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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09. 2022

20. 작은 배려에 담긴 마음

희부 언니가 모처럼 전화를 걸어와 묻습니다. “요즘 힘들지 않니? 커피 한잔 사무실로 가져갈 테니 그 시간만이라도 잠시 숨 좀 돌리고 여유를 가져봐”라고 말이지요.           

일에 지쳐있던 나는 그 전화를 받은 이후부터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10여년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언니한테 오늘은 또 어떤 하소연을 할까 머리를 굴리며 하소연할 이야기를 기억해내는 거지요.           

늘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한번 먼저 걸지 않는 내게, 나만큼이나 바쁜 언니는 항상 웃으며 소소한 선물들을 가져와 안겨줍니다. 때론 볼펜 여러 자루를 안기기도 하고 때론 먼 곳에서 공수해왔다는 과일이나 빵을 잔뜩 안기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보다 자주 향 좋은 커피 두 잔을 손에 들고 활짝 웃으며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마치 산타클로스처럼 말이지요.          

언니가 찾아오는 날은 나이를 잊고 왠지 어린애가 되는 느낌입니다. 한 시간 남게 가슴에 쌓아두었던 이런저런 얘기를 몽땅 풀어놓는 것은 물론이고 언니가 건네는 맞장구까지 덤으로 받은 후에야 다 식은 커피를 한꺼번에 들이키며 자리에서 일어서곤 하니까요.          

언니는 말없이 내 얘기를 듣다가 때론 손도 잡아주고 때론 안아서 등도 두드려줍니다. 그러면 나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그동안의 피로를 모두 잊은 듯 언니를 배웅하지요. 그리고 언니의 모습이 멀어진 후에야 알게 됩니다. 내 얘기를 듣느라 정작 언니는 이야기는 한마디 하지 못했다는 것을요.          

이야기를 오래 들어주는 것은 상대에 대한 지극한 ‘배려’입니다. 마주 앉아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따뜻한 손을 내밀어 잡아주는 것은 허전하고 쓸쓸한 나날들에 보석같이 찾아드는 행복입니다. 세상 속에서 자꾸 메말라가던 나는 언니의 작은 배려로 인해 다시 보드랍고 따뜻한 감성을 유지하며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배려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리다 보면 문득 생각나는 일화가 있습니다. 인도 수상 간디의 신발 한 짝에 관한 이야기는 꽤 유명한 일화지만 떠올릴 때마다 참 쉬운 일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연설 차 지방에 갔던 간디가 급하게 막 출발하는 열차에 올라타다 실수로 한쪽 신발을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열차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기 때문에 신발을 주울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간디는 얼른 나머지 한쪽 신발을 벗더니 밖으로 세게 던졌다지요. 주변 사람들이 왜 그러냐고 물으니 “나는 어차피 신지 못하지만 누군가가 저 신발을 줍는다면 두 짝이 있어야 신을 수 있을 게 아닌가”라고 답변했다 합니다.           

내 것을 잃어버린 난감한 상황에서도 떨어진 신발을 줍게 될 사람을 위해 남은 신발 한 짝을 던지며 잘 신을 수 있기를 기도했던 그 마음을 잠시 떠올려 봅니다. 그냥 가지고 갔다면 쓰레기통에 버려야 했을 신발 한 짝을 희망으로 만드는 일, 그것이 바로 배려가 가진 힘이겠지요.          

배려는 굳이 돈이 아니어도 괜찮은, 내 마음을 두 손에 담아 상대에게 건네는 일입니다. 내 오랜 지기인 희부 언니가 내게 했듯이 상대방에게 작은 희망을 전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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