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부터 25년 정도 단골로 다니는 작은 동네 옷가게가 있습니다. 다섯 평이 될까 말까한 이 가게는 내가 유일하게 다니는 옷가게이자 나의 패션을 완성해주는 곳입니다. 요즘들어 이따금 홈쇼핑을 통해 옷을 구매하는 일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내 옷의 구십 프로는 여전히 그 가게에서 구입한 옷들로 채워집니다.
처음 그 옷가게를 가게 된 것은 내가 스물한 살 때입니다. 그때 그 옷가게가 있던 자리는 음식점이었고 젊은 여주인은 아이 둘을 데리고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옷가게로 바뀌더니 지금까지 똑 같은 상호를 내걸고 이십 년이 넘게 그 자리에서 장사를 하다가 지난해 가을쯤인가 한 블록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 옷가게에서는 옷을 구입하기 위해 시간을 끌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옷을 입는 성향은 물론이고 내 사이즈에 맞게 내가 좋아하는 옷 등을 알아서 권해주니까요. 이 옷가게 주인은 내가 가장 날씬했을 때의 모습도, 내가 임신했을 때의 모습도, 예전에 비해 10킬로그램이나 더 많이 나가는 지금의 몸무게까지도 훤히 꿰뚫고 있습니다. 큰 사이즈의 옷을 고를 때마다 지청구를 듣긴 하지만 예전 날씬했던 모습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그것도 그리 기분 나쁘진 않습니다.
내게 그 옷가게는 울고 싶을 때마다 찾아가 위로받는 곳이었고, 우울할 때 찾아가 기분전환을 하는 유일한 곳이었습니다. 비록 가게 주인과 손님으로 만난 사이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다보니 자연스럽게 주인의 불행이나 행복에 대해서도 속속들이 알고, 내 사정에 대해서도 자주 털어놓게 되는 조금은 특이한 관계로 발전했습니다. 나는 그 관계를 지금도 ‘귀한 인연’이라고 부릅니다.
‘인연 因緣’은 불교용어입니다. ‘인’은 결과를 낳기 위한 직접적인 원인을 뜻하고, ‘연’은 이를 돕는 간접적인 원인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씨앗은 나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인’이고, 햇빛·공기·수분·온도 등은 간접적 원인이 되는 ‘연’인 것이지요. 그러나 이들 모두는 씨앗에서 나무가 나타나게 하는 원인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사람의 인연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을 나타나게 하는 것은 바로 ‘인연’에 있습니다. 나를 직접적으로 성장하게 하기도 하고, 나를 간접적으로 성장시키기도 하는 모든 것들이 ‘인연’에 있습니다. 그 인연들을 모두 종합해보면 바로 ‘나’라는 사람을 유추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말라’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많은 타인을 만나게 되지만 그 중에 오래 지속되면서 나를 제대로 드러나게 할 수 있는 귀한 인연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오늘도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어쩌면 ‘인연’이 있을지도 모르고, 혹은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들 중에 ‘인연’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확실해지는 건 사람의 ‘인연’은 함부로 맺어서도 안 되고, 한번 맺은 인연이라면 무엇보다 귀하게 가꾸며 오래 이어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