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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스미다 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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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09. 2022

31. 창가에서 듣는 빗소리

한정원 시인은 인문학을 “비오는 창가에 앉아서 빗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말대로라면 난 인문학을 매일 하고 있는 셈이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안성에 사는 지인의 낡은 집 양철지붕 위로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 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어찌나 요란한 소리로 들리던지, 그 소리들은 모든 것을 적막 속으로 가둬버렸고 죽었던 온 몸 세포들이 되살아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시인이 창가에서 빗소리를 듣는 것을 인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아마도 내리는 비를 보며 적막해진 세상 속에서 나를 찾아가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인문학은 무한경쟁으로 내몰려 남들보다 뛰어난 스펙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자존, 그리고 바로 ‘나’라는 의미를 찾아가는 학문이니까요.          

자본주의 사회는 우리에게 내일을 걱정하도록 만듭니다. 내일 다칠 것을 염려해 보험을 들게 했고, 내일 먹을 양식을 비축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게 했고, 그런 것들을 위해 시간을 쪼개 일하다 보니 바쁘게 살아야 했고, 그러다 보니 서로를 만나 소통할 기회를 잃은 사람들은 결국 소외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속에서 경쟁하고 내일을 걱정하느라 시간이 없어진 사람들은 지갑은 두툼해졌지만 마음은 고단해 졌습니다. 적자생존의 사회 속에서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느낌, 무엇을 해도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지요. 김재동이 사회를 보는 한 프로그램이 많은 방청객들을 울리는 건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살아야 하는 무한 경쟁이 아닌 방청객 개인, 그들의 내면의 소리에 정성스럽게 귀 기울이며 공감해주기 때문일 겁니다.           

현대사회에서 인문학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인문학이 추구하는 것이 “지금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인문학은 인간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는 것이며 바로 지금을 중요하게 생각하니까요. 그건 지식으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소통하고 이해하는 힘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인문학으로 손꼽히는 문학·역사·철학은 바로 그런 것들을 묻는 학문입니다. 문학은 인간의 삶을 내밀하게 관찰해 기록하며 나의 삶을 되돌아보는 학문이고, 역사는 지난 시간들이 있어 현재의 내가 있음을 되새기게 하는 학문이고, 철학은 내가 지금 왜 이곳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되묻는 학문입니다.           

그건 비단 학문으로만 깨달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할머니·할아버지는 온몸으로 ‘문학·역사·철학’을 겪어낸 산 증인이니 그분들과 가까이 지낸다면 어쩌면 우리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인문학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 같습니다. 인문학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현재의 내가 어떻게 살아야 가장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인가를 묻는 학문이고 그것에 대해 명확한 자기철학을 갖게 하는 학문 아닌 학문인 셈이지요.          

당신은 누구인가요, 무엇을 위해 지금을 살고 있나요, 잘 늙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요,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요? 만일 비가 내린다면 그 비를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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