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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스미다 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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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09. 2022

29. 풍등

올 여름 난생 처음으로 해변축제에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춤과 노래가 있는 그곳에 있어도 마음이 들뜨거나 즐겁진 않았습니다. 태생이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고 또 시끄럽고 요란한 것 보다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몇 사람이 모여 소소하게 웃고 떠드는 것을 더 좋아하는 성향 탓이기도 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수만 명의 사람들은 저마다 흥에 겨워 자유로움을 만끽 하는 가운데 ‘저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일에 마음아파 하거나 기뻐하고 있을까’, ‘이곳에는 어떤 사연들을 안고 모여들었을까’ 혼자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무대에서 벌어지는 요란한 가무를 지켜보는 사이 어느새 행사 마지막에 이르렀다는 신호와 함께 대형 불꽃놀이가 시작된다는 말이 들렸습니다. 카운트다운이 이어지고 수만 명의 사람들이 숨죽여 지켜보는 가운데 드디어 광복 70주년을 기념하는 대형 불꽃놀이가 밤하늘을 수놓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까만 도화지에 그려 넣은 아름다운 예술작품처럼 때론 수직으로, 때론 포물선으로, 때론 하트 모양으로 제각각 자신의 존재를 뽐냈습니다.           

그 잠깐 동안의 아름답고 화려한 순간을 어떤 시인은 우리가 사는 인생으로 표현하기도 했지만 화려함을 자랑하다 사라지는 불꽃을 미처 깨달을 새도 없이 이내 더 환하고 아름다운 불꽃들이 하늘을 수놓자 사람들은 이내 새로운 불꽃에 빠져들었습니다.           

아마 우리의 인생도 그러하겠지요. 누군가는 화려한 삶을 사는 동안 어느 한 곳에서는 스러져가는 삶, 그러나 아무도 그 스러진 삶에 대해 눈길을 주지는 않으니까요. 그러나 화려했던 삶도 언젠가는 그렇게 누구에게도 관심 받지 못하고 스러질 수 있다는 것을 화려했던 당시에는 미처 알지 못하는 것이 또 우리의 한계이겠지요.          

그러나 정작 내 눈을 끌었던 건 대형 불꽃이 아니라 200미터쯤 옆쪽에서 띄워 올린 ‘풍등’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둥글고 환한 빛으로 둥실 하늘로 오르는가 싶더니 그 작은 풍등은 어쩌자고 대형 불꽃놀이가 펼쳐지는 곳으로 쉬지 않고 날아오는 것이었습니다.          

부디 풍등이 그쪽으로 와서 타버리지 않기를 빌었던 건 대형 불꽃에 비해 너무도 왜소하고 약해보이는 풍등이 안쓰럽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내 바람과는 상관없이 풍등은 자신의 내부에 작지만 환한 불꽃을 품고 서슴없이, 그러나 천천히 대형불꽃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나는 숨을 죽이고 풍등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드디어 작은 풍등과 대형 불꽃이 마주친 순간,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작은 풍등은 대형불꽃 앞에서도 결코 주눅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더 드러내며 그 자리에 멈춰 서서 활활 타올랐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대형 불꽃에 환호성을 지르는 동안에도 자신의 갈 길을 잘 알고 있다는 듯 당당하게 내부에 품은 뜨거운 불을 온몸으로 소진한 뒤 하나의 까만 점이 되어버린 풍등.           

나도 저 풍등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그 생각에 이르자 하염없이 눈물이 났습니다. 그 눈물은 대상이 서럽거나 안쓰러워서가 아닌, 작지만 당당한 하나의 존재에 대한 감격과 존경을 가득 담은 눈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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