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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스미다 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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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09. 2022

57. 고물과 보물

헌책방을 자주 찾는 습관이 있습니다. 곰팡이 냄새 같기도 하고, 늙은 아버지의 체취 같기도 한 오래된 책 냄새가 좋았거든요. 비 오는 날이면 헌책방 냄새는 더 진해져서 들어서는 순간 사람을 압도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헌책방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책을 꺼내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눈에 띄는 책이 있으면 책들이 쌓여있는 곳 아무데서나 쭈그리고 앉아 책을 읽곤 했습니다.


헌책방에는 일상생활 속에서 주로 고물이 되어버린 낡은 책이나 오래된 물건들이 가득 쌓여있습니다. 세상의 쓸모로부터 버림받은 신세가 된 것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곳에만 가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습니다. 어쩌면 버려진 것들에게서 일종의 동질감 같은 걸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곳에는 마치 세상의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습니다. 책장 가득 꽂혀있는 책들 중 눈에 띄는 책을 골라 펼쳐봅니다. 페이지를 넘기다 밑줄 친 문장을 만나면 그 문장을 곰곰이 곱씹어 보면서 누구인지도 모를 이전 책 주인의 마음을 더듬어보곤 합니다. 책 앞장에 ‘○○에게 드립니다’라는 글귀를 발견할 때면 이 책을 선물한 사람이 부디 그가 이 책과 조우하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원하기도 합니다. 마치 자신의 마음이 버려진 것 같을 테니까요.


이제는 절판이 된 귀한 시집이나 문학 책들을 발견하는 때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신이 나곤 했습니다. 수많은 책들 속에 파묻힌 그 책은 어딘지 모르게 자체적으로 빛을 뿜고 있다고나 할까요. 그런 책을 발견하는 순간 나는 가슴이 쿵쾅거리고, 약간의 식은땀이 나면서, 입에서는 ‘우와’하는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이런 귀한 책이 여기에 있다니, 그야말로 헌책방의 ‘고물’ 속에서 ‘보물’을 찾은 것이지요.


어쩌면 세상의 모든 보물은 그렇게 찾아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보물은 결코 아무렇게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법이니까요. 그것이 설령 버려진 쓰레기 더미 속에 있을 지라도 그 가치를 알고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다시 세상에 나와 빛을 발하게 되지만 그런 노력이 없다면 그건 그저 고물이나 쓰레기에 불과한 것이겠지요.


세상에는 버려지는 것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때로는 물건이 버려지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노인이 버려지거나 또는 마음속으로부터 친구가 버려지기도 합니다. 버려지는 것들은 대부분 오래된 것들이고 이제는 쓸모를 느끼지 못하는 것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래된 고물이라고 해서 그것이 모두 쓸모없는 것들은 아닙니다. 그것은 가치를 아는 사람에 따라 보물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고물’ 속에서 ‘보물’을 찾아내는 것은 한 순간에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가치는 아무에게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니 그것을 볼 수 있도록 마음을 닦고, 공부하고, 꾸준한 인내와 노력으로 가치를 이해하려 해야 합니다. 그동안 순간의 쓸모를 따지며 무심히 버린 것은 없는지, 귀한 보물임에도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고물취급을 받고 있는 건 없는지, 오늘 차 한 잔을 마시며 잠시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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