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의 첫날, 작은 화분 몇 개를 샀습니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했는지 농장에는 식물들이 뿜어내는 봄의 싱그러운 기운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내가 고른 것은 노란 수선화, 하얀 아기별꽃, 초록의 아이비가 담긴 손 안에 쥐어질 만큼 작은 화분들입니다. 봄을 알리는 대표적 꽃인 수선화는 꽃대가 제법 올라왔습니다. 동화작가지만 원예가로 더 잘 알려진 타샤 튜더는 ‘수선화 없는 생활이란 생각할 수 없다’고 했을 만큼 아주 매력적인 꽃이기도 합니다. 나는 해마다 봄이 되면 후리지아 꽃 한 다발을 사서 사무실 유리병에 꽂아두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선물하는 것으로 봄을 시작하곤 했는데 올해는 수선화가 그 자리를 대신한 셈입니다.
하얀 꽃을 피우는 작은 아기별꽃은 볼수록 참 대견합니다. 비록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도 않을 만큼 작은 꽃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꽃잎에 수술까지 갖출 건 다 갖추고 있는, 자신보다 몇 백배 큰 꽃들과 비교해도 결코 모자람이 없는 그런 꽃입니다. 꽃이 이 세상에 나온 목적은 누군가가 바라봐주길 바라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작은 꽃은 그마저도 바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큰 꽃들에 가려 보이지 않거나 그마저 짓밟히기 쉽게 바닥에 납작하게 붙어서 자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할 본분을 다 하는 이 꽃을 보며 나는 위로받고 용기를 얻습니다. 사람은 많은 것들을 가졌음에도 늘 주변 상황을 탓하며 정작 내 자신을 돌보는 것은 뒷전인 경우가 많으니까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저 작은 꽃이 이 모진 세상을 헤쳐 나가는 것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합니다.
별 모양의 초록 잎을 가진 아이비를 보면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초록의 별들이 줄기를 뻗어 아래로 내려오는 것 같은 이 식물은 지상으로 내려오기 위해 매일 조금씩 자라는 초록의 꿈같습니다. 어른이 되면서 우리의 마음속에 가둬버린 꿈들은 지금 어디에 숨어 자라지 않는 것인지, 이 화분 속 세상에서 피어나는 초록의 꿈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잃어버린 동심으로 돌아가는 행복에 젖어들곤 합니다.
생각해보면 행복은 그리 멀리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언젠가 꿈을 이루면 행복할 거라고, 언젠가 돈을 많이 벌게 되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일상의 소소한 행복들을 스스로 저버리는 것일지 모릅니다. 동화책 속에 등장하는 행복의 파랑새가 결국은 내 집 안에서 발견되듯 행복은 일상 속에서 언제나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그것을 발견하려는 스스로의 노력만 있다면 말이지요.
아무 탈 없이 맞을 수 있는 아침이 행복하고, 봄이 오는 것을 몸으로 느끼며 작고 예쁜 화분 몇 개를 사서 사무실에 올려놓을 수 있어 행복하고, 그 화분을 보며 함께 좋아해주는 동료들의 미소에 행복합니다.
‘봄이 되니 문득 봄이 보고 싶네’라며 오랜만에 안부를 전하는 옛 친구의 편지에 행복하고, 오늘 아침 내 등록금까지 걱정해주는 선배 시인의 문자 하나에 마음은 한없이 행복합니다. 그것이 내가 일상에서 발견하는 소소하지만 큰 행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