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봄 Feb 09. 2022

25. 여수, 혼자 떠난 여행

1박 2일 동안 혼자만의 짧은 여행을 떠났습니다. 무더운 날씨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곳에 가서야 만날 수 있는 것들을 보기 위해 무작정 배낭을 둘러멨습니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여수, 얼마 전 화재가 난 향일암이 이후에 어떻게 복원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여수에 들른 김에 여수가 품고 있는 오동도와 돌산공원, 야경이 아름다운 돌산대교도 함께 보고 오리라 마음먹었습니다.          

기차로 4시간 반, 엑스포 현장과 아쿠아플라넷을 둘러보고 오동도를 거쳐 케이블카를 타고 야경을 구경한 뒤 돌산공원에서 다양한 공연을 구경했습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탓에 늦은 저녁에는 서시장 근처에 있는 28번 포장마차에 들러 맘씨 좋게 생긴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소주도 몇 잔 마셨습니다. 포장마차 이름은 ‘화수분’, 어느 날 서울에서 온 손님이 돈 잘 벌라고 지어준 이름이라는 말을 들으며 다시 여수를 찾으면 반드시 이곳을 찾겠노라 약속도 했습니다. 이제 여수에 들르면 풍경처럼 나를 맞아줄 곳이 한곳 생긴 셈입니다.          

둘째 날 일찍 향일암에 가기 위해 게스트하우스를 나섰습니다. 50대 후반의 흰머리 성성한 택시기사님과 왕복운행을 약속하며 30여분을 달려가는 동안 여수 토박이라는 그분과 여행객들은 절대 모르는 숨겨진 보석 같은 이름 없는 해수욕장에 대해, 향일암과 여수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그분은 개구쟁이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가 청년이 되었고 중년이 되었습니다.           

결혼 후 10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자 아내가 스스로 집을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야기, 그런 아내를 기다리며 여태 허망하게 나이를 먹었다는 이야기, 재혼을 하고 싶어도 요즘 여성들 중에 사랑만으로 살겠다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아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돌아 나오는 길, 마침 점심때가 되고 해서 함께 점심을 먹었고 기차시간까지 고작 2시간이 남아 있는 그 짧은 시간에 우리는 ‘밥 친구’가 되었습니다.          

기차역 근처에서 아쉬운 인사를 하고 택시를 돌려보냈는데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뒤에야 나는 그분께 택시비를 드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다행히 무심히 건네받은 명함이 있어 부리나케 전화를 했는데, 그분은 “좋은 사람과 밥 먹은 값으로 대신 하겠다”고 합니다. 택시비가 줄잡아 5만원은 넘었을 텐데 말이지요.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아니 어쩌면 평생 다시는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좋은 인연의 값으로 하루 사납금의 절반이 넘는 돈을 대신하겠다는 말에 나는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굳이 안 받겠다는 그분을 설득해 결국 택시를 기다려 5만원을 건네기는 했지만 돈과는 바꿀 수 없는 사람과의 귀한 인연을 얻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오랫동안 아련해집니다. 이제 여수를 떠올리면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는 오동도와 돌산대교, 향일암 외에도 28번 화수분 아주머니의 웃음과 택시운전을 하며 살아가는 맘씨 좋은 아저씨가 더 생긴 셈입니다. 이제 나는 언제든 다시 배낭을 메고 낯설지 않은 여수라는 도시의 그리움을 찾아 훌쩍 떠날 수 있겠지요.     

이전 27화 20. 작은 배려에 담긴 마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