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스미다 25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봄 Feb 09. 2022

55. 배냇저고리와 수의

배냇저고리는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처음 입는 옷입니다. 이 옷을 입는 순간부터 사람의 생이 시작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배냇저고리는 잘 간직했다가 신랑이 신부에게 보내는 함에 넣어 보내기도 했다는데 그건  아마도 결혼이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라는 의미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험이나 송사가 있을 경우 몸에 지니면 길하다는 풍습도 있는데 이런 여러 가지 의미 때문인지 대부분의 엄마들은 자식들의 배냇저고리를 잘 간직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의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입는 옷입니다. 이 옷을 입는 순간부터 사람의 생이 마감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수의는 살아있을 때 미리 준비해 두면 장수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부모의 환갑이나 진갑이 가까워지면 가정형편에 따라 삼베나 모시로 수의를 미리 지어두기도 하고 형편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상을 당한 후 기성품을 구입하기도 합니다. 3년마다 돌아오는 윤달에는 수의를 짓는 관습도 있지요.


사람은 태어나서 평생 옷을 입고 살아야 하지만 그 많은 옷 중에서도 태어나서 가장 처음 입는 옷과 가장 마지막으로 입는 옷은 한 사람에게 있어 특별한 의미를 지닌 옷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처음과 마지막에 입게 되는 두 종류의 옷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공통점은 바로 주머니가 없다는 것, 매듭이 없다는 것, 내가 스스로 입을 수 없다는 것, 평생 단 한 벌이면 족하다는 것, 화려하지 않다는 것 등이 그렇습니다.


주머니가 없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욕심내서 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매듭이 없다는 것은 얽히고설킨 마음이나 맺힌 것이 없다는 것이니 그것 자체가 흐르는 물과 같이 유순하다는 것이겠지요. 스스로 입을 수 없다는 것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뜻일 겁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모두 혼자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도 결국은 누군가의 도움으로 함께 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평생 단 한 벌의 옷, 그것도 화려하지 않은 한 벌의 옷으로 시작해 결국 화려하지 않은 한 벌의 옷으로 마무리해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니 현재 내가 가진 것들은 어쩌면 불필요 한 것들이 너무 많아 보이기도 합니다.


배냇저고리로 시작한 인생은 자라면서 점점 주머니가 많은 옷들에 길들여졌습니다. 이것저것 불필요한 것까지 주머니에 모두 담게 되었지요. 매듭 없이 순하게 인생을 시작했던 사람들은 매듭에 지퍼까지 달린 옷을 입고 마음속에도 매듭과 지퍼로 꽉꽉 닫은 채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유순하게 흐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결국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인생인데 나 혼자 잘났다고 목에 힘을 주며 살기도 합니다. 겉모습을 아무리 화려하게 꾸미고 치장해도 결국 모든 인간은 소박한 수의를 입고 인생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말이지요.


배냇저고리로 시작한 우리의 삶, 그러나 우리는 점점 그 의미를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이제 우리가 마지막으로 입게 될 수의를 생각하며 사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인생을 가장 잘 사는 방법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전 24화 57. 고물과 보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