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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숲 Mar 09. 2023

나는 건물이 예뻐보여

아파트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만의 아름다움이!


 중학교 2학년 수행평가 때였다. 주제는 '내가 좋아하는 것'. 선생님의 과제 얘기를 듣는 순간부터 마음이 벅찼다. 평소에 관심있었던 건축물에 대해 발표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상기되었다. 나는 상대적으로 조용한 편이었지만 발표할 때 만큼은 격양된 마음이 자신감을 보태주었다. 밤 늦도록 발표 준비를 하면서도 숙제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이후로 건축가가 되는 로망을 품고 살았다.


이런 건축물들, 오른쪽 건물은 확실히 기억이 나!


 건축가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분명한 건 건물의 아름다움에 어릴적부터 매료되었다는 것. 나이가 들고 돌아보니, 난 건물의 외형적 아름다움이 정말 좋았다. 딱딱한 재료들로 조형적 미를 나타내고, 일관된 듯 일관되지 않은 외관의 구조들이 재치있는 예술로 다가왔다.

기와집과 감나무

 내가 건물을 정말로 좋아하는 구나 확신했던 순간은,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 한 달간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을 때이다. 주로 사진을 찍고 카페에서 사색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그 때 많이 찍은 사진이 바로 건물 사진이었다. 기와집에 걸쳐있는 감나무, 재즈바의 외부, 카페 건물 등. 자연과 어우러지는 건물의 조화, 빛과 구조물의 아름다움이 눈길을 끌었다.

두 번 찾아갔던 재즈바, 밖에서 보는 모습이 사뭇 아름답구나

 그 사실이 내게 많은 위로를 주었다. 주위의 강력한 반대로 건축가의 꿈이 좌절되고, 원치 않는 진로를 선택하게 되었을 때 심란했던 청소년기가 생각났다. 건축가,미대 진학 등 모든 꿈을 포기하고 대학 시절 꿈 없는 사람으로 한 동안 무기력하게 지냈던 시절도 떠올랐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꿈은 없었다. '너가 원하는 것만 하며 살 순 없어'라는 주위의 무수한 말에 이리저리 끌려다녔다. 원치 않는 일을 하며 하루하루 탈진해갔다. 그런데 돌고 돌아 다시 돌아왔다. 중학교 2학년 때 건축물의 아름다움에 매료됐었던 그 마음이 새록새록 살아났다.

카페 이너프

 난 틀린 게 아니었어! 내가 건축가의 꿈을 꾸고 아름다움을 쫓아 살았던 건 꾸지 못할 꿈을 꾸어서가 아니었어. 그건 내 본성! 나이가 들어도 다시금 나만의 아름다움을 쫓아 가게 되어있었어. 깨닫고 나니, 20대의 내가 안쓰러웠다. 부정당했던 나의 꿈을 나를 통해 인정받았다. 애써서 외면하고 지냈던 마음 속의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이 타당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후 건축학과에 들어가 건축가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하는 영웅적 결말은 아니지만, 내가 좋아했던 것들이 틀린 게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의 혼란이 잦아들었다. 앞으로는 '나 이거 좋아해!' 라고 당당하게 얘기할 생각에 뭔지 모를 안도감 또한 들었다. 좋아해도 되는거구나, 이런 것들 좋아하면서 살아도 되는 거구나.

노을을 반사하는 63빌딩

 나이가 들고 확신이 든 선호사항이라 그런지 건물을 좋아하는 마음이 애틋하다. 이 재능(?)으로 큰 업적을 이루려는 부담보다는 나의 시선들을 하나씩 쌓아가 보련다! 나는 건물이 예뻐보인다. 그 사실이 날 참 자유롭게 한다. 이 사실을 지금 알아서 더 좋은 점도 있다. 나는 건물의 외형의 미를 좋아하는 건데, 건축가는 외적인 미 보다, '공간을 건축하고 설계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 내가 추구하는 방향과는 맞지 않았을 수도 있다. 대학교 때 건축학과를 갔으면 오히려 건축에 질렸을 수도? 지나간 일이니 이렇게 라도 위로를 해보자. 어쨋든, 나 좋아해 건물!

집 앞의 작은 건물들, 오른쪽은 경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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