합니다. 상대에게 의지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스스로 먹이를 구하거나 스스로를 돌보는 힘을 잃게 되고 결국엔 자신이 의도하는 대로 세상을 살아가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이지요.
개인적으로는 사람에게 길들여진 순한 개를 좋아하지만, 매력 있게 여겨지고 관심이 가는 동물은 고양이입니다. 일반적으로 야생동물이라 하면 사람과 함께 살지 못하고 종족끼리만 어울려 사는 경우가 많은데 고양이는 사회 속에서도 자신을 잘 지키며 사는 그런 매력을 가진 아주 특별한 생명체였습니다. 함께 살 줄 알면서도 결코 길들여지지 않고, 사회 속에 스며들 줄 알면서도 자신의 본성을 잃지 않는 매력 있고 멋진 동물이 바로 고양이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