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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민 Nov 25. 2018

어쩌면, 바다 생물 애호가

<빅이슈> No.190 EDITORIAL

물고기를 먹지 못한다. 정확히는 바다에서 나오는 먹을거리 대부분을 삼키지 못한다. 어류 외에도 갑각류나 해초류처럼 물속에서 뭍의 식탁으로 올라온 거의 모든 것을, 즐기지 못하는 편이다. 어린 시절을 바닷가에서 보낸 탓인지, 아님 단순 취향의 문제인지는 솔직히 아직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바다 생물 알레르기 같은 것은 딱히 없다는 사실이다. 동석한 이들은 늘 한결같다. “왜 먹지 않느냐?” 놀라 묻는다. 질문에 대한 답은 상황에 따라 종종 변주가 있었는데, 20대 초반 대학 시절에는 “물고기의 목소리가 들린다”였다. 그게 20년 가까이 지나 돌아보니, 진심이었는지 거짓이었는지 어렴풋 희미하다. 탁월하지 않은 기억력은, 과거의 기억을 열린 스토리로 바꾸어주는 신묘한 힘이 있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바다 생물 애호가’라고 답한 적이 있다. 물고기의 목소리를 언제부터 들었고, 어떻게 어디까지 들리는지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보다 한결 간편하게 마무리됐다. 그때부터 난 바다 생물 애호가가 ‘되었다’. 밖으로 내뱉은 말이 먼저인지, 내뱉고 나니 본심을 깨닫게 된 것인지, 그 순서는 명확하지 않다. 지구상에 사랑하는 생명체가 대거 늘어났다는 것만으로 행복한 기분이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했다. 내 왼쪽 발목에는 자연스럽게 물고기 모양의 타투가 새겨졌다. 바다거북이 <빅이슈> 190호 커버의 주인공이 된 것도 이와 완벽히 무관하진 않다.

일회용 빨대가 코에 꽂혀 괴로워하는 바다거북, 몸속이 해양 쓰레기로 가득 찬 고래, 아기 새에게 플라스틱 조각을 먹이로 착각해 물어다주는 어미새의 영상 등을 어렵지 않게 접한다. 편의를 위해 만든 인간의 물건이 지구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진실을 외면했다. 우리는 올해 4월 펭귄 커버로 남극 보호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던 적이 있다. 이번 호를 그것의 연장선상으로 봐주어도 무방하다. 그린피스, WWF(세계자연기금)의 도움이 환경에 무지한 우리에게 적잖은 힘이 됐다. 또한 호주 <빅이슈> 커버에 한 차례 등장했던 놀라운 바다거북 사진을 한국에서 사용할 수 있게 흔쾌히 허락해준 스페인 사진작가 프란시스 페레스(Francis Perez)에게도 이 지면을 빌려 고마움을 전한다. 무고한 해양 생물이 인간의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날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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