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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09. 2022

27. 장애에 관한 짧은 생각

중·고등학교 시절 마음속으로 오래 짝사랑 했던 사람이 20여년이 훨씬 더 지난 후 장애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우연히 들었을 때 가슴 속에서 커다란 바위 같은 것이 ‘쿵’ 하고 내려앉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막연히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으려니, 멋진 모습으로 잘 살고 있으려니 생각했던 내게 그 소식은 차마 믿기 어려운 것이었지요.           

자동차 사고라고 했습니다. 그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돼 이제는 더 이상 걸을 수가 없다고도 했습니다. 늘 활동적으로 움직이던 사람이 휠체어에 앉아있는 모습을 나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눈으로 확인한 뒤에도 믿을 수 없었던 내 마음은 오래 지속됐습니다. 멀쩡히 움직이던 사람이 그렇게 한 순간에 장애인이 되어 앉아있는 모습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비현실적으로 다가왔으니까요.          

그때 이후부터 장애가 우리 곁에 정말 가까이 있다는 것이 조금은 현실로 느껴졌습니다. 뉴스나 아니면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듣곤 했던 일들, 그러나 어느 한순간 멀쩡한 내가 그들과 같은 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끔찍하긴 했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내 스스로 장애를 체감한 것은 10여 년 전 라식수술을 할 때였습니다. 정신은 멀쩡한 상태에서 안구에만 마취를 하고 수술이 진행됐는데 각막을 들어냈는지 갑자기 잘 보이던 사물이 일순간에 캄캄해져 버리더군요. 아니 캄캄함을 넘어 칠흑같이 막막했던 순간, 수술이 진행되던 그 짧은 순간에 나는 시각장애인은 이런 두렵고 무서운 캄캄한 세계 속에서 살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마도 막상 일어나 걸을 땐 누워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겠지요.           

얼마 전 구족화가와 채팅을 한 일이 있습니다. 발가락으로 하는 채팅이라 시간이 느리긴 하지만 그 화가와의 교감은 어느 누구와 소통할 때보다도 진지했습니다. 그가 쓸 수 있는 신체부위는 오로지 발뿐이었지만 예술을 추구하는 작가로서 창작의 고통, 장애를 가진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일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그에게서는 아직 내가 겪어보지 못했던 깊이가 느껴져 이야기 도중 문득문득 숙연해질 때가 많았습니다. 그분들에게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는 세상의 이면을 보는 힘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세상에는 장애인이 참 많습니다. 단지 세상 속으로 나오는 일이 불편해서 자주 만나기는 어렵지만 통계상으로도 참 많은 장애인들이 우리가 사는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몸이 불편한 장애인보다 마음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생각도 듭니다. 남의 불행에 공감하지 못하고 오히려 비아냥거리는 겉모습 멀쩡한 마음 장애인도 많지요. 남의 행복을 비트는 것도 모자라 해코지 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타인이야 어찌됐든 나만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요.          

우리 곁에는 겉모습만 멀쩡하고 속으로 곪아터진 마음 장애인들이 얼마나 많이 살고 있나요. 장애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매정하게 몰아치는 마음의 장애를 가진 사람이 혹시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과 나는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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